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식물의 사계에 새겨진 살인의 마지막 순간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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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개월 전, 뼈를 연구하는 법의인류학자 리옌첸이 쓴 [뼈의 방]을 읽었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뼈는 과거의 무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내용의 다소 철학적인 책이었다. 그들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본즈'가 생각났었다. 

이 책 역시 식물을 연구하는 법의학자가 썼다. CSI가 된 식물학자라면 이해가 빠를지도. 리옌첸처럼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범죄현장에서 필요할 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CSI라는 드라마에서 '길 그리섬'은 법의곤충학자로 나온다. 이 작가는 바로 법의식물학자로 시체나 범죄현장에 있는 식물들을 분석하여 범죄해결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식물 분야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낮아서 걱정이 되지만 법의식물학자의 삶은 어떤지 기대가 된다. 

음, 읽다보니 유난하게도 작가는 CSI가 정말 마음에 안 드나보다. 나는 사실 CSI나 본즈같은 드라마 덕분에 사람들이 법의학이나 법과학, 법인류학에 대해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매체가 아주 발달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실험결과가 나올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법의식물학자라는 위치로 인해 비슷한 질문을 받았었는지 스트레스가 엄청났나보다. '모든 실험 결과는 빠르지 않아! 그리고 다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라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리옌첸의 책에서는 '본즈'가 우리가 하는 일이라며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말해주었는데 말이다. 어쩐지 불만이 가득하다. ㅋㅋ 찡찡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완벽하게 사이다로 해결하는 사건들을 언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렇게 노력해도 찾지 못했다며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말을 토로하고 있다. 아니, 블랙베리 덤불과 아이비 덩쿨이 주제인데 왜 결국 시신을 찾지 못한 이야기로 끝나는 거지? 희망적인 이야기는 많이 없다. 

식물학자의 책 답게 아주 다양한 식물들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다소 낯선 이름들이 많았다. 그래서 구글 검색을 하면서 보기도 했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해서 슬금슬금 건너뛴 곳도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항상 식물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 훅 들어왔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지만 여기 저기 이름모를 들꽃들, 이끼들 하물며 가로수까지, 우리들은 식물들과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자 느낌이 다분한데 이런 감성포인트가 너무 좋았다. 


시체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많은 것들을 남긴다. 꽃가루나 나뭇잎 등등을 통해 살인 현장을 밝힌다거나 유기장소를 밝히기도 한다. 그리고 죽음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다. 무한히 많은 균류를 먹여살리고 식물들과 곤충들에게 아주 좋은 영양분이 되기도 한다. 그것들이 새로운 증거로 다시 태어나는 격이다. 이렇듯 죽음과 탄생은 아주 밀접하다. 


챕터 하나하나가 자신의 에피소드로 가득했다. 챕터 주제에 맞는 식물 일러스트라도 있으면 좀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책이 너무 논문같았다. 뒷쪽으로 갈수록 그런 느낌이 가득했다. 작가가 정말 이 직업을 사랑하고 식물, 더 나아가 자연 환경을 너무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너무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모르고 와구와구 글로 썼는데 작가의 사진을 보니 황홀한 눈빛을 가득 담아 강연하는 것처럼 상상이 되었다. 사랑을 가득 담아 쓴 책이라는 것이 몸소 느껴졌다. 

법의인류학자와 법의곤충학자와 함께 범죄현장 일을 하면서 느꼈던 고충도 절절했다. 경찰에 대한, 그리고 민간 법과학 분석기관에 대한 처우 등에 안타까워하면서도 경찰이나 수사기관측에서 법의식물학이나 법의곤충학에 대해 지식이 사전지식이 없음에 한탄했다. 앞으로 더 나아지길 바라는 그의 마음은 식물을 좋아하는 만큼 범죄현장을 분석하는 일에도 애정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관심분야가 반반 정도였던 이 책을 읽고나니 그동안 지나쳤던 드라마들의 장면들이 생각난다. 서평도서로 받지 않았다면 사서 읽었을텐데 .. 아주 감사하게 서평단에 당첨되었다. 좋은 책 읽을 기회를 주어서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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