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 트리플 37
임솔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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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임솔아의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깊은 내면의 상처가 깔려있다.

어릴 적 기억이든 최근의 사건이든 기억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던 상처들이 일상에서 자꾸 드러나게 된다.

딱히 문제라고 규정 짓기에도 모호하고 그렇다고 아무일도 아니라고 하기엔 상처가 깊다.

[금빛베드러너]에서 처럼 자폐스펙트럼이면서도 아닌 것처럼 모호한 경계에 걸쳐있다.

그렇다고 자폐가 사건의 중심은 아니다.

엄마의 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기제로써 자폐를 드러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글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는데[도희의 한시간]에서 현실 속 지친 도희는 밤기차를 통해 과거의 기억들을 연결시킨다. 암울한 학창시절이 현재와 끊임없이 오버랩 된다.

일상에서 누구나 접하는 평범함이 유독 도희에게 깊은 상념을 갖게 하는 것은 내면의 아픔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딱히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아픔을 낳았다고 연결 짓지는 않지만 스쳐지난 풍경들이 유산히 눈길을 끌게 하는 것이 있다.

작가는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간직한 기억의 파편들을 들쳐내어 외로움과 아픔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글은 어두운 색으로 덧칠 되어진 유화를 보는 듯하다.

[쉴곳]에서도 민영은 오빠 민기집을 찾으면서 현재의 지친 상황을 쉼으로 회복하려 하지만 쉼터는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게 한다.

부모없이 민기와 정화에게 보호받는 민영은 고향같은 장소이지만 여기서 민기와 정화의 서로 다름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자신 속에 담는다.

투닥거림이 반복되면서 이젠 자연스런 일상으로 치부하면서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투닥거림을 통해 쉼을 누리고 있다.

누구나 가진 상처가 때론 아픔으로 때론 치유로 때론 추억으로 자리잡는 것이 일상이라고 작가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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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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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살아가면서 정체성이란 난제 앞에 부딪칠 때가 온다.

대체로 평온함이 일정 지속되고 나면 갑자기 나는 누구인가 하는 본질적 의문이 들고 이내 혼란이 찾아온다.

그러다가 허무함이 몰려오고 자신은 위축되며 사회공동체로 돌아가게 된다.

사회적 규범과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 위로가 되며 자신을 찾기보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과 배경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된다.

가령 나는 어떤 회사를 다니고 있으며 또 어턴 학교를 나왔고 집은 몇평이며 자동차는 무엇인지로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어떤 목표와 철학이 있는지 어떤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는 표현되지 않는다.

거대한 사회공동체 속에서 정작 자신은 길을 잃은 미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인에게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고 길을 찾아주는 나침반 같은 책이 있다.

[지랄 맞을 용기]라는 요상한 제목의 책이다.

세상의 거센 흐름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거친 파도를 타는 서핑같은 자세를 알려준다.

일찍이 살아낸 대단한 위인들의 거침없는 자아찾기가 소개되어 있다.

때론 주눅들게 만드는 권력자 앞에서 기죽지 않는 대범함을 통해 순응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베짱을 갖게한다.

때론 먹고 사는 문제로 꿈을 잃고 사는 이들에게멋진 인생을 소개하기도 하며 운명 앞에 잔혹한 환경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줏대를 배우게 한다.

무한경쟁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두단어 지랄 과 용기를 책을 통해 줄곧 가르쳐준다.

세상에 나는 하나뿐인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까먹고 사는 이들에게 눈치보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교훈을 주고 있다.

역사의 주인공으로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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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영웅들의 시대 - 왕건, 견훤, 궁예, 유금필, 그리고 인생 역전을 노린 승부사들
우재훈 지음 / 주류성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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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난세에 영웅 난다고 한다.

어려운 시대에 난관을 헤쳐나가려는 도전 자체가 영웅적 대응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난세는 언제나 부흥기의 화려함 뒤에 찾아온다.

현재에 안주하고 위험에 무감각해질 때 위기가 찾아오지만 보통은 느끼지 못한다.

서서히 온도를 높여가는 물 속에서 개구리가죽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후삼국 시대가 그랬다.

화려하고 평화롭던 천년국가 신라가 붕괴 되기 시작했지만 통치자는 대처를 하지 못했다.

그러자 분열의 조각들은 세력을 키워갔다.

후백제의 견훤, 고려의 궁예는 자기색깔대로 국가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의 고려까지 탄생하였다.

난세였으니 영웅이 속출할 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명의 지도자들은 나름의 통치스타일이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에서 실패를 줄여가고 정의 미래를 만들ㅇ니가야 한다.

견훤은 상남자 스타일로 나타난다.

호방하고 호전적 성격은 나약한 신라에 비해 돋보이며 세력을 집결하였다.

이러한 장점은 오히려 단점이 되었다.

강한 지도력이 다음 세대에 이양되기에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후계자 구도에 대비하지 못한 채 왕자의 난으로 자멸한 것이다.

물론 건국 초창기를 감안하면지도력의 분산보다 일인으로 집약되어야 함이 있지만 그래도 협력이 필요한 것을 견훤은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궁예라는 인물은 신비롭다.

성장배경이 드러나지 않은 궁예는 강한 카리스마를 지니 지도자로 보인다.

후삼국의 지도자 중 유일하거 전쟁에서 패하지 않은 기록은 뛰어난 리더쉽으로 평가 받을수 있겠다.

아마 후삼국을 이끌어 갈만한 지도력이었을꺼라 생각된다.

그런 궁예는 치명적 한계를 가졌다.

권한이 커질수록 겸손하기 보다 스스로를 높이려하였다.

그로말미암아 철국통치 시대가 도래하였고 결국 스스로에게 올가미를 씌워 시대를 마감케했다.

이는 역사 속에서 빈번하게 드러나는 현상이다.

권력에 취해 민본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높아지려는 지조자는 결국 그 권력의 칼을 온몸으로 받아 끝이 났다.

왕건은 이런 궁예 아래에서 정치경험을 쌓았다.

궁예의 명을 받아 전장에 나섰고 무장의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스스로 취하기보다 주변의 추천과 권유로 왕위로 오르고 칼보다 협의하는 스타일이었다.

궁예의 냉혹한 통치 아래 있던 백성들이 왕건에게 이끌리는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쓰러져가는 신라를 무력으로 누르지 않았다.

신라의 요청에 응하며 대우를 하며 존중하는 태도는 결국 무력 없이 국가를 이양받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오늘에도 지구상에는 전쟁이 이곳저곳 일어나고 있다.

자국우선주의가 팽배해지고 우방도 적국도 없다.

이익이 우선인 시대에 상호존중이 아득하다.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하듯 우리는 정치를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싸워서 이가는 것이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하는 낮아짐이 필요하다.

국가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심화된 양분화를 치달을 것이 아니라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권력이 집중되어 일어나는 자기 오류를 피하여야한다.

권력이 분산되고 이양되어 합의를 이끌어가는 상생이 국가를 든든히 세울 것이다.

난세를 지나온 영웅들에겐 뛰어난 조력자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과 함께 한다는 동지의식 나아가 국민을 믿고 함께 나아가야한다.

국가는 지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후삼국의 영웅들이 가르쳐준 교훈을 잊지않아야 한다.

지금도 여전히 난세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항상 난세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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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에서 국선으로 - 국선변호사의 사건 노트 : 법정에는 늘 사정이 있다
김민경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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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일상은 일반인이 접하기 어렵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방어를 펼치고 잘못한 과오를 법이 허용하는 최소한의 책임을 지도록 조력하는 사람이 변호사이다.

법은 모든 사람들이 보호받을 수 있고 예측 가능한 질서를 위해 만들어진 최소한의 규범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법이 주는 무게감과 법복에게서 느끼는 위화감으로 위축되고 경직된다.

그래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되면 당황하고 제대로 항변하지 못한 채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존재가 변호사이다.

일반적으로 변호사는 판사와 검사와는 또다른 의미를 가진다.

판사는 법을 기준으로 판결하는 사람이고 검사는 죄를 찾아내고 법이 정한 질서에서 어긋난 행위를 찾아낸다.

반면 변호사는 오직 의뢰인의 입장에서 항변하는 사람이다.

그런의미에서 판사와 검사는 법의 기준을 살피지만 변호인은 의뢰인의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저자는 일반적인 변호사로서 지내다가 국선변호사가 된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약자들에게 국가가 대신 변호인을 선임해주는 제도가 국선변호사인데 일반적으로 일은 많고 보수는 작다고 한다.

그런 힘든 일에 뛰어든 저자는 국선변호사로서 활동한 사례와 보람을 책에 기록하였다.

대부분의 피고인들은 사회적 약자이기에 법에도 무지한 경우도 많고 법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법의 권위에 눌린 경우가 많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상식을 넘지 않는 선에서 행한 행동들이 법에 위배가 되는 경우 곤혹을 치룬다.

사례에 나오듯이 지정주차라든지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가져가 처리한 전직선생님의 행동들은 법만으로는 적용할 수 없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저자는 이런경우 위법성조각사유라는 법률용어를 들어 설명하는데 선의의 행동이 법을 위반하더라도 그 해위에 대한 취지를 존중하여 선의를 존중하는 경우를 보면서 딱딱한 법에도 융통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외에도 저자는 책에서 일반적인 선입견과 오해들을 제기하면서 바로 잡아주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국선변호사에 대한 이해이다.

국선변호사들이 실력이 없거나 재판에 임하는 자세가 대충한다는 부분들을 이야기하면서 결코 그렇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더욱 큰 사명감으로 그리고 국선이라는 자격이 더 열심을 내게 되는 근거임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판사에 대해서도 재판에 대해서도 드라마나 소설에서 그려진 모습들이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법정에서 오직 사실에 근거하여 진행되는 재판임에도 저자는 스토리텔링을 고민하고 법적 적용을 흔드는 감성적 대본을 작성하고 있다.

상식을 넘어서는 법은 없는 듯하다.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수많은 변호사들 그중에서도 특히 국선변호사들의 고민과 활동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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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불복종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수필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9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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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사상을 접하기 전에 먼저 든 생각이 있다.

왜 굳이.

왜 굳이 그렇게 살았고 왜 불편한 길을 갔을까 싶었다.

좋은 학벌에 굳은 신념은 보편타당한 성공의 길을 갈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노예제를 반대하고 모든 사람의 이익을 먼저 했는가 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키워드를 발견했다.

소로에게는 정의가 자유케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거짓이 없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정의를 추구한 것이다.

국가의 개념보다 훨씬 강력한 정의는 양심이며 어떤 경우에도 국가는 양심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노예제를 유지하며 국가를 세우고 백인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지만 마음 한편을 찌르는 불편함을 소로는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만든 제도들을 우리는 본질에 의해 고민되고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양심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 정형화된 틀에 갖히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것이 소로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부분이다.

국가에 대한 저항, 노예제 반대운동으로 죽임을 당한 존 브라운에 대한 항변, 자연에 대한 순응 등이 바로 본질에 대한 고찰이고 출발점이다.

본질은 자유에 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의 영역은 자연질어와 같고 정의로 향하는 해방이다.

결국 소로가 지향하는 질서는 자연의 질서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겨우내 생명은 봄을 기다린다.

질서 속에서 자유를 찾고 우리를 자유케하는 정신을 지키는 것이 사랑이고 소로의 정의이다.

그래서 소로에게는 허울같은 명예나 권력보다 정신을 가다듬고 진리를 추구하는 숭고한 저항이 훨씬 아름다운 것이었다.

참된 자유를 갈망한 소로는 온실 속 화초보다 거친 광야의 생명이 행복을 준 것이었다.

역사의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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