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많은 사람이 죽은 뒤에 최후의 심판이 기다린다고 믿지만, 이제 이와 경쟁하는 죽음 전 심판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근대화되고 세속화된 심판이다. 우리의 죄 목록은 성 베드로의 엄청난 기록부에 새겨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뇌에 담겨 있다. 그 열쇠를 찾는 데는 아마도 신경학자 한 팀이면 족할 것이다.하지만 그렇다 해도 누가 하느님 노릇을 하겠는가? 솜씨 좋은 조력자에 불과할 뇌 수술 전문의는 아니다. 따라서 재판관 노릇을 하게 되는 건 우리 자신일 것이다. 이것은 자기 방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거꾸로 이것이 우리가 성장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되지 않는 한.
P.21 중에서 - P21
행복한 시간은 그 순간에 소진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불행하고 황량하고 거짓되고 질투심에 사로잡히고 편협한 시간은 일반적으로 억눌렸다가 나중에 슬픔, 격노, 자기연민 과 함께 일기에서 범람한다.
P.96 중에서 - P96
죽음을 처음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 나는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어떤 것, 여행의 끝에 있는 종점, 다시 출발할 필요가 없는 도착지의 이미지가 아 나었다. 오히려 나는 죽음을 늘 있는 것, 나의 삶과 나란히 늘어선 길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시점에라는 어떤 예상치 못한 일군의 요소가 죽음의 방향을 갑자기 트는 순간 죽음은 내 길을 가로지르며 나를 말살할 수 있다.
P.105 중에서 - P105
영원한 무에서 오고 그곳으로 돌아간다. 이런 생각은 이미 죽은 자들을 향한 우리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반드시 그 방식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는다 해도.
P.123 중에서 - P123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건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사귀게 되면 만족감도 더 커진다. 갑자기 당신이 있는 곳에 완전히 신선하고 익숙하지 않은 삶이 나타난다. 발견되지 않은 과거와 아직 탐험해야 할 미래가 눈앞에 있다. 따라서 지금 이야기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것이 ‘새로운 새 ‘ 친구의 즐거움이다. 반면 ‘새로운 오랜 ‘친구를 실제로 사귈 수 있다면, 자족감과 사내들만의 편견에 젖어 들기 십상일 게 분명하다. 감상에 푹 젖어 코르덴 바지를 입고 파이프를 씹으며 맺는 유대감 비슷한 것.
P.144 중에서 - P144
"사랑에 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면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게 역사적으로 꽤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와 소셜미디어로 꽉 찬 오늘날의 세상에서 사랑에 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사실 그래서 지금은 모두가 사랑이 자기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175 중에서 - P175
"나는 한 번도 나쁜 사람이었던 적이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 강력한 반대 증거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공정하다고, 또는 공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 뒤에, 어쩌면 우리의 현재 이해를 넘어선 어떤 근본적 수준에서는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가의 믿음이 대비책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이런 느낌의 출처는 아마도 종교적 믿음의 찌꺼기(또는 심지어 그런 믿음이 충만한 상태)일 것이다.
P.199 중에서 - P199
우리 삶에서는 도착이 먼저 오고 떠남은 마지막에 온다. 도착으로 이어지지 않는 떠남이지만.
P.215 중에서 - P215
우리의 정신적 공간은 생생한 초기 장면들. 그다음에 긴 공백, 그다음에는 반복되는 나날, 그리고 반복되는 혼란이 구름처럼 흐릿하게 지나가고 있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무가치한 현재가 점령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삶은 다시 말해서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이야기로 축소될 것이다.
P.219 중에서
- P219
인간은 종종 사느라 바빠 자신이 인간임을 잊는 듯하다. 적어도 인간이 된다는 게 뭔지, 그 결과가 뭔지 - 따라서 죽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P.222 중에서 - P222
당시 나는 기억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미래의 노쇠를 보여 주는 무서운 지표라고 생각했다. 누가 살아 있고 누가 죽었 는지 모른다는 것이. 요즘은 나 자신이 가끔 그와 똑같은 의문이 생기는 상황에 빠지지만 그것 때문에 속이 상하는 일은 없다. 죽은 것과 산 것의 차이가 전에 그랬던 것만큼 뚜렷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살아 있는 우리는 죽은 이들과 비교하면, 거기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까지 보태서 비교 하면 극단적 소수자에 속한다. 이 때문에 삶은 박약한 순간으로 느껴지고 실제로도 그렇다.
P.227 중에서 - P227
기억이 있고, 그리고 죽음이 있고, 이것은 모든 기억을 지운다. 유족에게는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남기는데, 이것은 처음에는 그 사람이 살아 있던 때처럼 생생하고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은 짧은 환영일 뿐이다.
P.241 중에서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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