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이들과 구미호들이 메마른 강에서 빠져나오자, 올고이 코르고이도 먹이감이 사라지자 몇 번 으르렁거리더니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모두 대나무 장대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 겁에 질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용서해 주십시요. 신성한 마누크마누크님!”

“용서 해 주십시오!”

찬이는 좀 전까지 자신들을 괴물 지렁이에게 던져주려고 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벌벌 떠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찼다. 그 때 석우가 나무 자동차를 타고 도망가고 있는 두억을 가리켰다.

“저기 두억이 도망간다!”

“어림없지!”

노아가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 두억에게 홱 던졌다. 그러자 사람 모양의 부적이 두억의 머리 위로 손살같이 날아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부적은 두억의 자동차 전체를 감싸버렸고 두억은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고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거 놔! 이거 놔!”

종이 부적에 사로잡힌 두억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아 앞으로 끌려 나왔다.

“이런 사기꾼 같은 녀석!”

마누크마누크에서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찬이가 두억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쳇, 나한테 속은 너희들이 바보인거야.”

두억이 고개를 돌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듣고 노아는 화를 버럭 내었다.

“너 이 녀석! 내가 널 앞으로 빗자루로만 살아가게 만들어 버릴 줄 알아!”

하지만 두억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내가 썰매를 팔았지만 거기 들어간 건 너희들이 원해서잖아. 장대를 사간것도 이 마을 사람들이라고”

“조용히 못 해!”

노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겟다는 듯이 부적을 꺼내들었다. 그때였다. 엎드려 있던 마을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왔다.

“마누크마누크님! 그리고 구미호님들 저 녀석이 저희를 부축이지 않았다면 저희는 절대로 이런 상상도 못할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희를 속여 대나무 장대까지 사게 한 두억을 꼭 처벌해 주십시오.”

“뭐예요? 저 녀석에게 속았다고 해도 우리를 공격한 건 당신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찬이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말하자 마을 사람들은 다시 몸을 납작 엎드렸다.

“이 녀석들 치사하게 나한테 모든 잘 못을 뒤집어 씌워!”

“용서해주십시오. 위대하신 마누크마누크님!”

“용서를!”

마을 사람들의 울 듯 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시끄러워요!”

노아가 소리를 꽥질렀다.

“이 사람들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면 이게 다 나단 때문이야. 풍요의 강이 이지경이 되지 않았다면 마을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을 테고, 가진 게 없어 마을을 떠날 수 조차 없는 이 사람들이 저 사기꾼 도깨비의 말에 현혹되지도 않았겠지.”

미호가 담담히 말했지만 표정은 슬퍼보였다.

“그래도 자기들이 살려고 남을 해칠 생각을 하다니 너무해.”

석우는 모래덩이를 입에 넣었다가 너무 차가운 바람에 다시 뱉고는 인상을 지뿌리며 말했다. 그때였다. 두억이 표정을 바꾸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봐, 사실 너희들을 해칠 생각은 없었어. 지금 마음속으로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그래서 말인데. 여기서 날 풀어주면 너희들에게 이 강을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게 거짓말이 아니야. 나는 이래봬도 모르는 게 없어. 나단의 철성으로 가는 비밀 통로도 나는 알고 있단 말이야.”

“네 녀석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절대로 안 믿어.”

찬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이제 강을 타고 내려갈 방법이 없잖아. 어쩌지?”

석우의 말에 찬이와 구미호들도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이들과 구미호들은 잠시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5분 정도시간이 지난 후 노아가 두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 먼저 네 이야기가 정말 가능한지 먼저 들어보도록 할 게.”

“아주 현명한 선택이야. 너희들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데.”

두억이 간죽거리다가 싸늘한 미호의 표정을 보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대신, 우리가 완전히 강을 벗어날 때까지 넌 우리와 함께 해야 해. 알겠지.”

“어? 하지만, 그건 좀... 쳇, 별수 없지. 내일 장사를 손해 보는게 지금 빗자루로 되돌아 가는 것보다 났을 테니까 뭐.”

두억이 많이 양보햇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이 또 있어.”

찬이가 눈빛을 빛내며 두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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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얼음동굴




(1)

차가운 모랫바닥을 뚫고 나온 건 길이가 10미터는 더 되 보이는 거대한 지렁이였다. 주름진 붉은 몸뚱이에 날카로운 이빨이 원형으로 달려있는 머리가 모랫바닥을 뚫고 석우에게 달려들자 석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위험해!”

미호가 재빨리 달려와 석우의 뒷덜미를 잡고 자리를 피했다. 석우는 미호의 팔에 매달려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러댔지만 다행이 거대한 지렁이의 공격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렁이는 이내 석우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직였다. 그 모습을 보고 찬이는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맙소사 저게 도대체 뭐야?”

“뭐가 됐든 우리가 막아 볼 테니까 넌 강 밖으로 달아나 어서!”

 노아의 다그침에 찬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둘러 강둑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무엇인가 딱딱한 것이 찬이의 이마를 내리쳤다. 찬이는 그 바람에 강으로 굴러 떨어졌다.

“아야! 뭐 뭐야!”

찬이의 눈에 대나무 장대를 들고 있는 두억의 모습이 보였다. 두억은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안 돼지 너희들은 강에서 죽어줘야 한단 말이야. ”

“뭐라고 이 자식이!”

찬이는 다시 강둑으로 기어오르자 이번엔 무표정한 얼굴의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나무 장대로 찬이를 공격했다.

“아! 아얏!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찬이는 다시 강으로 굴러떨어졌다.

“올고이 코르고이가 너희들을 잡아먹을 때까지 좀 얌전하게 있어.”

두억이 미소를 지으며 장대를 길게 뻗어 창으로 찬이의 어깨를 쿡 찔렀다.

“윽, 너 어떻게 우릴 속일 수 있어!”

“헤헤, 너희들 같은 바보는 언제나 속일 수 있어. 너는 이 마을 사람들이 뭘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해? 농사, 장사? 아니야. 바로 올고이 코르고이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이 남긴 옷가지와 돈을 팔아서지. 이 괴물 녀석 다행히 옷과 돈은 소화시키지 못하거든.”

찬이는 그제야, 마을 사람들이 그물이 달린 대나무 장대를 사기위해 두억에게 몰려든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죽게 만들어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다니! 장대에 찔린 어깨가 욱신거렸지만 찬이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용서 못해!”

 순간 찬이의 몸이 점점 커지면서 온통 파란색으로 변했다.  찬이의 몸이 어느새 마누크마누크로 변하기 시작했다. 마누크마누크로 변한 찬이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자 강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낙엽처럼 바람에 뒹굴었다. 두억도 간신히 나무자동차에 의지해 바람을 피하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뭐야, 저 녀석이 어떻게 마누크마누크님으로 변한 거야?

 놀란 건 노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힘도 없는 인간 꼬마라고 생각했던 찬이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니, 노아는 문뜩 이 아이들이 진짜 예언의 아이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이야, 지렁이 녀석을 혼내줘. 빨리 빨리!”


 미호와 함께 올고이 코르고이의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던 석우가 찬이를 올려보며 소리쳤다.

“알았어! 저 지렁이 녀석 부리로 쪼아주고 말거야!”

찬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올고이 코르고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미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 공격을 멈춰!”

 발톱을 세워 달려들던 찬이가 공격을 멈추고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을 맴돌았다.

“저 녀석 피부에는 독샘이 있어. 그래서 함부로 상처를 내면 독을 쏟아 부을 거야. 올고이 코르고이의 독을 맞고 살아남을 생물은 아무도 없어.”

 미호의 날에 찬이는 화들짝 놀랐다.

“어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우선 구미호들과 석우를 구해주자!”

찬이는 다시 날개짓을 힘차게 하며 강 바닥으로 내려갔다. 석우와 미호 그리고 노아가 마누크마누크로 변한 찬이의 다리를 꼭 붙잡자. 찬이는 간발의 차로 독 지렁이가 머리를 쳐들고 공격을 피하면서 다시 하늘위로 솟구쳐 올랐다.

“야호! 성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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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놈의 나단 녀석이 뜷지 말아야 할 구멍을 뚫어버렸기 때문이야.”

도끼비 두억-나무 자동차를 타고 다니던 기다란 빗자루를 닮은 녀석-은 정신 없이 나뭇잎 지폐를 세면 건성으로 대답 했다.

구미호들과 아이들은 강가에서 물을 팔고 있는 도깨비 두억에게 다가가 풍요의 강이 왜 말라붙어 버렸는지에 대해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미호가 예상했던 대로 강이 말라버린 건 나단이 풍요의 강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무언가를 봅아간 후 부터라고 했다. 그 이후부터 갑자기 강이 마르기 시작했고 언제나 따뜻한 봄날 같았던 이곳은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결국 강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물을 구하지 못해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거나 두억 같은 물장사에게 물을 사서 살아가는 수 박에 없었다.

 

“그럼, 이 강을 타고 내려갈 방법은 없는 거야?”

미호의 물음에 두억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 했다.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두억은 이렇게 말하며 나무를 붙여 만든 썰매를 꺼내 보였다. 하지만 두억은 그리 만만한 장사꾼이 아니었다.

“나뭇잎 지폐로 열 장은 내야 해!”

두억은 팔짱을 낀채 어림 없다는 듯이 말했다. 찬이와 석우는 온 대륙에서는 나뭇잎이 돈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이 신기했지만 두 아이가 보기에도 나무 썰매의 값은 너무 비싸보였다. 눈치 빠른 두억은 자기 자동차에 쌓여진 물건들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뭐, 썰매가 싫다면 이런 것도 있어.”

두억이 두 번째로 꺼낸 것은 나무로 만든 촛대와 양초였다. 아이들과 구미호들은 영문을 몰라 두억을 바라보았다.

“저기 저 녀석들처럼 머라이언이 다시 깨어날 때까지 기도를 해보던가. 뭐 몇 백년이 걸릴 진 모르지만 말이야.”

두억이 가리키는 곳에 수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라이언이면 풍요의 강의 지킨다는 수호신을 말하는 거야?”

미호의 물음에 두억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억의 말에 따르면 풍요의 강이 점점 말라가고 기온이 낮아지면서 물이 시작되는 어머니 동굴이 꽁꽁 얼어붙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 동굴 안에 살던 머라이언도 얼어붙은 거지. 뭐.”

두억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자, 어쩔 거야. 내 썰매를 살 거야 말 거야?”

두억의 썰매를 보며 아이들과 구미호들은 고민에 빠졌다.

“저 녀석은 사기꾼이 분명해. 저 녀석이 팔고 있는 물을 봐.  절대로 푸른 숲에서 떠온 물이 아니야. 분명 어디 늪 같은 데서 떠온 게 분명해 그런데도 저 녀석 어마어마한 돈을 받고 팔고 있잖아.”

노아가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우린 나단의 성으로 가야해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강을 따라 가야 하고... 우리에겐 이 썰매가 꼭 필요해.”

미호가 어쩔수 없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저 사기꾼 같은 도깨비 녀석에게 돈을 주는 건 너무 아까워.”

찬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맞아 정말 그렇지?”

노아가 자기 말에 맞장구를 쳐준 찬이를 바라보며 기분 좋게 웃다가 순간 찬이가 방금 전까지 의심하며 서로 말싸움을 한 상대라는 걸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 안 그래.”

석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결국 아이들과 구미호들은 두억에게 썰매를 사기로 했다.




“자, 여기 썰매 네 개. 잘 사용해 보라고. 그리고 썰매를 사용할 때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책임 못 져.”

“썰매를 사용할 때 생기는 문제?”

노아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두억을 쏘아보았다.

“그러니까 음, 설매를 타다 넘어지고 가지고 뭐 그런 문제 말이야. 흠흠.”

두억은 억지로 미소를 짓고 난 후 시선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렸다.

“자자, 드디어! 장대를 팝니다. 장대!”

그러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두억은 사람들에게 잠자리채처럼 망이 달린 아주 기다란 대나무 장대를 팔기 시작했다. 장대는 순식간에 동이났다.

“하하, 난 너무 장사를 잘 한단 말씀이야. 어? 너희들은 왜 계속 서 있는 거야? 자자, 강으로 달려가서 썰매를 타보라고 어서!”

 두억의 재촉에 찬이 일행은 떠밀리다시피 강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찬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석우에게 말했다. 석우는 강가에 모래를 맛을 보다 너무 차가워 인상을 쓰며 찬이를 돌아보았다.

“응? 뭐가?”

“강가에 사는 사람들 말이야. 왜 지금 장대를 사가는 걸까? ”

“글쎄, 뭐 과일이라도 따려는 거 아닐까?”

석우는 어깨를 으슥했다. 찬이는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나무 설매를 들고 강바닥으로 내려갔다. 석우도 구미호들도 모두 강바닥으로 내려가 썰매에 앉았다.




“자 그럼 썰매타기를 시작해 볼까? 자! 출발!”

찬이의 말이 끝나자 마자 썰매 네가가 얼어붙은 모래 위에서 미끄러져 가기 시작했다.

“야호!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는데?”

찬이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석우는 썰매를 타는게 무서워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노아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꿈틀!”

얼어붙은 모래가 마치 살아잇는 생물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쩍쩍 얼어붙은 모래가 갈라지는 소리도 여기 저기 시작됐다. 신나게 내려가던 찬이 일행은 그 소리에 놀라 모두 썰매를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모래 바닥에서 믿기 힘든 것이 쑤욱 튀어나왔다.

“우와! 저, 저게 뭐야?”

“엄마야!”

석우의 떨리는 비명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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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는 지금 우리 임무를 할 뿐이야. 우리의 일은 예언의 아이들을 지키는 일이고... 그걸 할 뿐이야. 그러니까 예언의 아이들이 너희든 아니든 우린 상관없어. 그러니까...”

미호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 석우와 찬이, 그리고 노아는 아무 말을 못하고 미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우릴 의심을 하든 말든 우리 너희를 지킬 수밖에 없어. 너희가 예언의 아이들로는 볼 수 없는 해괴망측한 행동을 해도 말이야.”

“...”

 미호의 말에 석우와 찬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미호는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할 말을 다 마치고 뚜벅두벅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자 이제 이 언덕만 넘으면 풍요의 강이야.”

“가.. 같이 가.”

머슥해진 노아가 재빨리 미호의 뒤를 따랐다. 석우와 찬이도 고개를 숙이고 미호를 뒤따랐다.

구미호들과 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언덕 정상에 다다를 때였다. 어디선가 시끄럽고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이요! 물! 방금 푸른 숲에서 떠온 물이 왔어요.”

그와 동시에 나무토막으로 엉성하게 만든 자동차 하나가 털털 거리며 굴러오는 것이 보였다. 그 자동차에는 커다란 나무 물통이 실려 있었고 기다란 빗자루를 닮은 이상한 녀석이 운전석 앉아 신이 나서 떠들고 있었다.

“물이요! 물! 방금 푸른 숲에서 떠온 깨끗한 물!”

하지만 떠드는 말과 달리 물통에서 흘러나와 땅에 떨어진 물은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역겨운 악취까지 나자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가까이 다가왔던 나무 자동차가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며 노아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쳇, 저런 냄새나는 물을 누가 사겠어? 풍요의 강엔 언제나 맑은 물이 흐르는데 말이야. 어? 가, 강이!”

 언덕 너머를 바라보던 노아가 말문이 막혀서 멍하니 풍요의 강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말고 깨끗한 물이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풍요의 강.... 그런데 물이 없다. 풍요의 강은 물 한 방울 없이 모래와 자갈들만 보이는 사막의 강처럼 보였다.

 놀란 건 미호도 마찬가지였다. 온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 중 하나인 풍요의 강이 이렇게 메말라 버리다니...

“이게 모두 나단 때문이야.”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미호도 이번만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호와 노아를 따라 언덕 위로 올라온 찬이와 석우도 모래 터널 같은 강의 모습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이제 어떻게 강을 타고 내려가지?”

찬이의 말에 석우도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물이다! 물!”

시끄러운 사람들 목소리에 멀리 언덕 아래를 바라보니 사람들이 나무자동차 주위에 구름같이 모여든 것이 보였다.

“일단, 이 강에 무슨 일인지 한번 알아보자.”

미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석우와 찬이 그리고 구미호들은 서둘러 언덕을 넘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 풍요의 강가를 내려가면서 아이들과 구미호들은 으슬으슬 한기를 느꼈다. 당 위에 발을 내딛을 대마다 쩍쩍 얼음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무자동차가 있는 곳 근처까지 가자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잔뜩 움츠렸다. 이곳은 이미 풍요의 강이 아니었다. 추위가 스믈스믈 찾아오고 물 한방울 없이 메마른 바닥만 보이는 강... 마치 이곳을 죽음의 강이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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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메마른 강




 (1)

“저 녀석들 정말 예언의 아이들이 맞긴 한 거야?”

노아가 아직도 못 믿겠다는 듯이 미호에게 속삭였다. 용의 계곡에서 나와 구미호마을에 하룻밤을 묵은 찬이와 석우는 다음날 서둘러 나단의 성으로 향하는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두 아이의 행동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사람들이나 정말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석우는 구미호 마을을 벗어나기 무섭게 배고프다고 투덜대기 시작했고 커다란 바위를 두 개나 집어 먹어 노아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찬이는 찬이대로 길가에 눈에 띄는 요괴나 도깨비들이 보이면 앞뒤 안 가리고 쫓아가는 통에 하마터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일이 생길 뻔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구미호들은 이들을 보호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다려 보자, 구슬의 예언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미호가 이렇게 담담히 이야기 했지만 노아는 미호도 두 고마 녀석들을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들이 정말 예언의 아이들이라는 게 확실하다면 미호는 분명 할머니의 유품을 두 아이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호는 두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유품이야기 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 미호가 보기에도 저 녀석들은 뭔가 수상하게 틀림없어. 그럼 그렇고말고 저런 녀석들이 예언의 아이들일 리가 없어!’

 노아는 뒤에서 따라오는 석우와 찬이를 흘낏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이런 의심가득한 눈초리를 하고 있던 건 노아만이 아니었다.




“석우야, 저 구미호들 말이 정말 사실일까?”

찬이는 앞서가는 구미호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석우에게 말했다. 석우는 검은색 조약돌들을 주워 삼키며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얌얌 그게 무슨 소리야.”

 석우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맛 젤리가 가득 든 가방은 아직도 찾지 못했지만 그것과 가장 비슷한 맛이 나는 검은 조약돌을 주머니에 가득 채워서 그런지 석우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무리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구미호라고 해도 저 녀석들은 구미호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설마, 어제 마을에서 먹을 것도 잔뜩 주고 편히 쉬게 해줬잖아. 난 먹을 거 많이 주는 사람들 치고 나쁜 사람들 못 봤어.”

 “어이구,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이 잘못이다. 그나저나 한결이와 두 용 녀석들은 어디에 있는 거야?”

“맞다 그러고 보니 한결이를 깜박했네. 그 녀석들 혹시 무슨 사고를 당하진 않았겠지?”

“그러게, 아무 사고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찬이는 한결이를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상한 괴물들이 잔뜩 있는 온 대륙에서 한결이만 혼자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결이를 찾을 시간이 없었다. 찬이는 우선 마누크마누크의 알을 나단의 성으로 가지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찬이는 오른 손바닥에 그려진 삼족오의 문양을 한 번 쳐다보고 한 숨을 푹 쉬었다.  그때였다. 미호가 고개를 돌려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풍요의 강이 나와. 그 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가면 온 대륙의 중심으로 갈 수 있어.”

“으, 응. 알았어.”

무표정하고 차가와 보이는 미호의 얼굴에 찬이는 마치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주춤 뒤로 물러섰다.

“꼭 배를 타야 해? 난 멀미를 심하게 하는데.”

석우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노아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계속 먹어대고 있는데 멀미를 안 하는 게 이상한 거잖아!”

노아의 고함소리에 석우는 겁이 나서 냉큼 찬이 뒤에 숨었다. 미호가 노아를 가로막았다.

“노아야.”

“하지만 이 녀석들 꼴을 봐. 저 녀석들이 무슨 예언의 아이들이야.”

“노아야, 그만해…….”

“그만하긴 뭘 그만 해. 너도 나처럼 생각하니까 할머니의 유품을 저 녀석들에게 전해주지 않는 거잖아. 내말이 틀려?”

“…….”

 미호는 아무 말도 없이 노아를 바라보았다. 항상 표정이었지만 이 번 만큼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미호에게 마구 퍼붓듯 이야기 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순간 구미호들과 아이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의 유품? 그게 뭐지?”

 찬이가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너, 너희들은 몰라도 돼!”

노아는 당황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야 너희들 우리들에게 숨기고 있는 게 있지?  석우야, 봐, 저 녀석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내가 말했잖아.”

찬이는 의심의 찬 눈빛으로 미호와 노아를 번갈보다 석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그래. 너희들 진짜 정체가 뭐야?”

 석우도 찬이의 뒤에 숨어서 한마디 내뱉었다.

“뭐라고 이 녀석들이 정말!”

노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홉 개의 꼬리를 활짝 폈다. 그때였다.

“모두 그만해!”

미호의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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