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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 『대온실 수리 보고서』 - 솜씨 좋은 이야기꾼의 사실적인 허구스토리. 두 가지 시간 속 주인공들의 성장소설이자 탐사 보고서.
■ 서사와 수사가 뛰어난 두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오버랩 된다. 주인공 최영두와 마리코인 할머니의 이야기가 대온실이라는 공동의 구역에서 두 가지 결이 다른 이야기로 전개된다. 두 주인공의 각각의 성장 스토리가 동시에 이어달리기 하듯 변주되어 있다. 그동안 소설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잔류 일본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한 축이라 조금은 낯설었다. 어찌 되었든 저자의 서사와 수사는 언어의 연금술사처럼 아름답고 당찬 문장들을 만들어 낸다. 고수다운 글귀를 창조해 내는 그녀는 고수다.
■ 한 축 이야기의 주인공이 잔류 일본인이다. 표현되는 문장들이 껄끄럽다. 민족주의자 입장에선 일본을 미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다 싶다. 워낙, 일제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어서 그런가? 이는 「창가의 토토」 애니를 보면서도 느낀 감정이다. 보고 나서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 사실 창경궁에 관한 이야기라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를 지닌 창경궁의 숨겨진 비화라던가 극적인 스토리를 기대했었다. 기대가 너무 지나쳐 버린 느낌이다.
■ 작가의 이야기는 스펙터클과 할리우드 대작에 어울리지 않는 소소하고 잔잔한, 그러면서도 끈질김과 끈적끈적함이 남아있는 이야기이다. 자극적인 폭력과 싸움이 난무하는 이야기가 아닌 조용하고 담담한 소소한 사건들이 계속된다. 우리 이웃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보통의 소재로 글은 이어진다. 사실 대다수의 드라마나 영화들이 의사 • 변호사 • 검사 혹은 폭력배 • 재벌 등을 소재로 꽤 많이 다루고 있다. 마치 세상에 다른 직업군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자극을 원하는 팬층들은 이 소설 같은 드라마, 현실에서 쉬이 접할 수 있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야기 하나로 끌어가는 담담한 보통 사람들의 드라마가 많아지길 고대해 본다.
■ 창경궁에 남아있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인의 어린 시절과 산아가 거울처럼 대비되며, 과거와 현재를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한다. 마리코 할머니를 추억하며 그녀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고 주인공은 그녀가 살았던 시간에 동조된다. 두 축의 주인공들 각각의 시간들이 흐르며 중첩되고 때론 대조되며 참 색다른 맛을 내는 소설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 인용]
■ 구름이 달을 통과하자 달빛이 쏟아졌고 거기서 떼어낸 투명한 빛들이 내가 달리는 방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38p)
■ 서울에서 누구나 가고 싶어 한다는 학교를 다니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누구를 속여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들렀다 가야 하는 집.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54p)
■ 사는 게 친절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면 불친절이 불이익이 되지만 친절 없음이 기본값이라고 생각하면 불친절은 그냥 이득도 손실도 아닌 ‘0’으로 수렴되는 일이다. (68p)
■ 대문 밖만 나가면 아는 얼굴들이 나타나는 섬과, 사람 물살을 헤치고 다닐 때마다 생소한 얼굴들이 차고 슬프게 다가왔다 사라지는 이곳의 봄은 완전히 다른 계절이었다. (85p)
■ 나는 술을 즐기지 않았는데 깨고 나서의 허망함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술이 들어갈 때는 기분이 좋아 박장대소를 하다가도 깨고 나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의기소침해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 (133p)
■ “구원이 뭔데?”
“그건 수난이 그치는 거야.” (155p)
■ 순종이 창덕궁과 창경궁에 박물관과 식물원 그리고 동물원을 만드는 데 동조한 것도 교육을 위해서였다. 순종은 어찌 되었든 왕궁 문을 직접 열어 근대 문물 수용에 앞장서는 행동을 취했다. (166p)
■ 그렇게 묻은 상태로는 전체를 알기란 어려울 것이다. 공동과 침하가 계속되겠지. 개인적 상처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한쪽을 묻어버린다면 허술한 수리를 한 것이 아닐까? (208p)
■ “그럴까요? 저 맞게 길을 가고 있는 걸까요?”
“맞고 틀리는 개념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인생 잘 모르지만.”
(238p)
■ “‘이 문을 거쳐 가며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내 슬픔을 풀 것이다’라고 한 말이 『승정원일기:정조대왕』에 나와요. 슬픔으로 열고 그리움으로 닫는 문인 거죠.” (301p)
■ “아니란다. 영두야. 그건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들이 언제나 흐르고 있다는 얘기지”
세상 어딘가에는 지금 아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스미와 산아가 서로 손을 흔들며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질 때 나는 완성이라고 여겼던 보고서를 다시 이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4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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