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회>
결국, 한결이는 조퇴를 하고 말았다. 찬이와 석우는 처음엔 한결이가 실없이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가 얼굴이 하얗게 되어 울음을 터뜨리는 한결이를 보고 어쩔 줄을 몰랐다. 마음 같아선 한결이와 함께 가고 싶었지만 조퇴하는 한결이의 뒷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교문을 나서는 한결이는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에 열도 났다. 이대로 있다간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예전에 신경을 너무 써서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없을 때 크게 울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졌는데 지금은 계속 울고 있어도 점점 더 불안해 질뿐이었다. 게다가 한결이의 머릿속에는 푸른 빛 용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모습이 계속 떠올랐고 그때마다 한결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용 같은 건 없어. 용은 없어.’
간신히 용기를 내서 올려다본 하늘은 먹구름 때문에 잔뜩 흐려 있어 정말 용이 나타날 것 같은 날씨였지만 다행히 사방을 둘러보아도 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집에 가서 푹 자면 아무 일 없을 거야. 이상한 용 같은 건, 보이지 않을 거야.’
한결이는 마음속으로 계속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옛날에는 마음이 아프거나 화가 나도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괜찮아졌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교문을 나설 때까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교문을 벗어나자마자 나타난 "용 분식집" 간판을 보자 한결이는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다 ”"용 분식집"“ 탓이야! 그 할아버지 탓이야!”
한결이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분식집 문을 향해 달려갔지만 분식집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는지 굵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문 열어! 문 열란 말이야!”
한결이가 분식집 문을 부서져라 흔들어대고 주먹으로 쾅쾅 쳤지만 문이 굳게 잠겨있는 문은 대답이 없었다. 한결이는 또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다. 학교 앞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한결이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힐끗대며 자꾸 쳐다보았다. 그제야 한결이는 토마토처럼 빨개진 얼굴을 한 채 울음을 억지로 그쳤다.
‘뭐야! 사람들이 다 나만 보잖아. 싫어! 날 쳐다보는 저 아줌마도 싫고 아줌마 머리에 달린 이상한 눈도 싫고……. 어? 눈? 왜. 눈이 머리에 달린 거지?’
한결이는 너무 놀라 숨이 막혔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한결이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아주머니의 머리에 커다란 눈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깜빡!”
“엄마야!”
순간 한결이는 너무 놀라 뒷걸음질을 쳤고 그 바람에 “"용 분식집"” 문에 부딪혀 한결이는 다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얘야, 너 왜 그러니? 괜찮니?”
아주머니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결이에게 다가왔다.
“저리 가요! 저리가!”
한결이는 손사래를 치며 커다란 눈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무안한 듯 뒤로 물러섰다.
“알았다. 가면 될 것 아니니.정말 이상한 아이네.”
한결이는 아주머니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때였다. 아주머니에 머리에 있던 커다란 눈이 머리에서 툭 하고 떨어져 내려온 것이다. 한결이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한결이가 처음에 눈이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 커다란 눈에 아메바 같이 촉수가 달려 있는 괴상한 모양의 괴물이었다. 게다가 그 촉수는 합쳐졌다가 다시 나눠지기도 하고 어떨 땐 다리모양처럼 보이다가 손이나 발처럼 변하기도 했다.
‘저, 저건 또 뭐야.’
괴물은 이리저리 제멋대로 모양을 바꾸면서 땅바닥 기거나 걷기도 하고 공처럼 튀어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길을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은 이 이상하게 생긴 괴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상한 괴물 대신 눈물범벅인 한결이를 힐끗 힐끗 바라 볼 뿐이었다.
괴물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지 모양을 길게 엿가락처럼 늘어져서 지나가는 사람 앞을 떡 하니 가로막기도 하고 사람들의 다리에 엉겨 붙다가 다시 떨어지기도 했다. 그 때마다 커다란 눈이 깜박거렸다.
용이며 이상한 눈알 괴물 때문에 한결이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이대로 그냥 있다간 더 무서운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한결이는 이를 곽 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이 이 괴물은 한결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빠져나가면 될 거야. 문제없어. 어?’
그 때 한결이의 눈앞에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눈알 괴물도 아이를 발견했는지 그 길 앞에서 통통 자신의 몸을 튀기기 시작했다.
‘이런 건 정말 싫어. 집에 가고 싶어 .’
한결이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괴물에게 자신이 들키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아서 울음을 꾹 참았다. 다시 힘을 내서 괴물이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씩 발을 움직였지만 떨리는 몸 때문에 쉽게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한결이가 그러고 있는 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점점 이 괴물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몸을 통통 튕기던 괴물도 그에 맞춰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이가 괴물과 한 발자국만큼이나 가까워졌을 때였다. 어느새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괴물이 마치 아가리를 벌리듯 아이를 향해 촉수를 크게 벌렸다.
“안 돼!”
한결이는 모습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순간 아이는 잠시 한결이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괴물을 쑥 통과하며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커다랗게 변한 눈알 괴물은 이제 한결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아이가 나를 봤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갑자기 사방에서 수많은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한결이는 그 소리에 놀라 뒷걸음을 치며 귀를 막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이 아이……. 그냥, 확 잡아먹을까?”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 순간 마치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사방에서 눈알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의 건물들 벽 속에서, 땅 속에서 수 만 마리의 눈알 괴물들이 한결이를 향해 쏟아졌다. 한결이는 고함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우와! 살려줘 제발. 누가 좀 살려 줘!”
한결이는 울고 싶었지만 울 겨를조차 없었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느라 자신이 어디쯤 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골목골목을 헤매며 수많은 괴물들을 피해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괴물들의 숫자는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다.
‘흑흑, 이제 더 이상 못 뛰겠어. 끝장이야.’
다리에 힘이 빠졌다. 숨이 차올라 달리는 속도도 점점 늦어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니 하늘을 가릴 듯 새까맣게 달려오는 눈알 괴물들이 보였다. 그때였다. 무엇인가 커다란 울음소리가 하늘에서부터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위를 쳐다본 한결이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한결이가 달려가는 하늘 쪽에 커다란 푸른 용 한 마리가 입을 떠억 벌리며 한결이에게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결이는 그 모습에 놀라 그만 발을 헛디뎠다. 그러자 몸이 중심을 잃고 그대로 골목길에서 내팽개쳐져서 데굴데굴 굴러버렸다. 한결이는 발목을 삐어서 너무나 아팠지만 지금은 그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뒤에서 알 수 없는 괴물들이 새카맣게 쫓아오고 앞에는 푸른색의 거대한 용이 한결이를 향해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으니까 말이다.
한결이는 이제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훌쩍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
한결이는 덜덜 떨면서 눈을 꼭 감았다. 순간 귀를 찢을 듯 한 용 울음소리와 함께 얼음같이 차가운 냉기가 한결이를 와락 덮쳐왔다.
“꿀꺽!”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