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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희망
권성우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평점 :
권성우의 비평集 <비평의 희망>(刊문학동네.2001)을 읽고.....
1.
'비판'이 수반되지 않는 '성찰의 나열'은 깊이는 있을지언정 예리함과 치열함이 결여되어있고, '성찰'이 따르지 않는 '비판'에는 사유의 전복과 삶의 부정성은 충만할지언정, 성애 낀 어느 겨울날 유리창을 바라보는것처럼 '차가움'만이 가득하고, 전복된 기존의 사고와 부정된 삶의 표피만 빛날뿐 근원적이고도 시원적인 삶의 깊은 향취가 맡아지질 않는다.
더불어 '비판'은 타인에 대한 말걸기이고, '성찰'은 자신에 대한 말걸기일텐데, 자신에 대한 말걸기로서의 고독한 성찰이 없이는 타인에 대한 말걸기로서의 '비판'이 공소空消함으로 흩날리고 반향없는 메아리와도 같이 공허할 수밖에 없으며, 타인에 대한 말걸기로서의 '비판'없이 자신에 대한 말걸기로서의 '성찰'은 절대고독에 빠지기 쉽상이다. 문학으로서의 비평은 사뭇 자기고백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공적 담론화를 위한 공적 시도인 것이다. 바른 비평은 '성찰적 비평'이며 '비평적 성찰'이다.
2.
작년에 읽은 <비평과 권력>에 이어 지난 달 <비평의 매혹> 그리고 <비평의 희망>에 이르기까지 권성우의 비평집을 단숨에, 그러나 그 숨을 잘개 쪼개어가며 읽었다. 좋은 산문집 혹은 비평집은 위대한 소설,시에 못지 않는 삶의 매혹을 보여주고, 독자로 하여금 삶의 매혹에 도취당해 그 매혹적 삶을 꿈꾸게 한다는 권성우의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내게 삶을 매혹으로, 매혹적 삶을 꿈꾸게 만들었다.
권성우가 세권의 비평집을 통해 내게 던진 화두話頭는 단연 '성찰'이란 단어이다. 그 성찰은 자기갱신에 다름아닌데, 자기갱신은 질주하는 삶의 가속도에 시의적절한 에피스테메(인식소)를 부여한다. 이것은 요즘 들불처럼 유행하는 단순한 '느림의 철학'과는 다른 유類의 것이다.
느리거나 빠른 속도의 개념보다는 삶에 임하는 자가 얼마만한 진정성을 가지고 그러나 치열하게 삶에 임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갈고 닦아야 하는데, 단순히 기계적인 갈고 닦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것은 기계적인 갈고 닦음 그 너머에 있다.
나는 오늘도 '비판'과 '성찰'의 경계선상에서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