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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2년 12월
평점 :
멀고 아름다운 동네
'부천'으로 이사를 가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집을 찾아 잦은 이사를 하던 그는 갑자기 방을 빼달라고 하는 집주인 때문에 또다시 이사를 가게 된다. 부천에 있는 집을 사서 가는 이사였지만 그의 마음은 어쩐지 편치 않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느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면서도 변두리만 배회하던 남자의 심리 상태가 서울을 떠나 부천으로 이사를 가는 날의 풍경과 맞물리며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넓고 넓은 서울에서 그는 여태껏 집을 갖지 못하고 살았다. 희망 없이 살았다는 말과도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이제 집을 가지게 되었다. 다른 것은 서울이 아니고 부천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도 집과 희망은 동의어인가. 그는 대답을 찾지 못하였다. 아니 쫓겨가는 것은 아니다, 라고 거듭 생각하기는 하였다. (중략) 그런 삶이 벌써 몇 년째인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오늘이 며칠이지"하고 묻는 생활. 또 다른 십구일과 지금까지의 수많은 십구일들을 지나오면서 그는 매번 십구일 이외의 다른 날만을 꿈꾼다. (29쪽,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 사람들은 소설집으로 문학지에 발표했던 소설들을 모은 책이다. 이 소설은 1986년에 한국문학 3월호에 실렸던 소설로 나와 있다. 이 소설을 이 책의 맨 앞에 배치한 것은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원미동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묶어놓은 책이기 때문에 "이제, 여기서부터 원미동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줄 작품이 필요했고 마침 원미동으로 이사 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 있어서 맨 앞에 배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집은 각각 따로 쓰인 원미동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묶은 것이지만 유기적으로 서로 얽혀 있다. 연작 소설이기 때문이다. 직간접적으로 앞에 등장했던 인물이 다른 소설에서 조연을 맡기도 하고 조연이었던 인물이 주연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연작 소설집이지만 장편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불씨
불씨는 실직한 가장의 이야기이다. 꽤 큰 식품회사의 물품관리부에서 일했던 그는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게 된다.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고 그저 그런 일자리는 싫어서 버티는 사이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전통문화연구회라는 곳에 가까스로 취업을 하긴 했지만 전통문화 보급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모조품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는 판매직이었다. 아는 사람을 찾아가 가까스로 입을 떼긴 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팔아볼까 생각은 하지만 어쩐지 입이 잘 떼지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지게꾼을 만나 가까스로 입을 열게 되고 그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냥 갔다가 되돌아와서는 촛대 하나를 사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기 시작한다.
불씨는 불의 씨앗이다. 언제든 불을 옮겨 붙일 수 있도록 묻어두는 불덩이를 불씨라고 하는데, 실직한 가장에게 있어서 지게꾼은 불씨였고, 지게꾼에게 있어서도 이 실직한 가장은 불씨였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런 사람을 찾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마지막 땅
이 이야기는 도심 한복판에서 농사를 짓는 노인의 이야기다. 도심에서 인분을 써서 농사를 짓다보니 주변에 사는 같은 동네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농군의 아들인 그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 땅을 넓혀갔으나 동네에 불어닥친 개발 바람과 사고 치는 자식들 때문에 땅을 팔아 자식들 뒤를 봐 주느라고 땅을 많이 날려 먹었다. 얼마 남지 않은 땅마저 팔아치워 자식들 뒷닦음을 해주자는 아내와 늘 언성을 높인다. 하지만 결국 땅을 팔기로 결심하는 노인의 이야기이다.
아들 농사라고는 원. 강노인은 잘 자란 푸성귀들을 어루만지다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땅에서 푸성귀를 거두어들이는 심정으로 낳아서 여태까지 알게 모르게 공력도 들였건만 해마다 기대한 만큼의 수확을 안겨주는 땅 농사에 비하면 자식 농사는 너무나 허망했다. (89쪽)
그가 땅에 집착하는 심리는 땅은 욕심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돌려주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 문장을 읽으면서 들었다.
원미동 시인
원미동 시인은 어린아이가 화자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동네에서 좀 모자란 것으로 소문이 난 몽달씨와 아이의 우정이 그려져 있다.
한마리의 나그네 쥐
한마리의 나그네 쥐는 밤마다 산을 찾는 남자의 이야기로 그에 대한 소문과 그의 속사정이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그에게 산은 갑갑한 현실로부터 탈출구가 되어준 장소였다.
그는 마치 다른 길로 잘못 접어든 사람처럼 보여졌다. 문제는 바른 길을 찾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생겨나지 않는 데 있었다. 우거진 숲과 미풍에 살랑거리는 작은 풀, 그리고 깃을 치는 산새들의 평화로움이 그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보다 엄청난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중략) 지난번 퇴근길의 전철에서 있었던 일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전철 안은 아무리 보아도 짐승들을 가두어 넣은 견고한 강철 상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139쪽), 한마리의 나그네 쥐)
결코 살아서는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견고한 강철 상자에서 어느 날 튀어나온 남자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될까? 그는 결국 산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도시에서 길을 잃고 산으로 온 쥐를.
저 혼자 떨어져나와 산을 헤매던 한 마리 쥐의 구부정한 등허리 위로 청색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이상한 놈이군. 그가 몸을 돌렸다. 몇 걸음 떼어놓고 돌아보아도 쥐는 거기에 있었다. (154쪽, 한 마리의 나그네쥐)
쥐를 보며 남자는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무리를 이탈해 산속에 있는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결국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산속에서 길을 잃는다. 원래 있던 곳으로는 돌아가기 싫었지만,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그는 몰랐다. 그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 무섭다. 눈을 감아버리고 그 자신도 잊은 채로 그는 산속으로 사라진다. 산이 된다. 무거운 이야기였지만 뭔가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처음에 등장했던 식구의 이야기가 다시 등장한다. 원미동으로 이사를 온 은혜네 식구가 다시 나온다. 이사를 할 당시 만삭이었던 은혜 엄마는 은혜 동생을 출산한 이후이고 어렵게 마련한 집은 수시로 문제가 생겨 수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에서 살 때의 그 끝없는 허둥댐, 떠돌아다님의 정처 없음과는 다르겠지만 이곳 원미동에서의 생활 역시 좀체 뿌리가 박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잦은 공사로 그간 안정을 누리는 일 따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까닭도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그와 그의 아내는 서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172쪽,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서울에서 부천 원미동으로 온 은혜네 식구는 서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했다. 그리고 은근히 원미동 사람들과 자신들은 다르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 욕실 수리를 하러 온 사내를 두고 부부가 나누는 대화에서 드러난다.
그는 욕실을 고쳐주러 온 임씨가 준 견적서를 보고 그가 돈을 부풀려 적었다고 생각한다. 은혜 엄마도 그런 그를 마뜩잖게 여긴다. 그러나 부부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공사를 마친 후 견적서를 다시 달라고 해서 수정해서 내놓는다. 애초에 잡았던 견적보다 적게 나왔다고 하면서 은혜 엄마가 견적서에 적힌 돈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부러 시킨 일은 그냥 서비스로 해 드리는 거라 말하면서 제하기까지 한다.
남자는 사내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술을 산다. 슈퍼집 앞에서 남자는 비가 오면 가리봉동에 가야 하는 이유를 털어놓는다. 겨울이면 내다 파는 연탄을 대준 스웨터 공장에서 연탄 값을 떼먹고 날랐다는 것이다. 공장이 망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가리봉동에 더 크게 차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떼인 돈을 받으러 가야 한다고. 그 돈을 받으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다. 그는 원래 농사꾼의 아들로 도시물 좀 먹어보겠다고 도시로 나온 사내였다. 그러나 이것저것 손을 대봤지만 다 말아먹고 잘 안 되고 다시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운다.
술을 먹으면 우는 것은 그의 주사였다.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 했다. 그런 그를 보고 그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가 공사비를 부풀려 적었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손익을 따져가며 계산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서였다.
그는 임씨의 핏발 선 눈을 마주 보지 못하였다. 엉터리 견적으로 주인 속이는 일꾼이라고 종일토록 의심하며 손해 볼까 두려워 궁리를 거듭하던 꼴을 눈치 채이지는 않았는지, 아무래도 술기운이 확 달아나버리는 느낌이었다. (194쪽,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으로 가야 한다)
그는 그에게 어떤 위로도 하지 못하고 망연히 하늘만 바라본다.
방울새
홀로 아이를 키우는 두 여자가 주인공이다. 여자 중 한 명은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식당 문을 닫고 대공원으로 나들이를 간다. 이웃에 사는 다른 여성과 함께. 두 사람은 친구 사이로 식당을 하는 여자는 이혼 후 친구가 살고 있는 부천으로 와서 식당 문을 연다. 이 여자의 친구는 남편이 무슨 죄를 저질러 감옥에 간 상태이다. 남편은 감옥에 가기 전에도 그다지 가정에 신경을 쓰는 남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남자가 그립지 않느냐는 친구의 말에 그녀는 생각한다.
한때는 함께 살았지만 그것보다 더 오래 떨어져 있었던 남편. 남자가 그립다면 그것은 반드시 남편이어야 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운 것이 왜 하필 남자여야 하는가를 그녀는 반문해본다. 어린시절 마당에 묻어둔 작은 돌멩이를 그리워할까. 개울가에 띄워보낸 낡은 운동화 한 짝, 스치고 지나가버린 처녀들의 향수 냄새, 그 냄새의 기억에 묻어오는 라일락의 작은 꽃뭉치들과 천장의 다락에서 누렇게 바래가는 일기장들. 그리운 것은 항용 추억의 끝에 서 있고, 긴 시간을 지낸 후에 바라보면 세상은 언제나 얼룩투성이의 낙서로 남아 있었다. (211쪽, 방울새)
살아가면서 어찌 좋은 기억들만 쌓일까. 좋은 일, 나쁜 일 두루 겪다 보면 얼룩처럼 여러 흔적들이 남게 된다. 표백제를 잔뜩 넣어 빨아도 절대 하얗게 표백될 것 같지 않은 누런 얼룩 같은 것. 그것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들은 아닐까. 그녀에게 있으나마나한 남편의 존재는 얼룩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그리고 그녀는 대공원 동물원에서 방울새를 본다.
방울 같은 목소리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만 그것은 방울새로 불려진다. 노래하지 않고 있는 방울새는 단지 잿빛 깃털을 가진 한 마리의 날 것에 불과하였다. (220쪽)
유리벽 안에 갇힌 방울새를 보며 그녀는 남편을, 자신을 생각한다. 방울새에 스스로를, 또 철창 안에 갇힌 남편을 투사해서 바라봤던 것이리라. 그녀는 대공원을 빠져 나오며 수많은 인파 속에서 부모와 떨어져 미아보호소에 가게 된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 아이들을 구경하듯 힐끔거리는 눈빛에 그녀는 말을 잃는다. 아마, 그 모습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또 남편의 모습을 봤던 것이리라. 길을 잃은 자신의 삶을.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황급히 대공원을 빠져나온다. 그녀는 습관처럼 눈두덩을 짓누른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두 여자의 이야기였다. 누구나 자기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 살아간다. 살아남기 위해 결사적으로 목을 늘여빼서 하나라도 더 받아먹으려 드는 기린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던 것처럼 그녀는 경련 때문이 아니라 울지 않으려고 눈꺼풀을 짓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속으로 삼켜야 할 말,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묵직한 말은 소화되지 않는 삶이라는 덩어리일지도 모를 일. 살아남기 위해, 다시 살아가기 위해 속으로 삭히고 숨겨두어야 하는 마음들이 그녀들을 내리누른다. 어쩌면 두 여자의 대공원 나들이는 애써 잘 살고 있다고 남에게 보여줘야 하기에 나선 나들이처럼도 보였다. 어쩌면 대공원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인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찻집 여자
행복 사진관을 운영하는 엄씨의 이야기다. 다른 소설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엄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원미동에서 인삼 찻집을 개업한 여자와 엄씨의 이야기이다. 원미동에서 애처가로 소문이 나 있는 행복 사진관의 주인 엄씨는 인근에 인삼 찻집을 개업한 여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이 들통이 나서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여자는 원미동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고, 엄씨도 그런 여자의 마음을 알기에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 먹고 마지막으로 만나 같이 밥을 먹는다.
둘은 헤어지지만 인삼찻집 자리에 화장품 가게를 열겠다는 여자가 나타나고, 부동산 주인은 그에게 찻집 여자를 설득해 보라고 종용한다. 그런 와중에 간판이 떨어진다.
행보사진관. 행복의 '복'자에서 기역 받침이 날아가버리고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받침을 찾아 제자리에 붙여놓지 않으면 영영 달아나버릴 행복이기나 한 것처럼 그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중략) 센 바람에 그깟 받침 하나는 이미 십 리 밖으로 날아갔을 것이었다. 받침 조각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행보사진관. 글자들 사이로 여자의 얼굴이 다가왔다. 여자가 떠나거나 떠나지 않거나 간에, 날아가버린 기역 받침을 다시는 찾을 수 없으리라. (266쪽, 찻집 여자)
그는 이전의 평온한 생활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바람에 떨어진 사진 간판 글자를 보며 깨닫는다.
일용할 양식
일용할 양식은 형제슈퍼 김반장과 쌀과 연탄을 파는 김포상회를 운영하다가 김포슈퍼로 가게를 확장 개업한 경호네의 이야기다. 두 슈퍼는 가격 경쟁을 하느라 물건을 헐값에 팔고 그 사이에 새로 문을 연 싱싱청과물 때문에 두 가게 사장들은 의기투합을 하게 된다. 결국 싱싱청과물은 문을 닫게 되고, 그 자리에 전파상이 들어올 거라는 소리가 돌면서 전파상 주인의 아내가 근심하는 모습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지하 생활자
지하 생활자는 승용차의 바닥 커버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지하방에 세들어 사는 중인데 화장실이 없어 주인집 화장실을 이용해야 함에도 주인집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아 화장실을 마음 편히 이용하지 못하고 밤까지 기다렸다가 밖에서 볼 일을 본다. 그가 일하는 공장도 지하에 있는데 어느날 출근하니 사람들이 좀체 일을 시작하려 들지 않는다. 데모를 한다는 것이었다. 파업이었다. 그는 확실하게 거기 끼여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못한 채 어정거리며 공장을 지키게 된다. 데모를 했던 공장 동료들은 오후가 되어서 별 소득도 없이 슬그머니 공장으로 돌아온다. 사장은 보너스 인상을 요구하며 데모를 했던 그들에게 이번 월급 봉투에는 돈을 조금 더 넣었다며 나눠준다.
그리고 그는 집주인과 담판을 보리라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이 드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다. 알고보니 주인집 여자는 불륜을 저질러 밖에 나갈 수 없는 처지였고 자신의 남편과 바람을 핀 것을 알게 된 여자가 찾아와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고 간 후 그는 미워하던 주인집 여자를 동정하게 된다는 뭐, 그런 이야기이다.
한계령
한계령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같기도 한데,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원미동에 사는 작가에게 어느날 전화가 걸려온다. 어릴때 살았던 동네에서 찐빵 집을 하던 사람의 딸이었다. 그녀는 밤무대 가수로 이제 이 생활을 청산하고 카페를 차릴 예정이라며 그녀에게 부천에 있는 한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자기를 보러 오라고 얘기한다. 며칠 고심하던 여자는 그녀를 만나러 가게 되고 그녀가 부르는 한계령을 듣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장이 되어 굴곡 많은 삶을 살며 가족들을 먹여 살린 오빠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집에 돌아와서야 나는 내가 만난 그 여가수가 은자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많이도 넘어져가며 그 애는 미나 박이 되었지 않은가. 울며울며 산등성이를 타오르는 그 애, 잊어버리라고 달래는 봉우리, 지친 어깨를 떨구고 발 아래 첩첩산중을 내려다보는 그 막막함을 노래 부른 자가 은자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363쪽, 한계령)
굽이굽이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굴곡진 세월을 한계령을 넘듯 넘어가며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희망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네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으악새 할아버지의 사연이 궁금해 으악새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안 나와서 약간 의아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언젠가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재미있게 읽었고, 생각할 것이 많은 소설집이라 좋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