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들리에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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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하게 책읽는당에 신청하고 당첨되어서 받은 김려령 작가의 소설집 '샹들리에'에 수록된 단편소설 <고드름>. 단편소설은 랜덤으로 발송되는데 나에게 온 소설은 '고드름'이었다. 단편소설이기 때문에 단숨에 다 읽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었다.


고드름은 학원을 땡땡이 치고 PC방에 모여 게임을 하던 고등학생들이 살인모의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이들이 있는 장소가 PC방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드러난다. 때문에 뭔가 진짜 살인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로 흘러가고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조짐에 왠지 심장이 쿵쾅거리지만 결국 이들의 상상에서 끝이 나고 PC방을 나서던 아이들은 방금 PC방에서 나간 아저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119를 부른다.


'오~착한 아이들이였네?' 그러나 상황은 아이들이 생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칭찬 받아 마땅할 일을 했지만, 칭찬은 커녕 경찰서에 끌려간 것이다. PC방에서 살인모의를 한 탓이었다. 이 단편 소설 제목이 고드름인 것은 아이들이 범행 도구로 '고드름'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고드름은 무언가를 날카롭게 찌를 수 있다. 그러나 날이 풀리면 녹아서 금방 사라진다. PC방에 모인 아이들은 게임을 한다. 가상현실이다. 고드름처럼 게임방을 나오면 아이들은 뛰어난 검투사에서 평범한 고등학생이 된다. 가상현실과 가상 살인모의는 어쩐지 닮은 구석이 있다. 고드름처럼 스르르 녹아버리는 세계. 탈출구가 없는 아이들은 PC방에 모인다. 가상현실로 도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상 살인 모의 때문에 경찰서에 끌려 간다.


오해라는 것이 밝혀지고 경찰은 쓰러진 아저씨가 아이들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려 한 것 같다는 낌새를 챈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장 믿어줘야 할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경찰서로 달려와 아이들을 나무란다. 그리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좋은 일을 하고도 경찰서로 끌려 온 아이들은 누구에게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오히려 잘못한 게 없음에도 책임 추궁을 당한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기에 이들은 곧 풀려난다.


사실 확인도 없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어른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곧 녹아버릴 고드름으로 우리는 누구를 찌르고 있는가? 고드름이 녹기 전에 찔러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아이들이 애초 가상으로 모의했던 살인 사건 역시 범인은 있으나 범행 도구가 없는, 살인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짧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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