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자신의 몸속에서 다른 존재가 꿈틀거리는 순간, 엄마로 다시 태어났다. 달이 차오를수록 생명으로 가득 찬 배는 더 단단해졌고, 작은 발뒤꿈치가 배를 두드릴 때마다 여자는 또 한 번 태어나기 위한 예행연습을 했다. - P42

이 세상에 태어나 드디어 그에게도 행복이란 달콤함을 맛보게 해주려는 신의 계획에 마치 악마가 분노, 의심의 두 방울을 뿌려 망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신은 공평하지 못했고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못했다. 누군가는 불공평한 인생을 밟고 일어섰고, 누군가는 그 불공평 아래에서 끝내 무너졌다. - P152

삶은 지독히 불공평할지 몰라도, 죽음만큼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온다. 벅찬 사랑을 받으며 생을 만끽한 이에게도, 미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아이에게도, 이제 그만 쉬고 싶다며 고단한 몸을 누인 노인에게도, 끝은 예외 없이 죽음이다. 제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이가 어디 있으랴. 삶을 스스로 놓아버리려는 이조차, 인생의 어느 모퉁이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될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 P179

소중한 것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는 잔인한 폭력이 불러오는 공포의 얼굴과 다를 것이 없었다. - P233

살아 있는 게 더 힘든 삶이 있다. 죽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살아 있는 삶. 죽은 자는 알 수 없는 살아 있음의 무게를 산 자는 매일 감당해내야 한다. 그 무게를 견딜 이유를 잃는 순간, 산 자는 살아갈 용기를 잃는다. - P256

리치먼드힐의 거리 위에 물기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오가고 있었다. 도시는 늘 그랬다. 누군가 사라진 뒤에도, 누군가를 대신해 살아남은 뒤에도. 리치먼드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봄을 지나 여름을 맞았고, 여름이 가기 전 가을을 불러왔으며. 겨울은 또 다시 조용히 그곳으로 들어왔다. 도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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