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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날 대신해 ㅣ 소설, 잇다 5
김명순.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6월
평점 :
책을 펼치자 마자 김명순 작가의 사진과 이력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1920년에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당시 사회로부터 극심한 '학대'를 겪”은 1세대 근대 여성 작가였던 김명순. ‘첩의 딸’이라는 배경을 문제 삼아 부정한 여자라는 비난과 공격을 받아야했다. 하지만 “고통과 비탄, 저주”로 점철된 인생이었어도 그녀는 20여년 간 170여편의 작품을 선보이며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김명순의 데뷔작인 ‘의심의 소녀’(1917)를 모티브로 현대 여성 작가인 박민정 소설가는 ‘천사가 날 대신해’ 라는 단편을 완성한다. 박민정 소설가는 청년과 여성이 처한 여러 사회 문화적 조건을 탐구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100년 시공을 뛰어 넘는 두 여성 작가의 연결을 통해 여성의 현실을 보다 입체적으로 경험하도록 이끈다.
‘의심의 소녀’는 평양 대동강 근처에서 외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소녀, 범네의 이야기이다. 범네의 모친은 재산가의 독녀이자 미인이었지만 방탕한 남편 때문에 고통받고 자살을 했다. 범네와 할아버지는 남편 첩의 표적이 되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천사가 날 대신해’는 화자가 친구의 죽음을 두고 그 이유를 밝혀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나’는 친구 ‘세윤’이 이혼 이후 새로운 직장에서 ‘로사’와 같이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긴장한다. 나는 대학시절 알게 된 언니인 로사가 영매처럼 행동하고 성범죄에 관여하는 등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아 거리를 두었고 세윤에게도 경고를 한다. 하지만 세윤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두 작품 모두 여성의 죽음이 핵심 사건이다. ‘의심의 소녀’에서 범네 모친은 세상과 남성에게 모두 외면당한 채 죽음에 이른다. ‘천사가 날 대신해’에서 세윤의 죽음은 명확한 이유를 찾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다. 꺼림직하고 공포스럽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공포에 떨어야 하는 상황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천사가 날 대신해>는 '소설, 잇다'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형식의 소설집이다. 김명숙 작가를 알게 되고 그녀의 작품을 읽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한편으로 끔찍한 차별과 부당한 공격 속에서도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