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비문학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언어‘ 때문이다. 책에이는 낯선 어휘들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처음에는 정말내가 이렇게 한국말을 모르나 싶을 만큼 무슨 말인지 몰라 헤매다. 조금씩 이해가 되는 과정에서 앎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둘 비문학에 쓰이는 언어들이 내 안에 쌓이면서 조금씩 책을 읽어나가는 근육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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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리‘로 주어를 바꿔서 말할 때 내 상황을 조금 더 객과화시켜서 볼 수 있고, 과한 감정을 덜 수 있다. 더 나아가 어떤 특정한 이야기가 공적인 이슈로 전환될 때 서로에게 감정의 짐을 지우지않고, 간접 경험을 확장시켜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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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부터 계속 거절 당해온 그 아이의 무너지는 자존감고난 해도 안 된다는 무기력함은 어쩔 건데?
‘학원이나 방문 수업으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다양한 배경지식결국 학업으로도 연결되는 생각하는 힘은 책 말고 어떻게, 뭘로 끌어 올려줄 건데??
‘ 훗날 자괴감, 괴로움, 공포감에 치를 떠는 자식을 직면하며 느끼는 고통은까꿍이 끌어안고 책 읽어주다 후두염 걸리는 아픔과는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거다.
‘ 맘껏 놀리고, 울리고, 읽히고, 깽판 치고, 어지르게 냅둬.
지금, 오늘,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세 살이면 천둥벌거숭이 아가야, 다섯 살도 까꿍이구,
일곱 살이면 내년에 학교 들어간다고 다 큰애 취급하지? 애기야 애기!!
아홉 살도, 열한 살도 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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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그림자가 걷혀야 자식이 햇볕을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다.
부모 노릇의 최종 목표는 자식의 독립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멋지게 홀로 서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이가 수만 번 넘어지며 걸음마를 배우듯, 자식들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독립에 성공한다. 그러므로 자식이 제대로 서야 독립할 수 있다는 생각의 순서를 바꾸라. 부모가 먼저 자식에게서 떨어져 나가야 자식도 비로소 제 앞가림을 시작한다. 어느 때고 혁신과 변화를 이끄는 미래 세대의 개막은 부모 세대와의 단절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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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이나 연애하는 시간처럼 말이다) 대체 어디에서 훔쳐낸단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무의 시간들에서다.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 그렇듯, 삶의 시간을 확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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