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죽은 자의 머리카락을 뽑는다는 게 나쁜 짓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여기 널린 시체들은 모두 그만 한 일은 당해도 싼 인간들이야. 내가 방금 머리카락을 뽑은 저 여자는, 뱀을 네 치씩 토막 내 말린 걸 말린 생선이라 속이고 무사들 한테 팔러 다녔어. 역병에 걸려 죽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걸 팔고 다녔겠지. 그런데 하필 그 여자가 파는 생선 맛이 좋다 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무사들이 찬거리로 꼭 사 갔다더군. 나는 그 짓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네. 굶어 죽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 그 어쩔 수 없는 걸 잘 아는여자니 내 짓도 눈감아주겠지.

P.16 중에서 - P16

죽은 듯 쓰러져 있던 노파가, 시체 속에서 알몸을 일으킨 건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노파는 중얼거리는 듯한,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을 더듬어 계단 입구까지 기어갔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짧은 백발을 거꾸로 늘어뜨린 채, 문 아래를 굽어보았다. 밖에는 그저 짙고 어두운 밤이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P.17 중에서 - P17

석가모니께서는 극학의 연못가에 서서 이 모든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간다타가 피의 연못 밑바닥으로 돌처럼 가라앉아 버리자, 슬픈 얼굴로 다 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오직 자신만 지옥에서 벗어나려 했던 간다타의 무정한 마음이, 그 마음에 걸맞은 벌을 받아 끝내 원래의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 석가모니의 눈에는 한없이 한심해 보이셨겠지요.

P.25 중에서 - P25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 가지 감정이 있다. 누구나 남의 불행에는 연민을 느낀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 불행에서 벗어나면, 이번에는 묘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것이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우리는 그 사람을 다시 한번 같은 불행 속에 빠뜨려보고 싶은 마음마저 품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내심 그 사람에게 은근한 적의를 품게 된다.

P.54 중에서 - P54

다소의 과장을 허락한다면, 내가 게사에 품었던 사랑이라는 것도 실은 그 욕망을 아름 답게 치장한 감상적인 마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 증거로 게사와의 관계가 끊긴 후 삼 년 동안, 물론 나는 그녀를 잊지 않았음이 틀림없지만, 만일 그 전에 내가 이미 그녀의 몸을 알았더라면, 과연 그 뒤에도 여전히 있지 못하고 그리워했을까. 부끄럽지만, 나는 그렇다고 답할 용기가 없다.

P.68 중에서 - P68

사랑하지도 않는 그 사람에게.... 나를 미워하고, 경멸하고, 욕정에 사로잡힌 그 사람에게.... 나는 내 추함을 보게 된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던 걸까. 그의 품에 안겨 그 열에 들뜬 한순간, 모든 걸 속이려 했을까. 아니면 나도 그처럼 더러운 욕정에 휘둘렸던 걸까. 그 생각만으로도 부끄럽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그 사람의 품을 벗어나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실감했다.

P.76 중에서 - P76

스스로 죽을 용기조차 없던 나는, 세상의 눈 에 조금이라도 착하게 보이길 바랐다. 그런 마음은 아직 용서받을 여지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비열했다. 더 추했다. 남편의 대신이 되겠다는 명목 아래, 나는 저 사람의 증오에, 저 사람의 멸시에, 그리고 저 사람이 나를 가지고 논 그 사악한 정욕에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그 증거로, 저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달빛 같은 묘한 생생함도 사라지고 단지 슬픔만이 내 가슴을 얼어붙게 했다. 나는 남편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죽으려 한다. 상처 입은 억울함과 더럽혀진 몸의 원한, 그 두가지 때문에 죽으려 한다. 나는 살아 있는 가치뿐 아니라, 죽음 가치조차 없었다.

P.78 중에서 - P78

나는 간신히 삼나무 밑동에서 지친 몸을 일으켰다. 내 앞에는 아내가 떨어뜨린 단도 하나가 번뜩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한 번에 내 가슴팍에 찔러넣었다. 무언가 비릿한 덩어리가 욱하고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고통은 전혀 없었다. 다만 가슴이 서늘해지자, 사위는 더욱 고요해졌다.

P.149 중에서 - P149

주방은 의외로 밝았다. 하지만 한쪽에 늘어선 부뚜막마다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지나면서, 흰 모자를 쓴 요리사들이 냉랭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동 시에 내가 추락한 지옥을 절감했다.

P.198 중에서 - P198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경험이었다...이제 나는 더 이상 한 줄도 쓸 힘이 없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누군가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조용히 목을 졸라 끝내줄 순 없을까?

P.234 중에서 - P234

무엇 때문에 이 아이도 태어났을까? 이렇게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 또 왜 나 같은 인간을 아버지로 두게 된 운명을 짊어지게 됐을까?

P.252 중에서 - P2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