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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평점 :
■ 『빛이 이끄는 곳으로』 -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문제를 풀어 범인을 잡아내는 그러한 추리가 아니라, 문제를 풀어낼 때마다 감동과 먹먹함이 몰려온다. 결말이 궁금해서 쉽게 덮을 수 없는 책이면서도, 한 장 한 장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눈시울을 촉촉하게 만든다.
■ 이 책은 건축가로서 작가가 모은 이야기를 하나의 소설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는 정말 낭만적인 사람인 것 같다. 집에 담겨있는 아름답고 신비한 이야기를 수집하기 위해 일일이 건물 편지함에 편지를 써놓았다니 말이다. 그렇게, 건물에 대한 비하인드 이야기들을 모았다는 작가의 스토리는 정말 로맨틱하다. (작가소개 참조하여 인용)
■ 집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존경스럽다. 한국인이면서 주인공을 프랑스 인으로 기술했다. 그만큼 작가의 파리지엔으로써의 내공이 느껴진다. 부러운 점이 한 가지 또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이러한 이야기가 깃들여 질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이다. 오래된 집이 모여 있기만 하면 아파트로 재건축만을 꿈꾸는 대한민국과는 크게 대조되는 일이다. 그나마, 작가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유사한 스토리를 구상한다는 말이 다소나마 기대와 위로가 된다.
■ 실제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묶었다고 했는데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고 완벽에 가까운 내용들이 전개되어 끝까지 몰입할 수 있었고 ‘파리에 그 집이 꼭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건축가가 직업이니까?
■ 이 작품은 건축과 집에 대한 하드웨어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집에 대한 소프트한 이야기, 집에 살았던 가족의 이야기, 그 가족들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과정이 주된 멜로디인 이야기다. 정말 경이롭다. 건축가적인 식견이 있어야만 가능한 내용이라 부럽기만 하다. 또한, 자신감도 생긴다. 나도 나의 전문 분야에 관해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내 머릿속에 꽉차있는 많은 에피소드 들을 말이다.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 인용]
■ 그녀는 세상에는 말로 전하기보다는 직접 보아야 하는 것이 더 많고, 직접 보는 것보다는 눈을 감고 느껴야 하는 것들이 더 많다고 했다. (89p)
■ 그때 처음으로 세상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24p)
■ 기억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습니다. 그 기억이 비록 원망이나 미움일지라도......, 제 어린 시절이 담겨 있는 그 집을 부탁합니다. (205p)
■ 집은 그렇다. 잠시 자신의 생을 사는 동안 빌려 쓰는 공간이다.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그 공간의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사람의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은 차곡차곡 쌓여 그 집의 역사가 된다. (219p)
■ 그에게 4월 15일은 가족이라는 의미의 또 다른 단어였다. (320p)
■ 건축가가 조금 부족한 공간을 만들면 그곳에 사는 사람이 나머지를 추억과 사랑으로 채운다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건축이 완성됩니다. (330p)
■ 모든 이들의 기억의 장소는 바로 집이었다. (35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