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침대에 누워서 편하게 쉬는 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넌 몰라. 엄마는 네가 죽을까 봐 매일 울었어. 몸이 아무리 아파도 너를 보살피는 데 최선을 다했어. 너를 사랑하니까. 너를 살리는 게 먼저니까. 엄마의 행동은 다 소영이를 위한 거라고. 소영이도 알지? 엄마가 항상 너를 걱정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거 알지?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지?
P.26 중에서 - P26
희망은 사람을 들뜨게 만들고, 기운을 불어넣고, 행복하게 한다. 그리고 소영은 나중에 알았다. 희망이 주는 행복은 때로 사람을 무지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P.45 중에서 - P45
모든 것이 새로웠고 처음 보는 것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나 설렘이 아니라 불안에 가까운 두근거림이었다. 소영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유리창에 반사된 소영은 주름 하나 없는 원피스를 어색하게 입은 채 멍한 표정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영은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다.
P.53 중에서 - P53
모든 것이 너무나 달랐다. 병원에서 꿈꾸던 집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상상 속의 집은 깨끗한 유리컵 속의 물처럼, 소영이 알지 못하는 부정적인 것들과 섞이지 않은 채 존재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택시를 타고 멀미를 할 필요도 없고 지저분한 골목길과 이어져 있을 필요도 없었다. 소영이 상상하던 방에는 거미나 먼지 낀 창문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나 현실의 집은 달랐다.
P.69 중에서 - P69
엄마는 나에게 더한 짓도 많이 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사소한 일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미쳤을까 봐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게 엄마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미치기를 바랐다. 자기 자신처럼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엄마처럼 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미친 사람은 우리 엄마다.
P.80 중에서 - P80
소영은 그동안 얼마나 의미 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굉장히 쉽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사고로 모든 기억을 한 번에 잊어버렸으니까. 앞으로도 엄청나게 노력하지 않으면 기억이 금방 사라져버리게 될 거라고 믿었다. 멀리서 흐릿하게 본 것이라면 더더욱 그럴 줄 알았다.
P.137 중에서
- P137
그러나 무엇을 아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불편할 뿐만 아니라 무거웠다. 마음이 빛의 무게로 짓눌렸다. 운명이 소영의 생명을 시험했던 때 엄마가 지켜냈다는 부채를 언제까지 갚아나가야 하는지 생각하면 숨이 막혔다. 엄마는 그게 좋아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P.151 중에서 - P151
엄마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엄마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엄마니까. 내 안에도 엄마의 닮은 모습이 있다. 그것이 괴롭다. 나를 점점 더 고통스럽게 한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집이 나를 죽이고 있다. 이 집에 살면서 깨달은 것은 나는 엄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겠지.
P.176 중에서 - P176
나는 엄마의 결혼 생활이 서서히 어그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나는 엄마가 가장 닳고 싶었던 여자의 특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엄마는 나를 모방해야 할지 부정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성장할수록 엄마의 인생은 퇴색해 간다고 느낀 거 같다. 엄마는 내 존재 자체와 경쟁해야만 했다.
P.192 중에서 - P192
엄마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끊임없이 세뇌한다. 많은 수고를 들여서 아빠와 소영을 돌보면서도 함부로 대한다. 엄마는 그냥 스스로가 엄마로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이유로 소영에게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엄마는 자 기가 마음대로 통제할 사람이 사라지는 게 무서워서 소영이 기억을 되찾는 것을 두려워한다. 소영이 스스로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P.234 중에서 - P234
엄마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나를 더 미치게 했다. 현실에 분명 존재하는 것인데도 엄마는 부정했다. 증명해 보라고 했다. 증명할 방법이 없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느 순간 항의를 포기했다. 집에서 쫓겨나면 우리 식구가 갈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P.251 중에서 - P251
나는 죄를 지었다. 엄마를 사랑할 수 없는 죄.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엄마를 사랑한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는 죄를 저질렀다. 나는 엄마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죄를 인정할 때까지 나에게는 엄마가 될 자격이 주어져서는 안 됐다. 나는 영원히 참회해야 한다.
P.254 중에서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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