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회>
“꼬르륵!”
“아 배고파!”
석우는 한 참 맛있는 초코 케이크를 먹는 꿈을 꾸다 잠에서 깨어났다. 보통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식탁에 차려진 맛있는 아침식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 아침엔 엄마의 잔소리도 맛있는 음식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대신 양계장에서나 풍겨올 듯, 닭 냄새가 진동했다.
‘뭐야, 오늘 아침은 치킨인가?’
이렇게 생각하자 석우는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생일날이 되려면 아직 한참인데 엄마가 무슨 마음을 먹고 치킨을 해주신 걸까? 오늘 아침엔 정말 실컷 먹고 가야지.’
눈을 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서, 석우야 조, 조심해”
“으응? 누, 누구야.”
눈을 뜨자. 석우의 눈에 비가 쏟아질 듯 어두컴컴한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뭔가 크고 푸른 것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것은 깃털이 분명했다. 석우 몸보다 다섯 배는 될 것 같은 커다란 깃털…….
“우와 무슨 깃털이 저렇게 큰 거야?”
정신을 차린 석우가 몸을 일으키자 눈앞에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석우는 새 하얗고 반질거리는 바위에 손을 집고 기대어 섰다. 석우의 손끝에 매끌매끌한 감촉이 느껴졌다. 석우는 자신도 모르게 쓰윽 바위를 안아 보았다. 석우 정도의 어린아이가 한 열 명쯤은 손을 붙잡고 둘러싸도 모라랄 될 정도로 거대한 바위였다. 게다가 이 바위는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래서 안고 있는 동안 석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서, 석우야! 몸을 숙여 빨리!”
아까부터 석우를 부르는 애타는 목소리는 그건 분명, 찬이가 분명했다. 그런데 찬이는 어디 있는 거지?
“찬이야 어디 있어? 응?”
석우는 주변을 돌아보며 찬이를 찾았다. 하지만 찬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거칠어 보이는 붉은 색 바위들이 보이는 허허 벌판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제야 석우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잇는지를 알게 되었다. 좀 전까지 한결이와 찬이 그리고 두 용들과 함께 분식집 부엌에 있었던 것이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긴 바로 온 대륙이 분명했다.
“위! 위를 봐!”
“응?”
찬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석우가 얼떨결에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 위해 아주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온통 푸른빛을 띤,
“우와! 정말 큰 새네. 어? 어!”
석우는 놀라움으로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푸른 새가 순식간에 수십 배로 커졌기 때문이었다. 활짝 핀 푸른 날개가 하늘을 뒤덮을만해지자. 석우는 찬이가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새 아니 아주, 아주 거대한 새 한 마리가 석우를 향해 곧바로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우는 그 모습에 너무도 놀라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와 동시의 새가 지상에 내려앉았고 석우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태풍 같은 강한 바람이 계곡전체를 휘몰아쳤다. 바위에 숨어 잇던 찬이도 바위를 붙들지 않았다면 날아가 버렸을 정도였다.
“으……. 으 어떡해”
붉은 바위 찰싹 달라붙어 강풍을 피하던 석우는 그만 눈을 감았다. 석우를 구하기 위해 달려 나가고 싶었지만 눈앞의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새와 마주서서 석우를 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산을 털썩 내려앉은 것 같은 크기에 온통 푸른 깃털로 몸을 감싼 새는 두 눈과 벼슬, 그리고 부리마져 새파란 색을 띄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한 눈에 보기엔 거대 한 닭처럼 보였지만 닭보다는 훨씬 날렵하고 날개도 훨씬 컸다
“저런 새는 난 생 처음이야.”
찬이는 거대한 새에게 깔린 석우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온통 푸른빛을 가진 괴물 새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찬이는 재빨리 품속에 넣어 둔 요괴대백과 사전을 찾기 시작했다.
“봉황도 아닌 것 같고, 음 가루다도 아니고……. 야호! 찾았다. 저 거대한 닭은 바로 마누크마누크야!”
찬이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치다가 얼른 입을 막았다. 찬이의 소리를 들었는지 마누크마누크는 거대한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경계하는 표정으로 사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알을 지키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저 녀석이 둥지를 벗어나야 석우를 구할 텐데. 나 참, 어쩌지? 그나저나 한결이하고 미르, 부루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미르나 부루가 같이 있다면 손쉽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잇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 하필 이럴 때 문제가 생기는지 ……. 갑갑해 하던 찬이에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내가 용으로 변하면 되잖아! 어휴, 아니야 저 괴물 새는 용도 삼켜버릴 것 같이 크잖아. 분명 저 거대한 부리로 쪼일게 틀림없어.”
찬이는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깐 용으로 변했다가 다시 작은 동물로 변해 버리는 건 어때? 이나 벼룩처럼 작아지면 저 녀석도 못 찾을 거 아냐? 아니, 아니야. 그전에 저 녀석이 날카로운 발로 확 채가면 난 꼼짝없이 죽을 거야.”
찬이가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그저 머리만 아플 뿐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둥지 안에 갇힌 석우를 생각하니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에이, 좋아 그냥 해보자 이판 사판이닷!”
찬이는 눈을 꼭 감고 미르나 부루 같은 용을 상상했다. 순간 찬이의 몸은 부쩍부쩍 커지더니 눈부신 황금 빛 용으로 변했다.
“서, 성공이다!”
갑자기 나타난 용에 놀랐는지 마누크마누크가 날개를 펄럭이며 둥지에서 떠올랐다. 그 바람에 세찬 바람이 일고 주변에 있던 마른 나무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됐어. 저기 석우가 보인다!”
황금용으로 변한 찬이의 눈에 당황한 표정의 석우가 보였다. 다행이 석우는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석우야! 지금이야 빨리 도망쳐!
찬이는 석우에게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용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게다가 그 소리에 놀랐는지 석우는 거대한 마누크마누크의 알 뒤로 냉큼 숨어버리고 말았다.
“저 녀석, 정말 골치 덩어리라니까.”
하지만 답답해 할 틈도 없었다. 화가 잔뜩 난 것 같은 마누크마누크가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떡하지? 난 몰라!”
찬이는 그냥 무작정 하늘로 날아올랐다. 곧이어 마누크마누크도 커다란 닭울음소리를 내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으아! 이러줄 알았어. 이제 잡히면 끝장이야! 으아 나살려!”
그때였다. 찬이가 날아오른 하늘 높이 검은 구름 사이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무시무시하게 들려왔다. 곧이어 새까맣고 흉측한 머리들이 이곳저곳에서 구름을 뚫고 나타났다. 맙소사, 그것은 바로 검은 용이었다.
“엄마야!”
찬이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그만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바람에 찬이는 날개 잃은 새처럼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순간 찬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누크마누크가 푸른색 부리를 쩍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