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회>
순간 한결이는 아차 싶었다. 감히 무시무시한 용 앞에서 고함을 치다니, 용의 매서운 눈을 보자 다시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우, 시끄러……. 난 고함치는 게 딱 질색이야.”
용은 커다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냥 장난 한 건데 뭘 그리 화를 내고 난리니? 인간들은 정말 잔소리꾼들밖에 없다니까”
용이 마치 투정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말하자 한결이는 문득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장난꾸러기 동생이 옆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한결이는 조금 용기가 났다.
“그, 그럼, 빨리 사과해. 네가 잘못 했으니까.”
“피, 난 장난쳤다고 했지. 잘못했다고는 안 했다 뭐.”
용은 하얀 입김을 푹푹 내뿜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보자 한결이는 웃음이 피식 나왔다. 이제는 용이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 봐. 너 때문에 내가 감기에 옴팡 걸렸잖아. 그러니까 사과해.”
한결이는 일부러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안 해 안 해. 죽어도 안 해. 용은 사과 같은 거 하면 안 돼.”
“치 그런 게 어디 있어?”
“여기 있다. 여기 있어.”
“하하하하”
한결이는 어린애 같은 용의 모습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용하고 이렇게 말싸움을 하고 있는 꼴이 너무 우습고 재미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웃어! 날 비웃는 거지? 나 화났다! 나 화났어!”
용이 갑자기 하늘 높이 솟구쳤다. 한결이는 용이 화내는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야 그만해! 그냥 웃은 걸 갖고 뭘 그래?”
대답 대신 용은 더욱 더 높이 날아올랐다. 하늘 저 높이에 손바닥만큼 작게 보이는 용이 크게 울부짖으며 몸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 했다. 용의 입속에서는 차가운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어두운 구름이 몰려들면서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하얀 것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눈이었다. 한 여름에 새하얀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결이는 용이 화가 난 모습 때문에 처음엔 조금 겁이 났지만 하늘에서 아름다운 함박눈이 쏟아지자 그 모습이 너무 예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하! 와! 눈이다 ”
한결이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큰 소리로 웃었다. 한결이의 웃음소리를 들리자 용은 하늘에서 순식간에 내려왔다. 용은 꽤 실망스런 표정을 하고 말했다.
“쳇, 왜 무서워하지 않는 거지? 난 사나운 용이란 말이야. 처음 날 보았을 때처럼 무서워해야 할 거 아냐?”
용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넌 무서운 용이 되고 싶은 거야?”
한결이는 웃는 얼굴로 용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럼! 용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야. 그러니까 용을 보고 사람들이나 다른 동물들은 모두 무서워서 벌벌 떨어야 한단 말이야. 너처럼 용을 보며 웃는 건 정말! 정말! 나쁜 일이야.”
그 말을 듣고 나니 한결이는 용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랬구나. 내가 웃어서 미안해. 하지만, 나는 널 비웃은 게 아니야 그냥 네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웃은 거야.”
하지만, 용은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쳇, 용을 보고 재미있으면 안 돼! 용을 보곤 비명을 지르거나 벌벌 떨어야 한다고.”
“그래서 저번에 하늘을 날 때도 그렇게 험상궂게 노려보는 거야?”
“당연하지 다른 동물이나 요괴들에게 내가 강하다는 걸 보여줘야 하잖아.”
“하지만, 누구도 널 보고 약해빠졌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걸.”
한결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하지 누가 용을 보고 약하다고 하겠어.”
“그래? 그럼 강하면서 재미있으면 안 되는 건가? 그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인상 쓰면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런가? 으으……. 괜히 너 땜에 복잡하게 생각하니까 머리만 아프잖아.”
용은 두 다리로 자기 머리를 감쌌다.
“하하, 미안해”
“또 웃었다! 너 또 웃었어!”
용은 다시 펄쩍 뛰었다.
“알았어. 알았어. 안 웃을게 그런데 넌 이름이 뭐니?”
“난 미르라고 해. 푸른 용 미르.”
“미르……. 멋진 이름인데.”
“그럼 강하고 무서운 용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지.”
“그래 맞아. 하하하!”
이번에는 미르도 화를 내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어느새 그쳤고 먹구름 틈새로 아름다운 금빛 햇살이 비추기 시작 했다. 아름다운 햇살이 미르의 푸른 몸을 비추자 미르의 몸은 무지갯빛으로 빛나기 시작 했다. 그 모습을 보니 푸른 바닷가에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이 생각났다.
‘우와 정말 멋져!’
이렇게 멋진 모습의 용이 오직 한결이 눈에 만 보인다니,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맞다. 영감이 널 빨리 데려오라고 했는데. 너하고 말싸움하는 통에 늦어 버렸잖아.”
미르는 갑자기 생각난 듯이 수염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 할아버지가 나에게 원하는 게 뭐야?”
“가보면 안 다니까 자, 내 등위에 올라타.”
“네 등에 타라고? 정말이야?”
“빨리 타! 시간 없단 말이야.”
‘와! 용을 타고 하늘을 날아본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한결이는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미르의 등에 올라탔다. 미르의 몸은 차갑고 매끄러운 느낌이 났지만 그리 춥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꽉 잡아 출발한다!”
“우와!”
미르와 한결이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한결이는 미르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납작 엎드렸다. 구불구불 하늘을 헤엄쳐 가는 미르 덕분에 한결이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아래에 보이는 집들이 점점 작아져 성냥갑만큼 작아졌다고 생각할 때였다.
“자 조심해! 이제 내려간다!”
그 소리와 함께 미르는 전속력으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결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미르에 등에 착 달라붙었다.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으으…….”
한결이의 뺨은 얼어서 빨갛게 되었다. 한결이가 간신히 눈을 뜨자 어느새 눈앞에 "용 분식집" 기와가 크게 보였다.
“위험해 부딪힌다!”
하지만, 미르는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 급기야 한결이의 눈에 "용 분식집"의 붉고 푸른 기와가 대문짝만하게 보였다.
“엄마야!”
“우당탕! 쾅!”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