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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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람들이라 그러겠죠. 그 여자는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싶어해요. 가엾게도 좀 단순한 사람 같아요. 우리가 죄다 굉장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나 봐요. 하여간 우리를 점심에 초대하는 게 즐거운 거죠 뭐. 우리한테 나쁠 것 없구요. 난 그 여자의 그런 점이 좋아요. - P28

사람이 남들의 비난을 의식하면서도 과연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리라 장담하는 겁니까? 누구에게나 양심 같은 것이 있는 법 아닙니까? 언젠가는 이 양심에 걸리지 않겠어요? 부인께서 돌아가신다고 해 봐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롭지 않으시겠어요? - P71

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자리에서 아름답게 행동하고 싶어하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욕망을 볼 때마다 나는 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때로 여자들은 그 멋진 장면을 보여 줄 기회를 갖지 못할까 봐 남자의 장수를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 P92

그때 나는 부인에게 약간 실망했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나는 사람의 인격이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훌륭한 여자에게 그토록 깊은 앙심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한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특질로 형성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한 인간의 마음 안에도 좀 스러움과 위엄,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 - P93

고통이 가시자마자 또다시 독사를 가슴에 다정히 껴안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은 익살극의 소란스러운 대사로 가득 찬 비극과 같았다. 나만은 그를 비웃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늘 내게 고마워했다. 내가 귀를 기울여 주고 이해해 주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내게 한없이 늘어놓곤 했다. 무엇보다 안쓰러웠던 점은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기괴하다는 것 이었다. 사연이 애처로우면 애처로울수록 웃음이 터져 나왔다.

- P103

내게 보냈던 편지에서도 아내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지만, 그는 지금도 아내에게서 좀처럼 눈을 뗄 줄 몰랐다.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하고 있을까. 이 가엾은 어릿광대 같은 사람이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자의 눈에 어려 있는 미소에는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수줍어하긴 하지만 그 뒤에는 깊은 애정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몰랐다. - P106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없이 주워 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 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 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오. 그리고 예술가가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 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우리가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 P113

난 나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네. 내가 보기엔, 사랑에 자존심이 개입하면 그건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야. 생각해 보게. 결혼한 남자가 딴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일이 흔히 있지 않나. 하지만 그 고비가 지나면 결국 아내에게 돌아오지. 아내가 남자를 되찾게 된단 말야. 누구나 그게 순리라고 생각하고, 여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왜 다르겠는가? - P167

난 알고 있었네.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만큼 아내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야. 그야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아무튼 아내는 내 사랑을 받아들였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지. 나는 그 두 사람만 있도록 밖에 나가 일부러 몇 시간이고 들어가지 않았네. 온당치 않게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한 데 대해 스스로 벌이라도 내리는 심정으로 말일세. - P169

사랑은 나중에 절로 생기게 마련이라고 장담하면서. 그것은 안정에서 오는 만족, 재산에 대한 자랑스러움, 누군가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즐거움, 가정을 가졌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 등이 어우러진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감정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여자들은 거기에 무슨 정신적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감정도 열정을 막아 낼 방비책은 없다. - P172

여자는 말이오. 자기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용서하지. 하지만 자기를 위해 희생한 사람은 용서하지 못해.

당신은 여자를 만나 한을 품게 할 만한 모험은 하지 않을 테니 그 점은 안심이 되겠군요. - P222

여자는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정신을 소유하기 전까지는 만족할 줄 몰라. 약해서 지배욕이 강하지. 지배하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해. 여자는 마음이 좁아요. 그래서 자기가 모르는 추상적인 것에는 화를 내는 버릇이 있어. 마음을 쓰는 건 물질적인 것뿐이야. 관념적인 것은 시기나 하고. 남자의 정신은 우주의 저 머나먼 곳에서 방황하는데 여자는 그걸 자기 가계부 안에다 가둬 두려고 하는 거요. - P225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나의 의견을 상대방이 얼마나 존중해 주느냐에 따라 상대방에게 미치는 나의 힘을 측정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싫어한다. 그처럼 사람의 자존심에 아픈 상처를 주는 것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기분이 상했다는 기색을 조금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 P227

당신은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일을 남에게 의지하고 있어요.혼자 힘으로, 홀로 살아가려고 하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에요. 이제 얼마 있으면 병들게 지치고 늙겠죠. 그러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엉금엉금 찾아오게 됩니다. 그때 가서 마음속에 안락과 동정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부끄럽지 않겠어요? 당신은 지금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거예요. 머잖아 당신 안에 있는 인간적인 요 소가 함께 얽혀 사는 삶을 갈망하게 될 거란 말입니다. - P228

이래서 소설은 비현실적이 된다. 남자에게 사랑이란 일상적인 여러 일의 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데도 소설이 그것을 강조하다 보니 실제와는 다른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남자란 거의 없다. 있다 해도 그런 남자들은 별 재미가 없다. - P242

사랑에 빠진 짧은 기간에도 남자는 다른 일들을 하며 그것들에 신경을 쓴다. 직업을 갖고 먹고살아야 하니 응당 그에도 정신을 빼앗긴다. 스포츠에 빠지기도 하고 예술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남자들은 대체로 여러 방면의 활동을 하며, 한 가지 활동을 할 때는 다른 일들은 일시적으로 미루어 둔다. 그때그때 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어, 한 가지 일이 다른 일을 침범하면 못마땅해한다. 남녀가 똑같이 사랑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다른 점은, 여자가 하루 온종일 사랑할 수 있는 데 비해 남자는 이따금씩밖에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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