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내가 어떤 ‘주의‘를 일으킬지를 결정합니다.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대상에게는 저절로 마음이 움직이고, 지루한 느낌의 대상에는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산만한 사람도 자신의 감정이 쏠리는 일에는 집중하게 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일이 있는 거죠. 결국 산만하다는 것은 감정을 걸 수 있는 대상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 감정을 쏟을 만한 일이 없다는 거죠.
P.33 중에서 - P33
집중은 결국, 내가 지금이 순간, 세상과 얼마나 교감하며 살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하나의 척도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집중의 감각은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모든 순간에 적용되어 어제와 다름없는 세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때로는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마음을 붙잡아주는 구원의 손이 되기도 합니다. 불안이 밀려와 숨이 막힐 것 같을 때, 분노가 치밀어 올라 이성을 잃을 것 같을 때, 무기력에 빠져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나는 언제라도 발바닥이 땅을 딛는 감촉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손끝에 닿는 물의 차가움으로, 코끝을 스치는 공기의 흐름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P.38 중에서 - P38
거울처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비추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그런 방식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관찰이 점점 섬세해지고 안정되면, 관찰의 시야가 넓어집니다. 집중하고 있는 대상뿐 아니라 ‘대상‘ 을 바라보는 ‘나 자신‘까지도 함께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내가 거울 밖에서 거울을 보고 있 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가 되는 거죠.
P.57 중에서 - P57
외부의 환경을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내가 원하는 심상을 그릴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호흡과 만나면 몸과 마음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이 풀리고 굳어 있던 몸이 이완됩니다. 바로 이 순간이, 명상이 내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따뜻하고 지혜로운 무기가 되는 순간 입니다.
P.81 중에서 - P81
타인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감싸안는 삶을 살다 보면, 비판적 사고보다 포용과 용서를 위한 공감의 정서가 강해집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감만 하다 보면 오히려 정서적 균형이 깨지게 됩니다. 지나친 포용은 자기 보호 본능을 무디게 만들고 자연스러운 분노나 감정의 표출을 억제해서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죠.
P.125 중에서 - P125
어둠이 걷히면 빛이 오고, 결핍이 사라지면 풍요가 온다고 믿는데 익숙한 우리는 고통이 물러나면 곧 행복이 찾아올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고통이 물러난 자리에는 그보다 더한 공허와 무기력이 자리잡을 때가 많으니까요. 문제가 사라진 마음은 잠시 잠깐 편안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기쁨으로 가득차지는 않습니다.
P.147 중에서 - P147
감정은 영원히 타오르지 않습니다. 충분히 불타오른 분노는 점차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거칠던 호흡이 차분해지고, 굳었던 어깨가 풀어집니다. 떨리던 손끝이 진정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현실로 돌아옵니다. 방금 전의 말과 행동이 떠오르고, 죄책감과 미안함이 마음을 스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안개 처럼 스며들었던 감정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립니다. 조금 전까지 나를 지배하던 분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몸과 마음은 다시 고요한 일상의 감각을 되찾습니다.
P.186 중에서 - P186
커피나 차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컵을 드는 손의 악력, 컵을 잡은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 첫 모금이 입안에 퍼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고 있다면 차를 마시는 시간도 명상이 됩니다. 설거지를 할 때도, 샤워할 때도, 심지어 하품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P.194 중에서 - P194
인간은 고통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안전한 거리에서 관찰하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일종의 생존을 위한 훈련과 같습니다. 고통받는 사건을 관찰하면서 만약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무의식적인 대비를 하는 거죠.
P.200 중에서 - P200
감정을 바라보세요. 슬픔이 있으면 슬픔을 바라보고, 기쁨이 있으면 기쁨을 바라보세요.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 올라오면 잠시 고개를 돌려 호흡을 바라봅니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안정될 때까지요. 그리고 다시 힘들지 않은 감정이 올라오면 바라보세요. 도망가도 괜찮습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해도 괜찮아요. 바라보고 싶은 것을 바라보는 것만큼, 바라보기 싫은 것을 바라 보지 않는 것도 알아차림입니다.
P.206 중에서 - P206
나에 대한 집착이 사라질 때, 우리는 육체와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육체는 여전히 늙고 아프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아 소멸합니다. 마음은 그런 소멸을 두려워하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나의 불행과 나의 두려움‘으로 여기지 않게 되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궤적을 만듭니다.
P.219 중에서 - P219
세상의 중심이라는 아집을 내려놓고 만나는 ‘나 자신‘은 고요합니다. 분노와 원망을 내려놓고 보는 세상은 평온합니다. 잘하고 있는지, 판단하지 않고, 분석하지 않는 관계는 여유롭고 진실됩니다. 일상이 명상이 될 때, 우리 앞에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 펼쳐집니다.
P.220 중에서 - P220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작은 속삭임 하나가 하루를 바꾸고, 하루가 모여 삶을 바꿉니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삶을 향한 기도가 되고 내면을 발을 하는 명상이 됩니다. 어떤 특별한 믿음도, 수련 경험도 필요없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단어나 문장을 선택하고,호흡과 함께 반복하면 됩니다.
P.237 중에서 - P237
‘감사합니다‘는 더는 특정한 대상을 향한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존재가 존재 자체를 환대하는 말, 삶이 자신을 긍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결국 감사는 수행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게 해준 것이 명상이 제게 건네준 즐거운 선물이었습니다.
P.250 중에서 - P250
영상에서는 ‘용서‘가 수행의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용서하는 방법도 남다릅니다. 상대가 나에게 욕을 퍼붓고 괴롭히더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입니다. 혹은 원망과 분노 또한 모두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니 집착하지 말고 흘러가게 두라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용서가 명상가의 바람직한 태도로 여겨집니다.
P.256 중에서 - P256
대부분 애정과 사랑은 하나의 특별한 대상에만 집중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 내가 좋아하는 장미처럼요.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말고 조금씩 사랑의 범위를 확장해보세요. 강아지에 대한 사랑을 고양이나 소, 말 같은 더 많은 동물에 관한 관심과 애정으로요. 장미꽃에 대한 사랑을 꽃들이 어우러진 들판이나 숲, 나아가 식물 생태계 전체에 대한 애정으로 확장해가는 거죠.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유사한 속성을 지닌 대상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느끼게 되니까요. 다만 억지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에만 빠지지 않으면 됩니다.
P.25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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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명상은 특별한 장소나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출퇴근 길이나, 외출할 때, 멀리 떠나는 여행 중에 어디서든 가능 합니다. 중요한 건 걷는 순간에 일어나는 감각의 변화에 눈을 뜨고, 걷고 있는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P.291 중에서 - P291
우리는 걷기의 경이로움을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발끝을 따라 마음이 깨어날 때, 걷기는 명상의 길이 됩니다. 멀리서 보면 건강의 길, 사유의 길, 구원의 길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닙니 다. 세상의 모든 강물이 결국 하나의 바다로 모이듯, 이 모든 길이 결국 온전한 깨어 있음의 길로 이어져 있음을 걷기 명상은 알게 해줍니다.
P.291 중에서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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