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
샤센도 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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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명한 후에도 책은 계속 불탄다. 불길은 책의 살이 완전히 불타고 철제 새장에 뼈가 쌓인 후에야 잦아든다. 다 타고 남는 건 대부분 등뼈다. 옅은 크림색 등뼈는 참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이리하여 이 나라에는 올바른 이야기가 담긴 올바른 책만 남는다. - P15

재미있기 때문이겠죠. 책을 불태운 사람은 상상했을 거예요. 이게 인간이라면 얼마나 짜릿할까 상상하고 말아겠죠. 인간을 불태우는 것도, 책을 불태우는 것도 재미있다. 그렇다면 인간으로 책을 만들어서 불태우면 얼마나. - P48

가볍고 얇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더군요. 거기에는 글씨가 그야말로 빽빽하게 줄지어 있었어요. 한 글자 한 글자가 의미를 지니고서 여기 없는 자의 이야기를 전하죠. 그야말로 기적 같았어요. 네, 기적이고 말고요. 왜 잃어버리면 견디기 힘들 그 기적이, 그토록 약한 물건에 담겨 있는 걸까요. 뼈조차 없는 그런 물건에. 직접 보고 나니.... 책은 불태우기 위해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군요. - P48

인간은 반드시 탈바꿈한다. 나이를 먹어 몸이 불편해지고 없어져서 탈바꿈한다. 또는 심한 병에 걸려 고열로 몸부림치다기 탈바꿈한다. 탈바꿈은 누구나 겪는 일 이라고 스승님은 말했다. 그러니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 P57

탈바꿈한 인간은 인간의 몸을 버리고 다른 동물로 다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자의 숙명이다. 어떤 인간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 - P58

순간 가슴속에서 정체 모를 공포가 고개를 쳐들었다. 괴물을 봤을 때 느끼는 공포와는 다른, 뭐라고도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이 감정은 대체 뭘까? 왜 이렇게 무서울까. - P76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 하물며 쾌락을 위한 폭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모든 인간이 당연하게 공유하는 규칙을 나도 엄격하게 지켰다. 그리고 나도 남에게 험한 꼴을 당하는 건 싫다. - P107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사냥꾼을 죽이고 나서 어떻게 할지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욱신욱신 쑤시는 온몸이 비명을 질렀고, 시야는 흐릿하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목도 찢겨나간 것처럼 아팠다.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 P130

뭉개진 양쪽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고, 코도 잘려 나갔다. 기구로 억지로 벌린 입에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오른손은 못을 수없이 박아서 마치 바늘꽂이 같았고, 왼손은 줄로 갈아버린 듯했다. 두 다리는 숯덩이로 변했고, 의자 밑에는 핏물이 고여 있었다. 남자는 이제 제대로 움직일 수 조차 없는지 그저 몸을 움찔거리기만 했다. 문을 활짝 열어둔 건 조심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방에 고인 냄새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P164

복수하고 싶었어.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거든. 무례하게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도, 아무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 주제에 내 곁에 있었던 것도. 다들 가짜가 아니라 진짜가 좋다면서, 필사적으로 꾸며낸 나를 거짓말쟁이 취급했으니까. - P204

누군가를 구하는 것이 기분 전환에는 최고죠. 왜 이렇게 사는 건지 모르는 사람보다, 왜 이렇게 죽는 건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불행합니다. 보람을 느끼면 좋겠군요. - P266

인어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존재야. 그녀들은 바닷속에 비치는 햇빛을 받아 잉태하고, 죽을 때는 빛으로 돌아가지.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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