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석우, 구미호들과 만나다

 

(1)

찬이가 마누크마누크의 부리 속으로 떨어져 마누크마누크와 한창 실랑이를 벌일 무렵, 둥지에 남아 있던 석우는 겁에 질려 몸을 잔 뜩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하늘을 가릴 듯 커다란 닭과 은빛 용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몸을 일으킬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으....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어. 무서워, 엄마 ... 아,배고파..."

석우는 이렇게 겁이 나고 무서울 때, 이상하게도 초코맛 젤리가 떠올랐다. 초코맛 젤리를 실컷 먹으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온 대륙에 올 때 가지고 있엇던 초코맛 젤리가 가득 든 손 가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최악이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초코맛 젤리도 먹지 못하고 죽어야 하다니... 석우는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그때였다. 무엇인가가 석우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으응? 뭐, 뭐지?”

석우는 눈을 살짝 떠서 어깨를 살펴보았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사람모양으로 오린 종이조각이 석우의 어깨에 붙어 있었다. 매우 배가가 고팠던 석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종이 인형을 떼어서 재빨리 입속에 집어 넣었다. 오물오물 씹어보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초코맛 젤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석우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맙소사 저 녀석이 내 부적을 꿀꺽 삼켰어."

노아가 깜짝 놀라 자신의 꼬리를 치켜들었다. 노아와 미호는 구슬의 예언에 따라 찾아간 곳은 용의 계곡에 있는 마누크마누크의 둥지였다. 보통 구미호들은 용의 계곡에 가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마누크마누크의 둥지를 찾아가는 짓도 하지 않았다. 새벽을 만드는 마누크마누크와 어두운 밤에 예언의 꿈을 만드는 일을 하는 구미호들은 서로의 역할이 달랐기 때문에 만날 일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사이도 별로 좋지 않았다. 몇 백년 전 마누크마누크가 너무 빨리 새벽을 만들어 구미호들이 화가 단단히 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미호도 노아도 알고 있었다. 지난 백년 동안 마누크마누크도 새벽을 토해내지 못했고 구미호들도 예언의 꿈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게 모두 다 나단이라는 용 사냥꾼 나단 때문이었다.

"저 녀석, 예언의 아이가 정말 맞는 거야?"

노아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미호를 바라보았다. 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어, 구슬이 분명 새벽을 토해내는 새의 둥지에 그들이 찾아온다고 예언 했단 말이야. 노아야, 다시 한 번 부적을 보내 보자."

미호의 확신에 찬 얼굴을 보고 노아는 별수 없다는 듯이 허리춤 있는 부적을 다시 뽑아 바람에 날려 보냈다.

 

"응? 또 나타났네. 이 거!"

석우는 또다시 자신의 어깨에 달라붙은 부적을 떼어 다시 입에 집어넣었다. 달콤한 초코 맛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허기를 달래줄 만큼 맛이 있었다.

"음 맛있어."

석우는 미소를 씩 지었다. 이제 두려움도 조금 가신듯 했다.

 

"저 녀석, 내 부적을 또 먹 었어! 저걸, 정말! "

노아가 화가 나서 숨어 있던 바위에서 몸을 일으키는 걸 미호가 간신히 막았다.

"진정해, 자칫 잘못하면 마누크마누크가 저 아일 발견 한단 말이야. 그러면 예언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고!"

"하지만 저 녀석이 자꾸 부적을 먹어치우잖아. 부적 하나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너도 잘 알 잖아. 어휴 성질나."

노아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허리춤에 부적을 전부 뽑아들었다.

“에잇, 두고 보자 이 먹보 녀석!”

노아의 부적 수십 개가 석우를 향해 쏜살 같이 날아갔다.

 

“쩝쩝, 아 맛있다. 이거 좀 더 먹으면 배가 부를 텐데.”

노아가 날린 부적을 먹고도 아직 배가 고픈 석우가 더 먹을 걸 찾으려고 마누크마누크의 둥지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때였다. 노아가 석우에게 보낸 부적들이 멀리서 석우에게 날아오는게 보엿다.

“야호! 또 날아온다 !”

그 모습을 보고 석우가 웃는 얼굴로 입을 좍 벌렸다. 하지만 이번엔 부적들이 석우의 두 눈에 달라붙었다.

“윽! 뭐야, 안 보여 안 보여!”

당황한 석우가 손으로 부적을 떼려 했지만 나머지 부적들이 두 손에 달라붙어 손을 쓸 수 없게 만들었다.

“어, 엄마야!”

석우는 겁이 덜컹나 비명을 괙 질렀다. 그때였다. 석우의 얼 굴앞에 떠 있던 부적 하나가 입을 열었다.

“조용해 이 녀석! 그러기에 함부로 내 부적들을 먹어 치우래?”

부적의 입에서 노아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누, 누구야! 왜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러냐고? 이 녀석이 정말! 더 혼나 볼래?”

“사, 살려줘. 나 겁나 죽겠단 말이야. 제발 그만해. 으앙!”

겁을 잔뜩 집어먹은 석우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뭐야, 이런 녀석이 정말 예언의 아이란 거야? 나 참... 야, 빨리 울음 그쳐 안그러면 진짜 혼날 줄 알아!”

노아의 호된 다그침에 석우는 깜짝 놀라 울음을 삼켰다.

“아, 알았어. 흑흑.”

“좋아 그럼 이제 내 이야기를 잘 들어. 알았지?”

“으, 응...”

겁에 질린 석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석우의 눈 앞을 가리던 부적들이 떨어져 나갔다. 석우가 눈에도 눈 앞에 떠 있는 사람 모양의 부적이 보였다.

“앞을 봐봐. 커다란 두꺼비 모양의 붉은 바위가 보일 거야.”

“그런데 지, 지금 네가 말하는 거야?”

석우가 신기한 표정으로 부적을 바라보며 말했다.

“잔말 말고 빨리 보기나 해!”

노아가 소리를 빽 지르자 석우는 화들작 놀라 둥지 밖으로 목을 길게 뺐다. 과연 두꺼비 모양의 붉은 바위가 눈에 띄었다.

“응, 봤어.”

“좋아 그럼 지금부터 내가 신호를 하면 그 쪽으로 달려가는 거야 알았지?”

“으 응,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데?”

“나 참, 계속 그 둥지에서 멍청이 남아 있다가 마누크마누크에게 쪼이고 싶어?”

노아의 말에 석우가 고개를 들고 하늘 위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은빛용의 모습은 없어졌지만 마누크마누크는 아직 거대한 날개를 활짝 피고 하늘에 떠 있었다.

“아, 알았어.”

석우는 부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준비 됐지? 지금이야! 뛰어!”

석우는 부적의 신호에 따라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숨이 차고 팔다리에 힘이 점점 없어졌지만 두꺼비 모양의 바위가 보는 곳 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드디어 두꺼비 모양 바위 뒤쪽까지 와서야 석우는 달리기를 멈추고 주저앉았다.

“헉헉! 이, 이제 더는 못 뛰어.”

바닥에 큰대자로 들어 누워버린 석우에게 노아와 미호가 다가왔다.

“얘, 괜찮니?”

석우의 두 눈에 걱정스런 표정의 미호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의 노아의 얼굴도... 그런데 둘 다 귀가 뾰족한 게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그리고 엉덩이에 달린 여러 개의 여우꼬리...!

“너희들은 설마 구, 구미호?”

석우가 덜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뱉었다.

“맞아, 우린 구미호야!”

노아가 팔짱을 낀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구, 구미호... 으... 으 으악!”

석우는 그만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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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으, 으악!”

마누크마누크에게 삼켜진 찬이는 짐짝처럼 내동댕이쳐졌다. 게다가 단단하고 긴 터널 같은 마누크마누크의 부리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느라 이마에 혹이 잔뜩 났다. 찬이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일어서려 했지만 마누크마누크의 몸이 위 아래로 움직이자, 찬이의 몸은 다시 앞으로 꼬꾸라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노릿한 닭냄새가 더욱 코를 찔렀고 찬이는 겁이 덜컥 났다.

“싫어! 싫어! 살려줘! ”

찬이는 두 발로 단단한 부리 안쪽을 쾅쾅 치며 비명을 질러 봤지만 마누크 마누크의 단단한 부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금만 있으면 마치 모이를 먹는 새처럼 마누크마누크가 목을 쳐 들것이고 찬이는 괴물 닭의 목구멍 속으로 떨어질게 분명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찬이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엄마!”

“그만 좀 울어! 네 녀석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부리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찬이는 깜짝 놀라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부리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 누구세요? 어디 있는 거예요?”

“난 마누크마누크다. 넌 지금 내 부리에 갇혀 있는 거야.”

처음보다 약간 부드러워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흑, 살려줘요. 나, 난 별로 맛도 없단 말이에요.”

찬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을 했다.

“후후, 예언의 아이야, 넌 아주 겁이 많구나. 나는 인간을 잡아먹지 않아. 난 달빛을 먹고 산단다.”

“달빛이요?”

찬이가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그래, 밤새 달빛을 먹고 난 뒤 그걸 다시 토해내 새벽을 만들어 내는 게 내 일이지.”

찬이는 마누크마누크의 이야기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콩닥콩닥 뛰던 마음도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죄송해요. 저는 아줌마가 절 잠아 먹으려는 줄만 알았어요.”

“내가 널 안 삼켰으면 넌 아마 검은 용들에게 물어 뜯겼을 걸? 그런데 아줌마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마누크마누크의 질문에 찬이는 얼굴이 빨개졌다. 마누크마누크의 목소리가 동네 아주머니같이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아줌마라는 말이 튀어나왔던 것이다.

“아줌마는 그러니까 음 그냥 아줌마를 말해요. 죄송해요.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몰라서 저도 모르게... ”

찬이는 아줌마에 대해 설명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보통 사람들은 나를 신성한 마누크님이라고 부른단다. 하지만 아줌마라는 말도 그리 듣기 싫지는 않구나.”

마누크마누크가 자상한 목소리를 들으니 찬이는 마음이 탁 놓였다. 찬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신성한 마누크님 그럼 이제 절 좀 내려 주세요. 이 안은 너무 갑갑해요. 너무 깜깜하고...”

“미안하지만 아직은 그럴 수가 없단다. 예언의 아이야.”

“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절 잡아먹지 않으신다면서요?”

찬이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맞아, 하지만 사람 하나 꿀꺽 삼키는 일 정도는 아주 간단히 할 수 있지. 내가 널 살려줄지 삼켜버릴 지는 모두 너에게 달려 있다.”

마누크마누크가 어느새 차가워진 목소리로 찬이에게 말했다.

"네? 저, 저에게 달려 있다고요?"

찬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나와 약속을 한다면 너를 살려 줄 수도 있어. 그럼 샛별의 예언도 이루어지게 돼."

"샛별의 예언이요? 그, 그런데 왜 절 자꾸 예언의 아이라고 부르시는 거죠?"

"어둠이 걷히고 새벽이 올 때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바로 샛별이란다. 그 샛별이 태양의 기운에 사라지기 직전 노래를 부르는데 그것이 바로 샛별의 예언이야. 지금은... 새벽도 만들 수 없고 샛별도 뜨지 않게 되었지만 말이야"

마누크마누크가 약간 화가 난 듯 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백 년 전 샛별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준 노래는 다음과 같단다. '달이 태양을 잡아먹히고 스무 해가 지날 때, 용으로 변한 인간 아이만이 다시 새벽을 만들 수 있으리.'"

마누크마누크가 예언을 노래했다. 그 목소리가 은은하고 아름다웠지만 찬이는 예언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 새벽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새벽은 아줌마, 아니, 위대한 마누크님이 만드는 거라면서요?”

찬이의 말에 마누크마누크는 답답하다는 듯이 목소리가 커졌다.

“난 이제 더 이상 새벽을 만들 수 없어. 꼬마야. 만약 내가 새벽을 만들 수 잇다면 뭐하러 너 같은 쪼그만 겁쟁이 꼬마에게 말을 걸고 있겠니? 응!”

마누크마누크의 큰 목소리에 놀라, 찬이는 몸을 잔뜩 움츠렸다.

“꼬마야, 넌 겁도 많고 머리도 나쁜 편이구나. 예언은 보통 여러 가지 숨겨진 뜻을 가지고 있단다. 그걸 곧이곧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나는 오늘 널 본 순간 나는 그 예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단다.”

“그, 그게 무슨 뜻이에요?”

찬이가 다시 용기를 내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내가 온 대륙에 산지 이제 1500년이 지났단다. 꼬마야. 그건 바로 내가 이제 곧 죽을 때가 되었다는 걸 말하지. 우리 마누크마누크들이 보통 1300년 정도를 사는 것에 비하면 난 아주 많이 살아온 편이야. 그러니 죽는 건 그렇게 두렵지 않다. 하지만...”

마누크마누크의 목소리가 어느새 차분해졌다.

“내가 죽으면 이제 영영 온 대륙에 새벽은 만들어지지 않는단다. 새벽이 없다는 건 태양이 뜨지 않는다는 말이고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영영 어둠의 세계가 되어 버린다는 말이지.”

“....”

찬이는 마누크마누크의 슬픈 목소리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누크마누크는 말을 이었다.

“내가 품고 있는 것은 온대륙에 마지막으로 남은 마누크마누크의 알이야. 하지만 이 알에서 아기 마누크마누크가 깨어날 수 있을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단다.”

“아니 왜요?”

찬이는 어느새 마누크마누크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마누크마누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별빛을 받아야 해. 그런데 지난 100년간 온 대륙에서는 별이 뜨지 않았어. 검은 용들이 뿜어낸 연기들 때문에 하늘에 검은 구름만 잔뜩 껴 있기 때문이지. 아기가 계속 별빛을 받지 못하면 알을 깨뜨릴 힘을 가질 수 없게 되고 결국, 온대륙에 살아남은 마지막 마누크마누크 아기는 알 속에서 죽게 될 거야. 그럼 영영 새벽은 오지 않게 된단다.”

“ 아기 마누크마누크가 알 속에 죽게 되다니... 마, 말도 안돼요. 뭔가 다른 해결 방법이 있을 거 아니에요?”

찬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찬이는 자신이 큰 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잇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기 마누크마누크가 죽게 내버려 두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방법이 딱 하나 있단다. 바로 온 대륙에서 별빛을 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까지 알을 가져가는 거지.”

“거기가 어딘데요?”

찬이가 눈을 빛냈다.

“바로 나단의 성이란다 온 대륙에서 가장 높은 곳...철로 된 나단의 성 꼭대기 말이야 ”

“예? 검은 용을 만들었다는 그 용사냥꾼 나단의 성 말이에요?”

찬이는 온 대륙에 오기 전 한결이에게 들었던 나단의 이야기를 생각해 냈다.

“그래 지금은 온 대륙을 지배하는 검은 제왕 나단이라고 부르지만.”

마누크마누크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나단의 성 까지 알을 가져가기도 전에 검은 용들에게 잡힐게 뻔 하다구요. 가만, 설마 저, 저보고 그걸 하라는 말씀은 아니겠죠?”

“아니, 넌 할 수 있어. 그리고 해야만 해. 넌 예언의 아이니까.”

마누크마누크의 말에 찬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맙소사, 말도 안돼요. 전 못해요. 전 예언의 아이가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초등학생이라고요!”

찬이는 펄쩍 뛰었다.

“꼬마야, 넌 예언의 아이가 분명해 그리고 예언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단다. 넌 이 일을 해 낼 수 있어. 만약 네가 하지 않겠다면 난 널 삼켜버릴 수 박에 없다.”

마누크마누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전 그런 능력이... 으, 으악!”

마누크마느크과 부리를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찬이의 몸이 마누크마누크의 목 구멍쪽으로 때굴때굴 굴러갓다.

“누, 누가 좀 도와줘. 엄마야!”

찬이가 있는 힘껏 비명을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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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잔 2010-06-27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글을 올리니 계속 실수연발이네요 최근 고슴도치 대작전 두번째 권 원고를 넘기느라 연재를 못햇는데 다시 한번 열심히 해보렵니다.
 



   

<2회>

 

“꼬르륵!”
“아 배고파!”

석우는 한 참 맛있는 초코 케이크를 먹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깨어났다. 보통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식탁에 차려진 맛있는 아침식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 아침엔 엄마의 잔소리도 맛있는 음식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대신 양계장에서나 풍겨올 듯, 닭 냄새가 진동했다.

‘뭐야, 오늘 아침은 치킨인가?’

이렇게 생각하자 석우는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생일날이 되려면 아직 한참인데 엄마가 무슨 마음을 먹고 치킨을 해주신 걸까? 오늘 아침엔 정말 실컷 먹고 가야지.’

 눈을 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서, 석우야 조, 조심해”

“으응? 누, 누구야.”

눈을 뜨자. 석우의 눈에 비가 쏟아질 듯 어두컴컴한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뭔가 크고 푸른 것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것은 깃털이 분명했다.  석우 몸보다 다섯 배는 될 것 같은 커다란 깃털…….

“우와 무슨 깃털이 저렇게 큰 거야?”

정신을 차린 석우가 몸을 일으키자 눈앞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석우는  새 하얗고 반질거리는 바위에 손을 집고 기대어 섰다. 석우의 손끝에 매끌매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석우는 자신도 모르게 쓰윽 바위를 안아 보았다. 석우 정도의 어린아이가 한 열 명쯤은 손을 붙잡고 둘러싸도 모라랄 될 정도로 거대한 바위였다. 게다가 이 바위는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래서 안고 있는 동안 석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서, 석우야! 몸을 숙여 빨리!”

아까부터 석우를 부르는 애타는 목소리는 그건 분명, 찬이가 분명했다. 그런데 찬이는 어디 있는 거지?

“찬이야 어디 있어? 응?”

석우는 주변을 돌아보며 찬이를 찾았다. 하지만 찬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거칠어 보이는 붉은 색 바위들이 보이는 허허 벌판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제야 석우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잇는지를 알게 되었다. 좀 전까지 한결이와 찬이 그리고 두 용들과 함께 분식집 부엌에 있었던 것이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긴 바로 온 대륙이 분명했다.

“위! 위를 봐!”

“응?”

찬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석우가 얼떨결에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 위해 아주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온통 푸른빛을 띤,

“우와! 정말 큰 새네. 어? 어!”

석우는 놀라움으로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푸른 새가 순식간에 수십 배로 커졌기 때문이었다. 활짝 핀 푸른 날개가 하늘을 뒤덮을만해지자. 석우는 찬이가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새 아니 아주, 아주 거대한 새 한 마리가 석우를 향해 곧바로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우는 그 모습에 너무도 놀라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와 동시의 새가 지상에 내려앉았고 석우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태풍 같은 강한 바람이 계곡전체를 휘몰아쳤다. 바위에 숨어 잇던 찬이도 바위를 붙들지 않았다면 날아가 버렸을 정도였다.

“으……. 으 어떡해”

 붉은 바위 찰싹 달라붙어 강풍을 피하던  석우는 그만 눈을 감았다.  석우를 구하기 위해 달려 나가고 싶었지만 눈앞의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새와 마주서서 석우를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산을 털썩 내려앉은 것 같은 크기에 온통 푸른 깃털로 몸을 감싼 새는 두 눈과 벼슬, 그리고 부리마져 새파란 색을 띄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한 눈에 보기엔 거대 한 닭처럼 보였지만 닭보다는 훨씬 날렵하고 날개도 훨씬 컸다

“저런 새는 난 생 처음이야.”

찬이는 거대한 새에게 깔린 석우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온통 푸른빛을 가진 괴물 새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찬이는 재빨리 품속에 넣어 둔 요괴대백과 사전을 찾기 시작했다.

“봉황도 아닌 것 같고, 음 가루다도 아니고……. 야호! 찾았다. 저 거대한 닭은 바로 마누크마누크야!”

찬이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치다가 얼른 입을 막았다. 찬이의 소리를 들었는지 마누크마누크는 거대한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경계하는 표정으로 사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알을 지키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저 녀석이 둥지를 벗어나야 석우를 구할 텐데. 나 참, 어쩌지? 그나저나 한결이하고 미르, 부루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미르나 부루가 같이 있다면 손쉽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잇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 하필 이럴 때 문제가 생기는지 ……. 갑갑해 하던 찬이에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내가 용으로 변하면 되잖아! 어휴, 아니야 저 괴물 새는 용도 삼켜버릴 것 같이 크잖아. 분명 저 거대한 부리로 쪼일게 틀림없어.”

찬이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깐 용으로 변했다가 다시 작은 동물로 변해 버리는 건 어때? 이나 벼룩처럼 작아지면 저 녀석도 못 찾을 거 아냐? 아니, 아니야. 그전에 저 녀석이 날카로운 발로 확 채가면 난 꼼짝없이 죽을 거야.”

찬이가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그저 머리만 아플 뿐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둥지 안에 갇힌 석우를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에이, 좋아 그냥 해보자 이판 사판이닷!”

찬이는 눈을 꼭 감고 미르나 부루 같은 용을 상상했다. 순간 찬이의 몸은 부쩍부쩍 커지더니 눈부신 황금 빛 용으로 변했다.

“서, 성공이다!”

갑자기 나타난 용에 놀랐는지 마누크마누크가 날개를 펄럭이며 둥지에서 떠올랐다. 그 바람에 세찬 바람이 일고 주변에 있던 마른 나무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됐어. 저기 석우가 보인다!”

황금용으로 변한 찬이의 눈에 당황한 표정의 석우가 보였다. 다행이 석우는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석우야! 지금이야 빨리 도망쳐!

찬이는 석우에게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용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게다가 그 소리에 놀랐는지 석우는 거대한 마누크마누크의 알 뒤로 냉큼 숨어버리고 말았다.

“저 녀석, 정말 골치 덩어리라니까.”

하지만 답답해 할 틈도 없었다. 화가 잔뜩 난 것 같은 마누크마누크가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떡하지? 난 몰라!”

찬이는 그냥 무작정 하늘로 날아올랐다. 곧이어 마누크마누크도 커다란 닭울음소리를 내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으아! 이러줄 알았어. 이제 잡히면 끝장이야! 으아 나살려!”

그때였다. 찬이가 날아오른 하늘 높이 검은 구름 사이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무시무시하게 들려왔다. 곧이어 새까맣고 흉측한  머리들이 이곳저곳에서 구름을 뚫고 나타났다. 맙소사, 그것은 바로 검은 용이었다.

“엄마야!”

찬이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그만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바람에 찬이는 날개 잃은 새처럼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순간  찬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누크마누크가 푸른색 부리를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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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택시

 
“눈 오는 밤이면 말이여. 산기슭에 호랑이 그림자가 쑤욱 나타나는 겨.”
 

어렸을 때,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우면 언제나 옛날이야기가 흘러나왔어요. 도깨비와 호랑이 그리고 온갖 산짐승들의 달그림자가 누에 골 골짜기며 들판을 뛰어다녔지요. 오늘처럼 눈 오는 밤이 되면 나는 언제나 귀 기울여 눈 오는 소리를 들었어요. 사륵사륵 눈 내리 소리와 함께 멀리 아련하게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산짐승들도 도깨비들도 누에 골에 더 이상 살지 않아요. 하나 둘 사라져간 것들만큼 옛이야기도 하나 둘 희미해졌기 때문이지요. 
 

"송 순경, 또 뭔 생각 하는 거야?”

한 참 동안 눈 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나는 얼굴이 빨개졌지요. 김 경장은 혀를 끌끌 차면서 나에게 과속 감시 카메라에 찍힌 사진 한 장을 내밀었어요.

“이 사진이나 좀 봐봐."

나는 그 사진을 보고 정말 입이 딱 벌어졌어요. 멀리서 찍힌 것이라 그리 선명하진 않았지만 그게 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김 경장님 저에게 장난치시는 거죠?"

하지만 김 경장은 전혀 웃지 않았어요. 언제나 나에게 잔소리만 해대는 김 경장이 실없는 농담을 할 리가 없지요. 하지만 이 사진을 보고 그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왜냐고요? 사진에 찍힌 것은 바로 호랑이였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뛰어가는 호랑이가 속도위반 감시 카메라에 잡히다니, 이 사진을 도대체 누가 진짜라고 믿을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언제 멸종 됐지?"

"글, 글쎄요……."

"그나저나 이 사진,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어차피 호랑이든 멧돼지든 벌금 딱지를 뗄 순 없잖아. 난 퇴근 하니까 농땡이 치지 말고 근무 잘 서고."

김 경장은 그렇게 나에게 사진을 휙 던지곤 서둘러 퇴근을 했어요.

나는 김 경장의 발소리가 멀리 사라지자마자 재빨리 시골집에다 전화를 걸었요. 지금 나에겐 호랑이가 찍힌 사진보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건강이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에요.

“정말 괜찮은 거지유?”

할머니는 어제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괜찮다고 하셨지만 나는 더욱 조바심이 났어요.

“낼 모레면 휴가니까 그 땐 꼭 병원 가셔야 해유 알겠지유?”

고향의 할머니와 전화를 할 때면 저도 모르게 고향 사투리가 나와요. 사투리를 쓰지 않은지도 벌써 5년이 넘었는데 할머니 목소리만 들리면 곧바로 사투리가 튀어 나오니 참 신기한 노릇이지요.

전화를 끊고 나니 나는 서서히 졸음이 오기 시작했어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도 되고 긴장이 풀린 탓이었지요.

시골과 다름없는 이 작은 도시는 밤이 되면 사람들의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늦은 밤이 되면 도로변에 홀로 떨어져 있는 이 경찰서는 마치 눈밭에서 잠자고 있는 한 마리 곰처럼 보였어요.

그렇게 새벽 2시간 다되었을 쯤 일까요. 깜빡 졸던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눈을 떴어요.

"어흥! 벌금 내려 왔어요."

이윽고 정신을 차린 저의 눈앞에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어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호랑이 한마리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봐라보고 있지 않겠어요!

"과속 위반은 얼마죠?"

오, 맙소사!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벌렁 넘어지고 말았어요.

“호! 호랑이!”

내가 혼비백산해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사이 호랑이는 아무렇지 도 않다는 듯이 쓰윽 몸을 움직여 제 옆으로 다가왔어요. 나는 너무 놀라 오줌을 쌀 뻔 했지요.

“좀 바빠서 그런데……. 미안하지만 빨리 처리해 주지 않겠어요? 오늘은 택시 손님이 많아서요.”

등에 새하얀 눈이 쌓인 호랑이가 입을 움직일 때마다 긴 수염이 움직이고 하얀 입김이 모락모락 나왔어요.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하고 납작 엎드려 몸을 웅크렸어요. 등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요.

“맙소사!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마!”

“경찰 아저씨를 잡아먹을 생각은 없어요. 난 그냥 벌금을 내려 온 거니까요”

호랑이가 미안하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고개조차 들 수 없었어요.

“제발, 살려줘요! 제발”

“이거 바쁜데 어떡하지……. 그러니까 제 말은 과속 벌금은 얼마냐 구요.”

호랑이의 낮고 굵은 목소리에 나는 벌벌 떨면서 간신히 한마디 했어요.

“삼, 삼 만원이요.”

“그럼 이 정도면 되겠군요.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호랑이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경찰서 문이 쿵 닫히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때까지 정신이 없던 내가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경찰서 안을 진동하는 향기로운 냄새 때문이었지요. 간신히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자 내 눈 앞엔 알이 굵은 더덕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게 보였어요.

 

다음날이 되자 경찰서 식구들은 어디서 이렇게 많은 자연산 더덕을 얻었냐며 나에게 한마디 씩 했어요. 나는 지난 밤 겪은 일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지만 사람들이 나를 미친 사람 취급을 할까봐 그냥 고향에서 친구들이 보내주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지요.

그 더덕들이 호랑이가, 그것도 택시 영업을 하는 호랑이가 벌금 대신 내고 간 거라고 걸 차마 이야기 할 수는 없었어요.

영문을 모르는 경찰서 사람들은 횡재했다는 듯이 각자 더덕들을 나누어 갔고 원래 다음 당직이었던 김 경장까지 나에게 대신 근무를 서게 하고는 일찍 퇴근하였어요.

“송순경은 3일 후면 휴가잖아 안 그래? 좀 부탁해”

김 경장은 약간 미안한지 처음으로 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말했지요. 사실 그 놈의 호랑이가 나타나서 저를 한 입에 꿀꺽 삼켜 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는 근무를 서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이야기 해 봤자 제 말을 믿어 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 분명했지요. 그래서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고개만 끄덕였어요.

결국 모두들 퇴근한 경찰서에서 홀로 남은 나는 경찰서 창고에서 구한 야구 방망이를 가슴에 품고 불안한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 놈의 호랑이가 나타날까 봐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경찰서에 있는 총을 사용할 수는 없었어요. 사실 나는 남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무기를 사용할 만큼 용기가 있지 않거든요 게다가, 더덕을 한 광주리 가져온 호랑이에게 다짜고짜 총을 들이대는 게 좀 미안하기도 했지요.

12시가 넘자 사방이 깜깜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겨울밤이 시작되었어요. 어제부터 내린 함박눈은 벌써 무릎 높이까지 쌓이고 있었지요. 도로를 하얗게 물들인 눈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나는 꽁꽁 언 논에서 신나게 눈싸움을 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코끝이 찡해졌어요. 고향집에 전화를 해도 계속 통화 중인 것도 마음에 걸렸지요. 할머니가 그렇게 오래 동안 통화하시는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에요.

“또 수화기를 잘 못 놓으셨나?”

이렇게 할머니 걱정 때문에 안절부절 하던 나도 시간이 되자 점차 졸음을 참기 어려웠어요. 손에 쥐고 있던 야구 방망이도 어느새 바닥 구석으로 굴러 갔지요.

“따르릉!”

나를 깨운 건 경찰서로 울려 퍼진 한 통에 전화였어요. 바로 고향 친구 동식이의 전화였어요.

“큰 일이여 큰 일! 네 할머니 병원에 실려 가셨단 말이여.”

동석이의 전화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머릿속엔 동식이의 말만 맴돌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요. 나는 무작정 경찰서를 뛰쳐나와 눈이 쌓인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운전도 할 수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누구 없시유! 좀 도와줘유! 누구 없시유!”

다급한 마음에 소리를 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어요. 도로에는 차하나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지요. 미끄러운 눈밭을 달리다 넘어져서 멍들고 다쳤지만 할머니가 계시는 병원에 갈 수 없는 저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갔지요.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발은 더욱 거세졌고 지친 제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져갔어요. 그때였어요. 기적처럼 멀리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가까이 다가오는 게 보였어요. 나는 너무나 기뻐서 손을 들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지요.

“멈춰! 멈춰유! 제발 멈춰유!”

맙소사 그런데 그 불빛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아니었어요. 눈 쌓인 도로를 사뿐히 소리 없이 달려온 것은 바로 그 호랑이였던 거예요. 나는 번쩍거리는 호랑이의 눈을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이제 할머니도 못보고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지요.

“자 내 등에 타요. 어디로 가면 되죠?”

호랑이의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네?”

“어서, 호랑이 택시를 타란 말이에요.”

마음이 급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떨결에 호랑이 등에 올라탔어요.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내 털을 꽉 잡으세요.”

“고……고마워요.”

호랑이의 등은 생각보다 넓고 아늑했어요. 마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속에 나오는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나무꾼이 된 느낌이었지요.

“어디로 모실가요? 손님.”

“누, 누에 골! 읍내 병원이요.”

나는 다급하게 외쳤어요.

호랑이는 알아들었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더니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어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데....... 무슨 일이 생겼나요? "

나는 호랑이의 물음에 할머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호랑이가 나에게 말을 걸고 내가 호랑이와 이야기 한다는 사실이 정말 믿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치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이야기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런! 그럼 속도를 더 내야 갰군요. 허허, 속도위반을 할 일이 또 하나 생겼네요.”

호랑이는 더욱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어요. 나는 세찬 눈보라에 코가 얼얼했지만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털을 꽉 움켜쥐었지요.

“지난번에 속도위반 사진이 찍혔을 때도 무슨 일이 있었나 보죠?”

세찬 바람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나는 호랑이에게 물었어요.

“뭐라고요? 안 들려요.”

“어젯밤 벌금은 어쩌다 냈냐 말이에요.”

나는 좀 더 목소리를 높였어요.

“아 그거요? 그땐 너구리 아줌마가 아주 급했거든요. 사냥꾼의 올무에 걸린 새끼 너구리를 구하기 위해 바람처럼 달렸지요. 덕분에 처음으로 감시카메라에 사진도 찍히고 벌금도 냈지만 그래도 새끼 너구리가 무사한 게 더 중요하지요. 안 그래요?”

“네? 하지만 호랑이는 다른 동물을 먹이로 삼는…….그러니까 너구리를 잡아먹어야 맞는 거 아닌가요?”

나는 호랑이가 너구리를 구해주었다는 게 믿기질 않았어요.

“너구리들도 많고 호랑이들도 많았던 오랜 옛날엔 그랬지요. 하지만 지금은 서로 얼마 남지 않아서 자기 욕심만 챙기며 살지는 못하게 되었어요. 우리 호랑이들도 처음엔 그 사실을 모르고 무작정 먹이 사냥만 했어요. 호랑이들만 살면 그만인 줄 알았지요. 하지만 점점 우리 호랑이들도 그 수가 줄기 시작했어요. 인간에게 사냥당하고 굶주림과 몹쓸 병에 죽어갔죠. 결국 우리들도 모든 동물들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다른 동물들을 태워다 주는 호랑이 택시를 시작한 거예요.”

“그럼 다른 호랑이들도 이런 일을 하는 건가요?”

“아니요, 다른 호랑이들은 이제 없어요. 제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마지막 호랑이거든요. 이렇게 한 마리만고 나서야 깨달게 된 거지요. 참 어리석지요?”

호랑이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어요.

“처음 경찰서에 왔을 때 저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면 벌금 같은 건 내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말은 했지만 어제 밤 너무 놀라 호랑이 앞에서 난리를 쳤던 내 자신이 떠올라 나는 얼굴이 빨개졌어요.

“인간들이 만든 약속이지만 지킬 건 지켜야죠. 숲속의 약속도 마찬가지에요. 동물들 서로가 지켜야 할 약속들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모든 동물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호랑이는 오르막길을 힘차게 달리느라 힘껏 도움닫기를 한 다음 말을 계속 이었어요.

“그리고 감시 카메라나 올무 같은 기계들은 너구리 아줌마의 깊은 슬픔이나, 혼자 남겨져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는 새끼 너구리의 마음을 알 턱이 없잖아요. 그런 건……. 생명이 없는 기계들은 알지 못하니까 말이에요.”

“......”

나는 호랑이의 말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생명이 없는 기계……. 그 말은 마치 우리 인간들을 두고 하는 말 같았지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하지만 작은 내 목소리는 세찬 바람에 흩어져서 호랑이에게 전달되지 않았지요.

“걱정 말아요. 이 속도라면 한 시간 안에 달려갈 수 있을 거예요.”

호랑이는 오히려 내가 걱정할까봐 안심하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나는 눈물이 핑 돌아서 힘껏 호랑이등을 껴안았어요. 호랑이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어요.

“이런, 여긴 감시 카메라들이 쭉 늘어서 있는 도로군요. 이거 속도위반 벌금을 엄청 내야 갰는걸요?

새로운 도로로 들어섰지만 호랑이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도로 표지판들을 올려 보며 말했어요.

“걱정 말아요. 어젯밤에 잔뜩 가져온 더덕으로 이 정도는 충분하다고요.”

나는 호랑이 등에 납작 엎드려서 바람 소리에 지지 않으려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호랑이에게 내가 울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눈물을 쓱 닦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요.

“좋아요, 그럼 꽉 잡아요. 한 달음에 할머니가 계신 곳까지 달려갈 테니까.”

눈이 하얗게 내리는 도로를 호랑이와 나는 힘차게 달려갔어요.

무심한 감시 카메라들이 우리들 머리 위로 플래시를 팡팡 터뜨렸어요. 그리고 그 순간 만 큼은 차가운 감시 카메라들도 사람과 하나가 되어 달려가는 호랑이 택시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것 같았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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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콜록, 콜록! 미호야 같이가.”
 

노아는 자기 꼬리가 계속해서 밟히자 짜증이 났다. 게다가 아침부터 미호가  

정신 없이 용 계곡으로 가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노아의 마음을  

알리없는 미호는 십여 발자국 앞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미호야, 아침부터 왜 그러는 거야. 아, 아얏”
 

노아는 결국 자기 꼬리에 걸려 발라당 자빠지고 말았다. 노아는 눈물이 날것  

같았다. 만약 미호가 노아를 나 두고 가버렸다면 정말 큰 소리를 내고 울었을  

게 분명했다.

“조심하지 않고.....”

그제야 미호가 재빨리 달려와 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노아는 입을  

삐쭉 내밀고 고개를 휙 돌렸다.

“치, 그러게 처음부터 같이 갔으면 이렇게 넘어지지도 않았을 거잖아.”

노아의 눈가에는 벌써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오늘 구슬이 예언을 했어.”

“저, 정말?”

노아는 자기도 모르게 미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미호가 가지고 있는  

구슬이 예언을 했다면 그건 분명 큰 일이 일어난 것을 의미했다.

“주, 중요한 예언이야?”

“응, 아주 중요한 거야. 오늘 아침, 용의 계곡에 그들이 나타난데.”

“그, 그들?”

“그래, 그들......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그 들 말이야.”

미호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언제나처럼 

 햇살은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 먹구름이 잔뜩 낀 그곳에서는 검은 용의 기괴한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지난 백년동안 이 온 대륙에서 아름다운 아침 햇살을  

바라  본 적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나는 아침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미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울컥했다.

“빨리가자. 그들에게 할머니의 유물을 전해 줘야 해.”

무언가 결심한 듯한 미호의 눈동자를 보자 노아는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노아는 발딱 몸을 일으키고는 자기 고리를 바지 춤에 쑥 집어넣었다. 꼬리를  

바지에 집어넣다니, 평상시 같아서는 그렇게 꼴사나워 보이는 모습을 보일  

노아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럴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노아가 미호를 바라보며 씽긋 웃었다. 미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가자!”

푸른 나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붉은 바위만 펼쳐진 황무지,  

그 넓고 넓은 벌판에서 노아와 미호, 두 새끼 구미호들은 뿌연 안개에  

둘러싸인 세상을 해치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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