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하고 천박하게 둘이서 1
김사월.이훤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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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하고 천박하게>(김사월, 이훤, 열린책들, 2025)은 가수 '김사월'과 시인 '이훤'의 일상과 예술에 대한 대화를 엮은 에세이다. ​ 


이훤 시인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교회 동생이 미국 유학 중에 알게 된 오빠이라며 이 분의 시집을 건네받은 적이 있다. 당시 시집까지 읽을 여력이 없어서 받아놓고는 구석에 두었다. 시집과 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특이한 이름의 이 시인의 이름도 간간이 들렸다. 그러다 애정하는 이슬아 작가와 같이 책을 낸 남자 시인이 있다는 것, 그 책과 관련한 기사인지 (누구의 블로그인지) 그 글을 읽는 내내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그러다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아 작가는 결혼은 안 할 줄 알았는데(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혼한다고 하니 아쉬움이 들기도 하면서 분명 상대방은 그 시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찾아보니 맞았다. 나와 전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마냥 반갑고 신기했고 내 일처럼 흥분? 되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


이 책을 통해 김사월 가수를 알게 되었다. 서평단에 참여하게 되고 책을 기다리면서 멜론에서 이 가수를 검색하여 음악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였다. 청량하면서도 경쾌하고 그러면서도 약간 슬픈 듯, 그러나 가라앉지 않는 느낌이었다. 음악 스타일도 그녀 목소리와 비슷했고 내가 곧 좋아할 음률이었다. 이훤의 친구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서로 주고받는 글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느낄 수 있다. 솔직하면서도 과하지 않는, 재미있고 유쾌한 관계. 남녀를 떠나 이런 우정을 가진다는 건 큰 행운인 것 같다. 서로 지극히 존중하면서도 아주 친밀한 거리감도 있다. 예술가라는 공통점도 있겠지만 그동안 서로 쌓아왔던 시간과 정성 어린 손길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주변 공기가 부드러워지는 느낌 아니? 네 글에서 그런 냄새가 나서 넌 사진을 참으로 사랑하고 시기하고 아낀다고 생각했어." p.23 ​ 


나는 내 주변 공기를 부드럽게 하는 사람일까. 문득 나와 나의 친구들을 돌아본다. 나는 늘 바쁜 사람 (그래서 너는 알아서 잘 사는 사람이니 굳이 안 챙겨도 되겠지)라는 뉘앙스의 말을 자주 듣는다. 주변 공기를 부드럽게 하기도 전에 사라지는 존재인 것 같다. 나는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까. 진짜 이야기는 숨기고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사람, 그래서 책 이야기를 하나보다. 책은 나를 포장하기에 좋은 수단이기에. 가끔 나의 이런 모습을 까발리듯 지적하고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을 만난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다가 이내 수긍한다. 적나라하게 다 지켜보고 있으니깐. 그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저자들만큼 애틋한 우정을 과시하지만 못하지만 남편과도 편지와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다른 분위기와 결을 자랑하는 우정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상상하며 웃어본다. ​


 책에는 예술가로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그려낸다. 시인이자 사진 전시를 하는 이훤과 가수이자 공연을 하는 김사월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가이다. 이훤은 이 집필 당시 시집과 산문을 출간하고 김사월은 4집 앨범을 발매한다. 새로운 작품을 대중 앞에 내놓고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롤러코스터를 타야 하는 숙명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극찬의 반응에 가슴 뛰고, 화려한 무대 위의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아침엔 정말 세상이 장밋빛 같아. 인생의 모든 고통을 다시 겪는다 해도 다시 이 삶을 살고 싶다는 낭만에 빠진다. 일상으로 착륙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p.58 ​ 


하지만 1-2개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 하듯이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2년 동안 쏟아부었던 것을 2개월 동안 드러내 보이고 전부 사라진 상황을 마주할 때면 우울과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재능 넘치는 동료들을 볼 때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스스로를 견디는 일은 인생 최대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왕성한 동료들 볼 때 여전히 어떤 날은 불안의 종이 울려. 그때마다 찬찬히 그 앞으로 가서 충분히 듣고 종을 땅에 내려놓거나 안 보이게 덮어 둔다. 며칠 지나 돌아가면 없어졌기도 하더라. 그리고 그럴수록 좋은 일 생긴 동료들을 힘껏 축하해 준다. 그들이 잘 되는 게 나에게도 이로운 일임을 기억하려고 애써. 친구들과 서로 영향받으며 함께 더 나은 작업자가 되는 게, 모두 정체된 우리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떠올려 내고 만다. 우리는 다르게 탁월하다. 나만 나처럼 만들 수 있다." p. 28 ​


 "우리는 다르게 탁월하다. 나만 나처럼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예술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수시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우리. 누구 엄마, 어떤 독서가, 어느 글쓰기샘 등 모든 영역에서 비교의 말이 넘쳐나고 위축과 불안이 밀려오곤 한다. 불안의 종소리를 충분히 듣는다는 저자의 말에 안도감이 느꼈다. 회피하거나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우리는 충분히 스스로 다독이고 추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두 예술가의 전방위적 대화를 담아놓은 책이라고 할까. 대부분 예술 이야기지만 일상과 생활, 우정, 관계에 대한 다양한 주제도 풀어놓고 있다. 고상하면서 천박하고 솔직하면서도 진지하여 여러 재미를 얻을 수 있다. 둘 다 뛰어난 문장가여서 그런지 밑줄 문장이 꽤 된다. 여기에는 많이 올리지 못했지만. 흥미진진한 두 작가의 세계를 탐험하고 온 것 같다.


*출판사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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