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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 Bestsell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표절은 창작계에서 언제나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도둑질과 전혀 다르지 않은 표절을 소재로 한 작품이 여지껏 우리나라엔 없었다(맞나?). 이 영화는 한 때 베스트셀러 소설가였지만 표절 사건으로 추락하고, 재기하려다가 또 다시 표절 시비에 휘말린 백희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수십년 전 묻힌 살인사건을 되짚어가는게 목적이다.
문학비평 시간에 추리소설은 모더니즘 소설이라고 배웠는데, 과학 문명이 급격하게 발달한 18세기 이후 딱 떨어지는 수학 문제의 답처럼 '작품에서도 주제와 답은 일축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로 귀결되어야 한다'라는 믿음 아래 추리 소설이 탄생하였다. 추리 소설은 여러가지 실마리를 꼼꼼히 살펴 하나의 답을 찾는 장르다. 장르 소설 · 영화의 특성상, 또한 추리물만이 가지는 독특한 스릴을 이용하여 현대에는 오락성을 강조한 대중문화산업이 성행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여느 추리물처럼 철학이나 예술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흥행을 위한 영화다. '표절'을 소재로 하고 베스트셀러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이 문화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역시 장르영화는 장르영화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가치가 없는 상품(작품이라는 말은 붙이기가 민망)은 아니다. 자극으로 성공하려는게 아니라 소재의 참신성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표절 뿐만이 아니라 '무의식'을 이용하여 사건을 해결해간다. 추리, 수사는 대개 물증으로 사건을 해결해간다. 심증만으로는 증거 불충분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물증은 없애거나 조작할 수 있는데 반해 심증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이를 낳는 여성의 속성에 비추어 볼 때 백희수는 영감이 굉장히 발달하였다. 속세에 물들지 않는 어린 딸의 영혼이 수십년 전 묻혀진 살인사건을 세상에 알릴 발단이 된다. 소설가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예술가이지만 학자는 이성과 논리를 내세워야 하고, 예술가는 감성과 영감이 발달해야 한다. 그러기에 예술가들이 환각 작용에 빠져들게 하는 술과 약물 의존도가 높다고 하지 않은가? 백희수는 일반인의 눈에 결코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영혼과 대화하고, 의식을 넘어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듦은 예술가로거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백희수는 결코 표절을 의도치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무의식은, 오래 전 죽은 소설가가 밝히고 싶어했던 살인사건을 다시 세상에 알리게 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서로 이어져있다는 증거일까?
'범죄 없는 마을'이란 간판을 내세웠지만 실은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백희수 작품을 통해 그 사건이 다시금 표면으로 떠오르게 될 위기에 놓이자 오래 전 범인들은 백희수를 없애려 한다. - 이 부분은 정말 전형적인 상업 영화의 특성을 보여준다. 숨막히는 위기 속에서 백희수와 전 남편이 무사하길 바라지만 한 편으로는 그 상황을 즐기는(?) 관객들. 과연 백희수의 운명은?!
소재의 참신성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어찌되었든 기존의 장르 영화의 틀 안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했단 생각이 든다.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지대한 필자로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였다. 첨단과학 시대에 빙의가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아직 인간에게는 무의식의 힘이 남아있는 것 같다. 백희수가 서울에 살았던 시절에는 물질문명에 꽉 막혀 그런 힘이 퇴화되었을지 모르지만 문명에서 벗어난 곳에 가니 그런 능력이 되살아났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C.G융의 주장처럼 인간의 마음이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베스트셀러'에서 보여준다.
아무튼 경찰과 형사의 물증 위주의 수사가 아닌, 예술가의 심증 수사는 굉장히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