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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개정증보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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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증보판 91쪽에도 초판 95쪽의 오류인 박정희의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 이중 창씨개명설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는 박정희가 대구사범학교 5학년이던 1937년 교유(교수)이자 학생감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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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개정증보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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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과 편견으로 일관된 역겨운 선동서다. 박정희 대통령이 다카키 마사오라는 창씨개명 외에 오카모도 미노루라고 이중 창씨개명했다는 초판 95쪽의 내용을 개정증보판 91쪽에 표현만 살짝 바꿔 그대로 실었다. 이미 2006년에 거짓말로 밝혀진 소문조차 확인하지 않고 무슨 역사서를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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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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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과 편견으로 일관한 역겨운 선동서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다카키 마사오라는 창씨개명 이외에 오카모도 미노루라는 별도의 창씨개명을 가졌다는 초판 95페이지의 내용이나 바꿨는지 모르겠다. 이미 2006년에 거짓말로 밝혀진 근거불명의 소문조차 확인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역사서를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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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unny Valentine
Sweet comic Valentine
You make me smile with my heart
Your looks are laughable
Unphotographable
Yet you're my favorite work of art

Is your figure less than Greek
Is your mouth a little weak
When you open it to speak
Are you smart?

But don't change a hair for me
Not if you care for me
Stay little Valentine stay
Each day is Valentine's day

Is your figure less than Greek
Is your mouth a little weak
When you open it to speak
Are you smart?

But don't you change one hair for me
Not if you care for me
Stay little Valentine stay
Each day is Valentine's day

My Funny Valentine은 1937년 L. Hart 작사, R. Rogers 작곡입니다. 재즈에는 스탠다드 넘버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명곡들이 있는데 19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지고, 많은 재즈 뮤지션들에 의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주되는 Autumn Leaves, Summertime, My Funny Valentine 같은 곡들을 말합니다. My Funny Valentine 의 경우에도 수많은 연주자들이 나름대로 해석하고 연주했는데 그 중 단연 최고라고 부를 만한 버전으로는 쳇 베이커 의 연주와 노래를 꼽습니다. 쳇 베이커(Chet Baker)는 트럼펫 연주자이면서 아름다운 목소리의 가수입니다.

소설가는 ‘그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아르노 메를랭(Arnaud Merlin)은 “제임스 딘과 같은 외모, 긴장이 풀린 듯한 스타일의 순수한 서정주의, 데뷔 당시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신통치 않은 모방자로 취급되었지만 후에 루이 암스트롱 이후 최고의 즉흥연주가로 평가되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재즈에 바친 쳇 베이커의 트럼펫 음색은 부드럽고 관능적이며 목소리는 처절한 고백처럼 들립니다. 재즈의 역사에서 그는 1950년대 초중반 서부 해안을 중심으로 시작된 ‘쿨 재즈(Cool Jazz)’ 흐름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1929년 12월 23일 Oklahoma, Yale에서 Chesney Henry Baker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쳇 베이커의 일생은 자신이 주연을 맡은 1989년 Let’s Get Lost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처럼 드라마틱합니다.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했고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면서 뮤지션으로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생일 선물로 쳇 베이커에게 트럼펫을 선물했고 트럼펫은 그의 소중한 동반자가 됩니다. 그가 음악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계기는 군악대에서 트럼펫을 불기 시작할 때인데 그곳에서 전설적인 색서포니스트 찰리 파커(Charlie Parker)와 알토 색서포니스트 폴 데즈몬드(Paul Desmond)와 만나게 됩니다.

제대 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클럽 등지를 오가며 본격적인 프로 뮤지션으로의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그는 평생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한 약물 중독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쳇 베이커의 회고록에 의하면 마약은 서부 재즈인의 외로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알려진 바 대로 당시(1940년대 후반) 재즈의 메카는 동부의 뉴욕이었습니다. 찰리 파커를 비롯한 유명 재즈인들이 자신의 활동무대인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여 공연 마치고 모두 떠날 즈음이면 밀려오는 허무함과 외로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술과 약물로 위로했던 것입니다.

방탕 속에서도 1952년 같은 서부 출신의 독보적인 바리톤 색서포니스트였던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과의 조우로 커다란 전환을 합니다. 둘은 ‘헤이그(Haig)’라는 클럽에서 만나 역사적인 ‘Pacific Jazz Recording Sessions’에 참가했고 이때의 호연으로 쳇 베이커는 평론가와 팬들로부터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1950년대에 이르러 서부를 배경으로 일기 시작한 ‘쿨 재즈’ 영향으로 쳇 베이커는 대단히 개성적인 스타일로 받아들여졌고, 특히 여성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다작으로도 유명한 쳇 베이커의 전성기는 1950년대 초반으로 평가됩니다. 쳇 베이커 퀄텟(Chet Baker Quartet)을 결성하여 유럽 순회공연을 가진 시기 그는 특별한 기교를 배제한 ‘My Funny Valentine’과 같은 서정적인 곡들을 발표하여 인기를 누립니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 이후 쳇 베이커는 알려진 바와 같이 마약중독으로 인해 폐인처럼 살게 됩니다. 최고의 명연으로 인정받는 자신의 퀄텟으로 유럽 투어를 하던 1955년 10월 파리의 한 호텔에서 피아니스트였던 딕 트와르직(Dick Twardzik)이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고 자신도 이탈리아에서 마약 소지협의로 1년간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후 쳇 베이커는 여러 페스티발이나 투어에 참여하지만 이미 정상적으로 살기에는 그의 정신과 육체는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병원과 감옥을 드나들던 쳇 베이커는 급기야 1964년 3월 독일에서 미국으로 추방되었고 당시 그가 Verve사에서 내놓은 음반들은 기존 팬들에게조차 실망감을 주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하던 1968년에는 5명의 갱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이빨이 거의 부러지는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어려움을 딛고 그는 1974년 재즈계에 복귀하게 됩니다. She Was Too Good to Me(1974) Once upon a Summertime(1977) The Touch of Your Lips(1979) Blues for a Reason(1984) 등을 내놓으며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며 안정된 삶 속에서 성숙한 음악으로 팬들 곁에서 머물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1988년 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호텔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추락사로 사망하고 맙니다. 사망하기 직전 블루스 웨버(Bruce Weber)의 Let’s Get Lost라는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했으며 1989년 재즈 전문지 다운비트(Downbeat)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As Though I Had Wings’라는 자서전도 발간되었습니다.

쳇 베이커의 삶은 너무도 비극적이어서 울화가 치밀 정도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젊은 시절을 능가하는 멋진 청년이 불과 10년 후에는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갱들의 집단 린치 때문에 이빨이 몽땅 빠져버린 홀쭉한 뺨에 음성은 불안하게 떨립니다. 그는 지나치게 자신을 학대했고 파괴했습니다. 그의 인생에 감동은 없었습니다. 처량하고 우울했던 시간 속에 남은 것은 꾸준히 애청되는 음악뿐입니다. 그의 전성기 시절의 음악조차 파멸을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일그러진 현실 속에 방황하는 영혼, 두려움과 고통, 우울함을 치유하고자 반복한 마약의 악몽들...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채 뱉어내는 신음에는 짙은 고독이 묻어납니다.

어쩌면 위로 받고 싶은 건 나약한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릅니다. 슬픔만을 느끼게 하는 그의 음악은 그를 위로하고 싶게 만듭니다. 지금은 천상에서 위로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쳇 베이커는 음악처럼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생을 살다 갔습니다. 돌이켜보면 삶과 음악이 다르지 않았던 이들이 사후에 더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음악이 우리의 삶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로맨스와 허망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상념들을 트럼펫과 자신의 목소리로 남기고 간 쳇 베이커의 거친 드러냄은 영원히 수많은 팬들의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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