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 택시
“눈 오는 밤이면 말이여. 산기슭에 호랑이 그림자가 쑤욱 나타나는 겨.”
어렸을 때,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언제나 옛날이야기가 흘러나왔어요. 도깨비와 호랑이 그리고 온갖 산짐승들의 달그림자가 누에 골 골짜기며 들판을 뛰어다녔지요. 오늘처럼 눈 오는 밤이 되면 나는 언제나 귀 기울여 눈 오는 소리를 들었어요. 사륵사륵 눈 내리 소리와 함께 멀리 아련하게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산짐승들도 도깨비들도 누에 골에 더 이상 살지 않아요. 하나 둘 사라져간 것들만큼 옛이야기도 하나 둘 희미해졌기 때문이지요.
"송 순경, 또 뭔 생각 하는 거야?”
한 참 동안 눈 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나는 얼굴이 빨개졌지요. 김 경장은 혀를 끌끌 차면서 나에게 과속 감시 카메라에 찍힌 사진 한 장을 내밀었어요.
“이 사진이나 좀 봐봐."
나는 그 사진을 보고 정말 입이 딱 벌어졌어요. 멀리서 찍힌 것이라 그리 선명하진 않았지만 그게 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김 경장님 저에게 장난치시는 거죠?"
하지만 김 경장은 전혀 웃지 않았어요. 언제나 나에게 잔소리만 해대는 김 경장이 실없는 농담을 할 리가 없지요. 하지만 이 사진을 보고 그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왜냐고요? 사진에 찍힌 것은 바로 호랑이였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뛰어가는 호랑이가 속도위반 감시 카메라에 잡히다니, 이 사진을 도대체 누가 진짜라고 믿을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언제 멸종 됐지?"
"글, 글쎄요……."
"그나저나 이 사진,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어차피 호랑이든 멧돼지든 벌금 딱지를 뗄 순 없잖아. 난 퇴근 하니까 농땡이 치지 말고 근무 잘 서고."
김 경장은 그렇게 나에게 사진을 휙 던지곤 서둘러 퇴근을 했어요.
나는 김 경장의 발소리가 멀리 사라지자마자 재빨리 시골집에다 전화를 걸었요. 지금 나에겐 호랑이가 찍힌 사진보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건강이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에요.
“정말 괜찮은 거지유?”
할머니는 어제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더욱 조바심이 났어요.
“낼 모레면 휴가니까 그 땐 꼭 병원 가셔야 해유 알겠지유?”
고향의 할머니와 전화를 할 때면 저도 모르게 고향 사투리가 나와요. 사투리를 쓰지 않은지도 벌써 5년이 넘었는데 할머니 목소리만 들리면 곧바로 사투리가 튀어 나오니 참 신기한 노릇이지요.
전화를 끊고 나니 나는 서서히 졸음이 오기 시작했어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도 되고 긴장이 풀린 탓이었지요.
시골과 다름없는 이 작은 도시는 밤이 되면 사람들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늦은 밤이 되면 도로변에 홀로 떨어져 있는 이 경찰서는 마치 눈밭에서 잠자고 있는 한 마리 곰처럼 보였어요.
그렇게 새벽 2시간 다되었을 쯤 일까요. 깜빡 졸던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눈을 떴어요.
"어흥! 벌금 내려 왔어요."
이윽고 정신을 차린 저의 눈앞에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어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호랑이 한마리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봐라보고 있지 않겠어요!
"과속 위반은 얼마죠?"
오, 맙소사!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벌렁 넘어지고 말았어요.
“호! 호랑이!”
내가 혼비백산해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사이 호랑이는 아무렇지 도 않다는 듯이 쓰윽 몸을 움직여 제 옆으로 다가왔어요. 나는 너무 놀라 오줌을 쌀 뻔 했지요.
“좀 바빠서 그런데……. 미안하지만 빨리 처리해 주지 않겠어요? 오늘은 택시 손님이 많아서요.”
등에 새하얀 눈이 쌓인 호랑이가 입을 움직일 때마다 긴 수염이 움직이고 하얀 입김이 모락모락 나왔어요.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납작 엎드려 몸을 웅크렸어요.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요.
“맙소사!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경찰 아저씨를 잡아먹을 생각은 없어요. 난 그냥 벌금을 내려 온 거니까요”
호랑이가 미안하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고개조차 들 수 없었어요.
“제발, 살려줘요! 제발”
“이거 바쁜데 어떡하지……. 그러니까 제 말은 과속 벌금은 얼마냐 구요.”
호랑이의 낮고 굵은 목소리에 나는 벌벌 떨면서 간신히 한마디 했어요.
“삼, 삼 만원이요.”
“그럼 이 정도면 되겠군요.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호랑이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경찰서 문이 쿵 닫히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까지 정신이 없던 내가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경찰서 안을 진동하는 향기로운 냄새 때문이었지요. 간신히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자 내 눈 앞엔 알이 굵은 더덕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게 보였어요.
다음날이 되자 경찰서 식구들은 어디서 이렇게 많은 자연산 더덕을 얻었냐며 나에게 한마디 씩 했어요. 나는 지난 밤 겪은 일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사람들이 나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할까봐 그냥 고향에서 친구들이 보내주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지요.
그 더덕들이 호랑이가, 그것도 택시 영업을 하는 호랑이가 벌금 대신 내고 간 거라고 걸 차마 이야기 할 수는 없었어요.
영문을 모르는 경찰서 사람들은 횡재했다는 듯이 각자 더덕들을 나누어 갔고 원래 다음 당직이었던 김 경장까지 나에게 대신 근무를 서게 하고는 일찍 퇴근하였어요.
“송순경은 3일 후면 휴가잖아 안 그래? 좀 부탁해”
김 경장은 약간 미안한지 처음으로 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말했지요. 사실 그 놈의 호랑이가 나타나서 저를 한 입에 꿀꺽 삼켜 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는 근무를 서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해 봤자 제 말을 믿어 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 분명했지요. 그래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만 끄덕였어요.
결국 모두들 퇴근한 경찰서에서 홀로 남은 나는 경찰서 창고에서 구한 야구 방망이를 가슴에 품고 불안한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 놈의 호랑이가 나타날까 봐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경찰서에 있는 총을 사용할 수는 없었어요. 사실 나는 남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무기를 사용할 만큼 용기가 있지 않거든요 게다가, 더덕을 한 광주리 가져온 호랑이에게 다짜고짜 총을 들이대는 게 좀 미안하기도 했지요.
12시가 넘자 사방이 깜깜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겨울밤이 시작되었어요. 어제부터 내린 함박눈은 벌써 무릎 높이까지 쌓이고 있었지요. 도로를 하얗게 물들인 눈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나는 꽁꽁 언 논에서 신나게 눈싸움을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졌어요. 고향집에 전화를 해도 계속 통화 중인 것도 마음에 걸렸지요. 할머니가 그렇게 오래 동안 통화하시는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에요.
“또 수화기를 잘 못 놓으셨나?”
이렇게 할머니 걱정 때문에 안절부절 하던 나도 시간이 되자 점차 졸음을 참기 어려웠어요. 손에 쥐고 있던 야구 방망이도 어느새 바닥 구석으로 굴러 갔지요.
“따르릉!”
나를 깨운 건 경찰서로 울려 퍼진 한 통에 전화였어요. 바로 고향 친구 동식이의 전화였어요.
“큰 일이여 큰 일! 네 할머니 병원에 실려 가셨단 말이여.”
동석이의 전화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머릿속엔 동식이의 말만 맴돌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요. 나는 무작정 경찰서를 뛰쳐나와 눈이 쌓인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운전도 할 수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누구 없시유! 좀 도와줘유! 누구 없시유!”
다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어요. 도로에는 차하나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지요. 미끄러운 눈밭을 달리다 넘어져서 멍들고 다쳤지만 할머니가 계시는 병원에 갈 수 없는 저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갔지요.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발은 더욱 거세졌고 지친 제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져갔어요. 그때였어요. 기적처럼 멀리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보였어요. 나는 너무나 기뻐서 손을 들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지요.
“멈춰! 멈춰유! 제발 멈춰유!”
맙소사 그런데 그 불빛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아니었어요. 눈 쌓인 도로를 사뿐히 소리 없이 달려온 것은 바로 그 호랑이였던 거예요. 나는 번쩍거리는 호랑이의 눈을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이제 할머니도 못보고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지요.
“자 내 등에 타요. 어디로 가면 되죠?”
호랑이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네?”
“어서, 호랑이 택시를 타란 말이에요.”
마음이 급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떨결에 호랑이 등에 올라탔어요.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내 털을 꽉 잡으세요.”
“고……고마워요.”
호랑이의 등은 생각보다 넓고 아늑했어요. 마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속에 나오는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나무꾼이 된 느낌이었지요.
“어디로 모실가요? 손님.”
“누, 누에 골! 읍내 병원이요.”
나는 다급하게 외쳤어요.
호랑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더니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어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데....... 무슨 일이 생겼나요? "
나는 호랑이의 물음에 할머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호랑이가 나에게 말을 걸고 내가 호랑이와 이야기 한다는 사실이 정말 믿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치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이야기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런! 그럼 속도를 더 내야 갰군요. 허허, 속도위반을 할 일이 또 하나 생겼네요.”
호랑이는 더욱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어요. 나는 세찬 눈보라에 코가 얼얼했지만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털을 꽉 움켜쥐었지요.
“지난번에 속도위반 사진이 찍혔을 때도 무슨 일이 있었나 보죠?”
세찬 바람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나는 호랑이에게 물었어요.
“뭐라고요? 안 들려요.”
“어젯밤 벌금은 어쩌다 냈냐 말이에요.”
나는 좀 더 목소리를 높였어요.
“아 그거요? 그땐 너구리 아줌마가 아주 급했거든요. 사냥꾼의 올무에 걸린 새끼 너구리를 구하기 위해 바람처럼 달렸지요. 덕분에 처음으로 감시카메라에 사진도 찍히고 벌금도 냈지만 그래도 새끼 너구리가 무사한 게 더 중요하지요. 안 그래요?”
“네? 하지만 호랑이는 다른 동물을 먹이로 삼는…….그러니까 너구리를 잡아먹어야 맞는 거 아닌가요?”
나는 호랑이가 너구리를 구해주었다는 게 믿기질 않았어요.
“너구리들도 많고 호랑이들도 많았던 오랜 옛날엔 그랬지요. 하지만 지금은 서로 얼마 남지 않아서 자기 욕심만 챙기며 살지는 못하게 되었어요. 우리 호랑이들도 처음엔 그 사실을 모르고 무작정 먹이 사냥만 했어요. 호랑이들만 살면 그만인 줄 알았지요. 하지만 점점 우리 호랑이들도 그 수가 줄기 시작했어요. 인간에게 사냥당하고 굶주림과 몹쓸 병에 죽어갔죠. 결국 우리들도 모든 동물들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다른 동물들을 태워다 주는 호랑이 택시를 시작한 거예요.”
“그럼 다른 호랑이들도 이런 일을 하는 건가요?”
“아니요, 다른 호랑이들은 이제 없어요. 제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마지막 호랑이거든요. 이렇게 한 마리만고 나서야 깨달게 된 거지요. 참 어리석지요?”
호랑이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어요.
“처음 경찰서에 왔을 때 저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면 벌금 같은 건 내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말은 했지만 어제 밤 너무 놀라 호랑이 앞에서 난리를 쳤던 내 자신이 떠올라 나는 얼굴이 빨개졌어요.
“인간들이 만든 약속이지만 지킬 건 지켜야죠. 숲속의 약속도 마찬가지에요. 동물들 서로가 지켜야 할 약속들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모든 동물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호랑이는 오르막길을 힘차게 달리느라 힘껏 도움닫기를 한 다음 말을 계속 이었어요.
“그리고 감시 카메라나 올무 같은 기계들은 너구리 아줌마의 깊은 슬픔이나, 혼자 남겨져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는 새끼 너구리의 마음을 알 턱이 없잖아요. 그런 건……. 생명이 없는 기계들은 알지 못하니까 말이에요.”
“......”
나는 호랑이의 말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생명이 없는 기계……. 그 말은 마치 우리 인간들을 두고 하는 말 같았지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하지만 작은 내 목소리는 세찬 바람에 흩어져서 호랑이에게 전달되지 않았지요.
“걱정 말아요. 이 속도라면 한 시간 안에 달려갈 수 있을 거예요.”
호랑이는 오히려 내가 걱정할까봐 안심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나는 눈물이 핑 돌아서 힘껏 호랑이등을 껴안았어요. 호랑이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어요.
“이런, 여긴 감시 카메라들이 쭉 늘어서 있는 도로군요. 이거 속도위반 벌금을 엄청 내야 갰는걸요?
새로운 도로로 들어섰지만 호랑이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도로 표지판들을 올려 보며 말했어요.
“걱정 말아요. 어젯밤에 잔뜩 가져온 더덕으로 이 정도는 충분하다고요.”
나는 호랑이 등에 납작 엎드려서 바람 소리에 지지 않으려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호랑이에게 내가 울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눈물을 쓱 닦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요.
“좋아요, 그럼 꽉 잡아요. 한 달음에 할머니가 계신 곳까지 달려갈 테니까.”
눈이 하얗게 내리는 도로를 호랑이와 나는 힘차게 달려갔어요.
무심한 감시 카메라들이 우리들 머리 위로 플래시를 팡팡 터뜨렸어요. 그리고 그 순간 만 큼은 차가운 감시 카메라들도 사람과 하나가 되어 달려가는 호랑이 택시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것 같았답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