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치 타인인 듯, 구경꾼들 중의 한 사람인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지쳐 보이는 아내의 얼굴을, 루주가 함부로 번진 듯 피에 젖은 입술을 보았다. 물끄러미 구경꾼들을 바라보던, 물을 머금은 듯 번쩍거리는 그녀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 P76

많은 것들이 그의 안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신은 정상적인 인간인가. 또는 제법 도덕적인 인간인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인가. 확고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의 답을 그는 더이상 안 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 P88

가슴이, 아니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그는 양쪽 유리창을 활짝 열었다. 밤바람과 차들의 굉음 속에 그는 어두운 간선도로를 질주했다. 떨림은 손에서부터 시작해 온몸으로 번져, 숫제 이를 부딪치며 그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속도계를 볼 때마다 흠칫 놀라며, 경련하는 손가락으로 눈자위를 문질렀다. - P160

지금 베란다로 달려가, 그녀가 기대서 있는 난간을 뛰어넘어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삼층 아래로 떨어져 머리를 박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혀 서서,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인 듯, 활활 타오르는 꽃 같은 그녀의 육체, 밤사이 그가 찍은 어떤 장면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번쩍이는 육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 P178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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