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하는 PD와의 대화 방송문화진흥총서 140
홍경수 지음 / 사람in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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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총 7명의 PD들의 인터뷰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분들이 맡았던 프로그램 제목을 본다면 아! 하면서 공감할 것이다. 나도 프로그램을 보고서야 왜 이 분들을 인터뷰했고 주인공이 되었는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방송 피디가 콘텐츠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며, 한류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으므로 방송의 핵심 인력인 피디들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방송 현상을 제대로 분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피디는 누구인가? 레스 브라운에 따르면, '피디는 TV 프로덕션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피디는 일하는 기강을 세우며 기준을 강제한다. 이상적으로 피디는 창의적인 팀의 대표로서 행정과 예산을 고려하는 사업가이면서도 예술가이며, 스태프들의 재능을 고양시키며 프로젝트의 비전을 제공한다. 미국의 정의이긴 하지만, 한국에서의 경우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의 피디는 프로듀서와 디렉터를 합한 개념이라는 게 중론으로, 실제로 한국의 피디는 프로듀서와 디렉터의 일을 함께 해온 것이 사실이다.

 

 

1. 주철환 피디

- 1990년대 이전 한국의 대중은 피디라는 존재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혹 피디라는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피디들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익명의 존재였다. 피디에 대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시작한 주철환 이후로 비로소 피디라는 직업이 대중의 인식 속에 포지셔닝되었다. 이는 뛰어난 인재들이 방송계에 뛰어들게 한 발판을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방송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주철환 피디는 1983년 MBC에 입사하여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1987년 [퀴즈 아카데미], 1990년 [우정의 무대], 1991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 1994년 [TV 청년내각], [대학가요제] 등을 연출했다.

 

 

2. 송창의 피디

- 송창의 피디는 현재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형식을 처음으로 기획한 피디이다.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난 송창의 피디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MBC에 입사했다. 그는 32년간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의 기초를 놓았으며,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몰래카메라를 도입하여 큰 성공을 거뒀으며, 최초의 시트콤인 [남자 셋 여자 셋]과 성인 시트콤인 [세 친구]를 만들었고, [특종 TV 연애]를 통해 서태지를 발굴하고 집단 MC체제를 도입했다.

 

 

3. 최승호 피디

- 1961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MBC에 입사했다. MBC에서는 교양 프로그램을 연출했으며, 1995년 [PD수첩] 팀에 합류했다. 최승호 피디는 한때 [PD수첩] MC 겸 책임피디로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검찰과 스폰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등 하나같이 골리앗과 같은 거대 권력, 아니 이 시대의 신화 혹은 금기에 돌팔매질을 했었다.

 

 

4. 윤석호 피디

- 윤석호 피디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제일기획에 피디로 입사했다가, 1985년에 11기로 KBS에 입사했다. 그는 예능국에서 조연출을 하다가 드라마국으로 건너가서 [느낌], [사랑의 인사], [컬러], [프로포즈], [웨딩드레스], [순수], [광끼], [초대] 등의 드라마를 만들었고, 4계절 시리즈와 얼마 전 종영한 [사랑비]를 제작했다. 또한 방송 프로그램 한류의 시작은 [가을동화]와 [겨울연가]를 만든 윤석호 피디부터라고 할 수 있다.

 

 

5. 이영돈 피디

- 이영돈 피디는 2013년 가장 인기 있는 피디로 부상했다. 그의 인기는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는 KBS와 SBS에 두 번씩 근무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1981년 KBS에 입사한 후 호주로 이민을 가서 호주 이민자 방송인 SBS에서 근무하다가, 한국 SBS개국과 함께 SBS에 입사했으며, 다시 KBS에 재입사한 뒤 지금은 종편 채널A 상무로 근무 중이다. 30년가량을 피디로 근무하며 그는 수많은 인기작을 만들었다. [주병진 쇼], [그것이 알고 싶다], [바이블 루트], [생로병사의 비밀], [마음], [술, 담배, 스트레스에 관한 첨단 보고서], [이영돈 PD 소비자 고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이영돈 PD 논리로 풀다] 등을 연출했으며, 이중 상당수는 지금도 방송 중이다. 지상파를 넘나들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그가 지금은 종합편성채널 책임자로 활약하고 있다.

 

 

6. 박해선 피디

-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열린 음악회], [이문세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도전 주부가요스타], [도울의 논어 이야기],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프로그램을 처음 만든 박해선 피디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약 20여 년간 한국의 대표적인 쇼 피디로 활약했고, 음악 토크쇼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의 활약 덕분에 KBS는 정통 음악 프로그램을 이어나가는 채널로 자리매김 했고, 괜찮은 음악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에 가수들을 투입할 수 있는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 그 후 KBS 예능 국장으로 KBS의 대표적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1박 2일], [해피투게더], [미녀들의 수다]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KBS를 떠난 뒤에는 외주 제작사 및 공연 기획사인 '박스미디어'를 설립하여, 각종 음악 공연 기획은 물론,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JTBC의 [히든 싱어]의 외주 제작을 맡고 있다.

 

 

7. 이병훈 피디

- 전 세계 90여 개국에 방송된 [대장금]의 연출자, 2014년 현재 41년째 드라마 연출을 하고 있는 한국 최고령 드라마 피디, 전 세계에서 드라마를 가장 많이 만든 피디 그가 바로 이병훈 피디다. 2013년 10월 MBC에서 [대장금] 방송 10주년 특집 방송 [대장금 루트를 가다]를 방송했다. 10년 동안 전 세계 90여 개국 이상에 수출되며 한류 열풍의 주역이 된 [대장금]은 기존의 드라마들이 아시아 시장에 머물러 있었던 데 비해, 이란, 사우디 등 중동 지역은 물론 짐바브웨,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중남미, 유럽까지 팬덤을 만들어냈다. 평범한 신분의 한 여자가 이룬 성공 스토리는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에게 자신감과 꿈을 심어줬다는 평가다. 어쩌면 한국 드라마로 가장 많은 나라에 방송된 드라마가 [대장금]이 아닐까 싶다.

 

 

[저자소개]

 

저 : 홍경수

피디 출신으로 피디 주제로 학위를 받은 서울대 박사 1호이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 두 곳에서 수습기간을 마친 뒤 1995년 KBS 예능 피디로 입사했다. 《열린 음악회》, 《가요무대》, 《이소라의 프로포즈》, 《연예가중계》, 《도올의 논어이야기》, 《다큐멘터리 3일》, 《TV 책을 말하다》, 《문화의 질주 : 웰컴 투 판타지》 등을 연출했다. 2003년 《낭독의 발견》, 2007년 《단박인터뷰》, 2009년 《일요일 밤으로》를 처음 기획했으며, 이들이 각각 현재 유행하는 북 콘서트, 직격 인터뷰, 집단 토크쇼의 원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 민언련 이 달의 추천방송상, K2 프로젝트 우수기획상 등을 수상했으며, 미국 국제 에미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고려대 대학원과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현재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언론정보학회, 여의도클럽, 대한민국청소년 방송단의 연구이사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PD, WHO &HOW』, 『PD 인턴십 특강』, 『창의적인 콘텐츠기획의 8가지 비밀』, 『공영방송의 이해』(공저), 『방송학의 이해』(공저), 『세 PD의 미식기행 목포』가 있고, 논 문으로는 『공영방송사 제작체계 변화가 피디 전문직주의에 미치는 영향』,『힐링캠프, 사운드적 서사의 등장과 그 함의』, 『뉴스의 탈현실의 수사학 연구』, 『음식문화연구 서설』,『확장하는 PD와의 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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