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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의 그늘 ㅣ 시작시인선 240
이근일 지음 / 천년의시작 / 2017년 9월
평점 :
포월하는 시
시인들이 월경한다. 월경의 방식은 여럿, 니체가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기 위해 초월을 꿈꿀 때 김진석은 포월로 응수한다. 왠지 포월은 한국적이다. 니체가 산뜻한 월경주의자라면 포월주의자 김진석은 끈적거린다. 넘되 뛰지 않고 박박 기어 넘어간다. 온 몸을 피투하는 대신 기투한다. 차안과 피안이 이접한다. 이접의 방식은 말그대로 접붙이기, 이를테면 이종교배이다. <아무의 그늘>에서 이근일은 벽을 뛰어넘는 대신 문을 열고 온몸을 끄을며 문 너머로 나아간다.(때로 그는 구도자처럼 보인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나. 그곳은 꿈이고(<당신이 모르는 당신에 대해>, <악행>, <폭설>, <협곡>, <풀밭에 물들 때까지>) 환상이고(<곰소>, <불면의 날>, <도넛>, <환희의 음악>, <우리는 다른 기차를 타고>) 기억이고(<해질 무렵>, <귀가>, <적막 속에서 우리는>) 코마 상태이고(<가물거리는 흰빛>, <노래가 그리는 동그라미를)) 물 속이고(<생일>, <불타는 해바라기>). 언어를 뛰어넘는 그것들, 그것들을 언어로 다독이며 잠재우고 얼래 시인 스스로 계송이 되어 자음과 모음 사이를 박박 긴다. 뛰어넘고 달음박질하는 언어를 붙잡아 바끄러매고 칭얼거림에 귀 기울이는가 하면 서로가 서로의 발을 묶고 한 땀 한 땀 그렇게 포월의 방식으로 <아무의 그늘>은 쓰여졌다. #아무의그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