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사슴 연못 창비시선 493
황유원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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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사슴 연못』(황유원) 읽기
- 김종삼을 위한 변명

i)
천치가 된 마음은 호숫가를 맴돌다
내친김에 최대한 기억에서 높고 선명한 곳
사랑코트 정상까지 다시 무작정
걸어 올라간다
한번 놀란 가슴은 여전히 가라
앉을 줄 모르고

마음에 들지 않아라
나한테 마음 따위가 있다는 사실이
그래도 좀처럼 가라
앉을 줄 모르고
그렇다고 벌떡
일어서는 것도 아닌 저 마차푸레차가
영원히 입산금지라는 사실만은
썩 마음에 들어

높은 데 오면 정신은 더이상
내려가지 않아
그곳에 앉아 따뜻한 차나 한잔 마신다

다 마신 찻잔 바닥에 녹지 않고 남은 설탕처럼
태연히
남아 있는 마음

귀국일 미정*
- 황유원 「포카라」 부분 인용

* 김종삼 「올페」, “귀환 시각 미정” 변용.

ii)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後世 사람들이 만든 얘기다

나는 죽어서도
나의 직업은 시가 못 된다

宇宙服처럼 月谷에 둥둥 떠 있다
귀환 時刻 未定.
- 김종삼 「올페」

NOTE> 황유원은 짐짓 정지용을 흉내내지만(3부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편들. 예컨대 「하얀 사슴 연못」, 「흰 종이에 물로1」, 「사슴과 유리잔」, 「사슴벌레」, 「에릭 사티」, 「흰 종이에 물로2」, 「사슴머리 여인숙에서」, 「아침」,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거울 속의 거울」, 「아이스크림의 황제」, 「에스컬레이터」, 「평화 여백」, 「워터 스톤」 같은 시들) 내심 그가 가닿은 곳은 김종삼이더라.(「포카라」) 그 두 시인(황유원&김종삼)은 여전히 ‘귀국일’을 미루고, ‘귀환 시각’조차 모른 채 시적 공간을 떠도는 중이다. 미루면서 모르면서 그들은 어딜 가고 싶어 했던 것일까. 죽는 김종삼은 말이 없고 살아 있는 황유원은 김종삼에 겨우 기대 “귀국일 미정”(「포카라」)이라고 복기할 뿐. 그러나 그것들은 ‘미정’이기에 그들의 시적 시도는 오늘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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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들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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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이승우 작가의 소설은 최고입니다. 짧음에더 첫 단편부터 빨려들듯 읽히더군요. 구입해서 정말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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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어사 2 - 각성
설민석.원더스 지음 / 단꿈아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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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매혹적인 K-요괴로 재탄생한 『요괴어사 1 - 지옥에서 온 심판자』 못지 않으리라 생각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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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을 기억하는 계절
김명신 지음 / 끝과시작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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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 롤랑은 세상에 없다. 시집(『롤랑을 기억하는 계절』) 속에만 살아 숨쉰다. 롤랑이 없는 계절을 마홍은 몇 해나 보낸 걸까. 롤랑의 짝 발터는 롤랑의 부리가 깨지고 더는 곁으로 가지 않았지만 그녀가 죽자 자신의 몸 앞쪽 깃털을 뽑아내는 일로 애도를 대신했다. 그 후로 발터의 깃털은 자라다 말다를 반복 중이다, 라고 시 「발터」는 전한다.

누군가 죽으면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앞날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세상사이다.(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걷는나무, 2018, 16쪽) 그처럼 사람들이 미래에 집착할 때 대신 마홍은 ‘한 죽음’(롤랑)을 불러들인다.(「호명」) 나는 『롤랑을 기억하는 계절』이 그렇게 쓰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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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한 장소를 소진시키려는 시도
조르주 페렉 지음, 김용석 옮김 / 신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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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렉의 책은 너무 재밌지. 지금 읽고 있는 <어렴풋한 부티크>도 끝내주는데 파리 이야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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