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철학자의 유쾌한 만남 감성과 이성
고명수.강응섭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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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이지만, 또한 분절의 체계이자 사물을 구분 짓는 수단도 된다. 따라서 모든 언어는 결국 경계의 언어가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러므로 사람은 말을 배우는 순간 경계에 갇히게 된다. 경계는 곧 고정관념이자 분별심이기도 하다. 단어와 상징 그리고 사고란 곧 경계를 짓는 행위이며 분별심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우리는 분절화의 체계인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의 사고력과 상상력을 차단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언어체계로 인하여 분절되고 고착된 우리의 고정관념의 벽을 깨뜨리고, 그 태초의 무한한 의미의 세계로 환원시킴으로써 우리가 잃어버렸던 생활과 정신의 자유를 되찾아 주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고, 이러한 일을 하는 이가 곧 시인일 것이다.

 

 

 시인은 가장 본질적인 것을 서두에서 말한다. 말로 마음의 물고를 틔우는 것, 그것을 시라고 제시한다. 그러니까 말이 사물을 구분 짓기도 하고, 마음도 가른다는 것이다.

 

 이 말에 따르면, 말이 있기 전에는 사물을 구분 짓는 일이 없고, 마음을 가르는 일도 없다는 것이다. 구분도 없고 가르치는 것도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물을 구분하는 일이 생기고, 마음을 가르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말 때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가 새벽에 목을 메어 세상을 하직한다. 그 여배우는 자신의 존재에 걸맞은 언어를 지탱해 나갈만한 저력이 없었던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자존감의 결핍, 즉 어린 시절에 받아야 할 충분한 보살핌과 애착 형성의 실패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자신의 존재를 짊어지고 나아갈 수 있는 바탕은 어린 시절부터 축적되어 온 부모와 교사의 지지와 신뢰, 사랑으로 불릴 수 있는 언어 경험일 것이다.

 

 이처럼 한 존재에 있어서 언어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 경험은 부모나 교사가 줄 수도 있지만, 세계의 위대한 명작과 고전들이 줄 수도 있다. 만약 그 여배우에게 이러한 인문학적 교양이 있었다면 아마도 허망하게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랑이란 물의 속성과도 흡사한 듯하다. 물이 뭇 생명을 살리듯이 사랑은 생명의 근원이다. 노자의 [도덕경] 내용을 빌리자면 물은 그릇을 탓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아니하고 거기에 적응하며 사랑을 이어간다.

 

 또한 물은 얕은 곳으로 흘러가되 오르지 못할 곳이 없다. 그러니 일평생을 낮은 곳으로 다가갔던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삶이 또한 그와 같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사랑을 지니고 사는 삶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풍요로울 것이다.

 

 사랑이 있을 때 만물은 건강하게 잘 자란다. 하지만 사랑이 부족할 때 사람들은 신경증을 비롯한 각종 증상을 드러내게 된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고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랑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사랑은 따스한 햇볕처럼 비추어 주어야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들도 잘 자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랑할 때 만물은 발열한다. 발열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사람이 죽으면 몸이 싸늘하게 식어 버린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에는 열정이 필요하다. 열정은 관심과 배려와 나눔과 책임의 근본이 되는 에너지라고 생각된다.

 

시인과 철학자의 유쾌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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