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 8세, 18세, 22세에 찾아온 암과의 동거
손혜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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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계발서’와 ‘에세이(자서전)’은 거부했었다. 
어차피 실행하지 않으면 별 도움 안 되는 자계서(라 쓰고 자기자랑이라 읽는다)와 ‘남의 이야기를 들어 뭐해?’ 라는 생각에 읽지 않는 에세이(역시 인생극복 스토리). 
그런 내 편견을 깨준 인생 자기계발서가 하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내 편견을 조금은 깨준 에세이가 되었다.



미스터리 소설에 치여서 잊혀진 위시리스트 에세이들.
재미있는 책들 읽기도 부족한 인생인데, 왜 재미없는 책을 읽는가. 라는 나의 신조때문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만 읽었다. 
나는 프로 편독러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에세이가 아니었다. 
보통의 투병에세이는 ‘나 엄청 아팠어. 그런데 극복했다고!’ 이런 식이라 사실 별로 읽어보지 않아도 되는 내용이랄까.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많이 아팠던 그녀의 인생이 그래도 나쁘지 않았노라고 덤덤하게 말하고 있었다. 

- 스포주의 -



작가는 죽음에 세 번 다가갔다. 
매번 그녀는 홀로 작별인사를 했다.  


-
첫 번째는 소아암. 

학교도 못가고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꼬꼬마 시절. 눈을 보고 싶어하는 딸을 보며,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생각하니 너무 안쓰러웠다. 어린 아이가 겪어야 할 많은 수술과 검사, 항암치료 또한 내 마음을 극렬하게 흔들었다. 토닥토닥, 잘 해냈어!
어렴풋한 나의 급식시절, 아픈 학우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학교에서 기부를 했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받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몰랐던 이야기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내가 준 순수한 도움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퇴원 후 돌아온 학교는 낯선 곳이었다고 한다. 병원과는 다르게 이 곳에서는 스스로 해야한다. 
모르는 게 많았다. 낯도 가렸다. 순수한 마음이 오히려 불똥이 되어 날아왔다. 
학교는 작은 사회. 사회를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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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희귀암.

소아암 완치. 어느 정도 학교에 익숙해졌고,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녀에게 또 한 번의 고통이 찾아왔다. 그건 바로 GIST. 희귀암이라고 했다. 명확한 치료제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수술을 받았고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당연히 부작용도 있었지만 차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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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희귀암의 재발. 

차도를 보이던 희귀암이었다. 하지만 돈 좀 아껴보려 장학금을 위해 몸을 혹사했더니 무리가 갔는지 재발을 했다. 
그녀의 삶을 읽고 있는 나조차도 신을 불렀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고, 살아가려하는 사람에게 왜 또 고통을 주시나요? 너무 안타까웠다. 
엎친 데 덮쳤다. 수술 대신 약물치료만 해야한다고 했다. 살도 빠지고 부작용도 엄청났다. 

그녀는 우울증까지 왔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도 덤덤하게 써내려가는 이 글들이 너무 슬펐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그녀가 마음속으로 홀로 했던 작별인사들이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그녀는 네 번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족 중 중병환자가 있으면 정말 힘들다고 했다. 병이 오래되면 가족들 역시 심신이 지친다. 그러다보면 싸우고 틀어진다. 하지만 이 가족은 달랐다. 물론 지쳤을테지만 싸우기도 했겠지만 그들의 결속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녀를 다독였다. 그 힘이 그녀를 우울증에서 꺼낸 것 같다. 정말 대단하다. 



이 책은 중병환자 당사자의 고통과 그것을 함께 나누는 가족들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상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로서는 정말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중증 장애인’ 혹은 ‘건강장애’ 특수교육대상자들과 가족을 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는지 팁을 얻을 수 있었달까. 게다가 그들이 정말 의외로 단순한 ‘말’과 평범한 ‘행동’으로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조심한다고 해도 건강한 사람들은 그 입장이 아니기에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건강하게 살고 있어서 참 다행이구나 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도 갑작스레 찾아올 수 있는 병이기에 그런 나쁜 생각은 안 하기로 했다. 
이 책은 반전이 있다. 그녀의 병은 아직 진행중이라는 점이다. 불투명한 미래를 걷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슬퍼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내일, 과연 나는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호로록 보내버리고 있는 게 아닐까? 



보람있고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기 보다는 낭비하지 않고 알차게, 그리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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