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사람은 저와는 무관한 존재였습니다. 없는사람이었어요. 그런 아버지를 만난다는 게 도무지 현실로 느껴지지 않아서 그럽니다.

- P134

지나친 생각일지 모른다거나 기분 탓일지 모른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불확실한 정보를 정밀하게 조사하는 게 저희 일이니까요. 억측이든 무책임한 소문이든 다 괜찮습니다. 그런데서 단서가 발견되어 범인 체포에 이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거든요. - P151

우리 집은 정상이 아니야.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누구 대신이었어. 자식 둘을 잃은 엄마 아빠가 자신들의 슬픔을 달래려고 놓은 아이잖아. 어릴 적부터 줄곧 그런 말을 들었어. - P170

엄마가 죽어서 자신에게 기운을 북돋워 줄 사람이 또 하나 줄었으니 절망스럽겠지만, 나한테는 기대하지 마. 나도 슬프지만, 아빠에게 의지하지는 않을 거야. 아빠에게 기대지 않을 테니까 아빠도 내게 기대지 마. 나를 마음의 버팀목이나 인생의 보람으로 삼지 말란 말이야. - P171

죽은 언니 오빠에 관한 얘기를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줄곤 들었을 테죠. 자신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아이를 하나 더 낳기로 했고 그 아이가 바로 너다. 그렇게까지 대놓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런 뉘앙스가 전해졌을 거예요.부모로서야 악의가 없었겠지만 듣는 쪽에서는 상처를 받았겠죠. 부모의 사랑을 의심했다 해도 이상 할게 없어요. - P209

지난 십수 년간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제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확신이 깊어졌죠. 한 부부의 아이를 전혀 상관없는 여성이 낳게 하고 말았으니 이 일을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이대로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한 편으로 그럴 리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날이 올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 P339

아이에 대한 욕심은 오래전에 버렸어요. 전남편과 이번에도 안 생기면 헤어지자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결국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이혼했고요. 이후로 그 일은 깨끗이 잊고 살아왔어요. 아이가 없는 인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내 아이가, 정말로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건강하게 살고 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아요. 꿈만 같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네요. 이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요. - P350

만날 수는 없다 해도,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했어. 그리고 그 끈이 아무리 길어도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 죽을 때까지 그 끈을 놓지 않겠다고 하더구나.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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