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메마른 강
(1)
“저 녀석들 정말 예언의 아이들이 맞긴 한 거야?”
노아가 아직도 못 믿겠다는 듯이 미호에게 속삭였다. 용의 계곡에서 나와 구미호마을에 하룻밤을 묵은 찬이와 석우는 다음날 서둘러 나단의 성으로 향하는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두 아이의 행동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사람들이나 정말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석우는 구미호 마을을 벗어나기 무섭게 배고프다고 투덜대기 시작했고 커다란 바위를 두 개나 집어 먹어 노아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찬이는 찬이대로 길가에 눈에 띄는 요괴나 도깨비들이 보이면 앞뒤 안 가리고 쫓아가는 통에 하마터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일이 생길 뻔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구미호들은 이들을 보호해 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다려 보자, 구슬의 예언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미호가 이렇게 담담히 이야기 했지만 노아는 미호도 두 고마 녀석들을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들이 정말 예언의 아이들이라는 게 확실하다면 미호는 분명 할머니의 유품을 두 아이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호는 두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유품이야기 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 미호가 보기에도 저 녀석들은 뭔가 수상하게 틀림없어. 그럼 그렇고말고 저런 녀석들이 예언의 아이들일 리가 없어!’
노아는 뒤에서 따라오는 석우와 찬이를 흘낏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이런 의심가득한 눈초리를 하고 있던 건 노아만이 아니었다.
“석우야, 저 구미호들 말이 정말 사실일까?”
찬이는 앞서가는 구미호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석우에게 말했다. 석우는 검은색 조약돌들을 주워 삼키며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얌얌 그게 무슨 소리야.”
석우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맛 젤리가 가득 든 가방은 아직도 찾지 못했지만 그것과 가장 비슷한 맛이 나는 검은 조약돌을 주머니에 가득 채워서 그런지 석우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무리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구미호라고 해도 저 녀석들은 구미호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설마, 어제 마을에서 먹을 것도 잔뜩 주고 편히 쉬게 해줬잖아. 난 먹을 거 많이 주는 사람들 치고 나쁜 사람들 못 봤어.”
“어이구,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이 잘못이다. 그나저나 한결이와 두 용 녀석들은 어디에 있는 거야?”
“맞다 그러고 보니 한결이를 깜박했네. 그 녀석들 혹시 무슨 사고를 당하진 않았겠지?”
“그러게, 아무 사고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찬이는 한결이를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상한 괴물들이 잔뜩 있는 온 대륙에서 한결이만 혼자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결이를 찾을 시간이 없었다. 찬이는 우선 마누크마누크의 알을 나단의 성으로 가지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찬이는 오른 손바닥에 그려진 삼족오의 문양을 한 번 쳐다보고 한 숨을 푹 쉬었다. 그때였다. 미호가 고개를 돌려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풍요의 강이 나와. 그 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가면 온 대륙의 중심으로 갈 수 있어.”
“으, 응. 알았어.”
무표정하고 차가와 보이는 미호의 얼굴에 찬이는 마치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주춤 뒤로 물러섰다.
“꼭 배를 타야 해? 난 멀미를 심하게 하는데.”
석우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노아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계속 먹어대고 있는데 멀미를 안 하는 게 이상한 거잖아!”
노아의 고함소리에 석우는 겁이 나서 냉큼 찬이 뒤에 숨었다. 미호가 노아를 가로막았다.
“노아야.”
“하지만 이 녀석들 꼴을 봐. 저 녀석들이 무슨 예언의 아이들이야.”
“노아야, 그만해…….”
“그만하긴 뭘 그만 해. 너도 나처럼 생각하니까 할머니의 유품을 저 녀석들에게 전해주지 않는 거잖아. 내말이 틀려?”
“…….”
미호는 아무 말도 없이 노아를 바라보았다. 항상 표정이었지만 이 번 만큼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미호에게 마구 퍼붓듯 이야기 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순간 구미호들과 아이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할머니의 유품? 그게 뭐지?”
찬이가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너, 너희들은 몰라도 돼!”
노아는 당황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야 너희들 우리들에게 숨기고 있는 게 있지? 석우야, 봐, 저 녀석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내가 말했잖아.”
찬이는 의심의 찬 눈빛으로 미호와 노아를 번갈보다 석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그래. 너희들 진짜 정체가 뭐야?”
석우도 찬이의 뒤에 숨어서 한마디 내뱉었다.
“뭐라고 이 녀석들이 정말!”
노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홉 개의 꼬리를 활짝 폈다. 그때였다.
“모두 그만해!”
미호의 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