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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그랬다. 스물 일곱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나의 삶은 치열함의 연속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어 치열한 삶을 살고있다면 88년생 김지혜는 미혼의 직장인이자 취업준비생이란 위치에서 나름의 치열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78년생의 나는 김지영과 김지혜의 삶을 바라보며 그들안에서 나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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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젠 편안해지고 싶은 것뿐이에요. 꿈 같은 거, 하고 싶은 거 따위 생각할 필요 없이 남한테 치이지나 말고 하루하루 편안하게 살아 보고 싶어요. 내가 제일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는 말이 뭔 줄 알아요? 치열하다는 말. 치열하게 살라는 말. 치열한 거 지켜워요. 치열하게 살았어요, 나름. 그런데도 이렇다구요. 치열했는데도 이 나이가 되도록 이래요. 그러면 이제 좀 그만 치열해도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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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고민은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거예요. 백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생각할걸요. 외롭다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느냐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괴롭고 끔찍하죠. 그런데 더 끔찍한 거는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사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질문을 외면하죠. 마주하면 괴로운 데다 답도 없고, 의심하고 탐구하는 과정만 있으니까. 산다는 건 결국 존재를 의심하는 끝없는 과정일 뿐이에요.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는 게 얼마나 드물고 고통스러운지 알아가는 과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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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쿨렐레 강좌에서 만난 규옥, 무인, 남은, 그리고 얼떨결에 함께 행동하게 되는 지혜. 그들은 진짜인척 하는 가짜들에게 소심하고 작은 저항을 시작한다.
무례한 김부장에게 쪽지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길거리 예술에 부당한 권위를 내세운 현대작가의 그라피티 위에 다시 자유로운 덧칠하기. 남의 레시피를 훔쳐가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국회의원 망신주기. 시나리오를 훔쳐간 대기업 영화 무대인사에 난입하여 소심한 복수하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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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참 신기해요. 박 교수한테 그러고 나니까 맘속의 체증이 하나 사라지는 거예요. 그냥 밖으로 크게 소리 한번 지른 것뿐인데. 적어도 내가 그 사람에게 내재된 부끄러움을 한 번쯤 되새겨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뒤부터 생각이 많아졌어요.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기만 해도 세상이 조금쯤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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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이 남녀의 성역할에 대해 덤덤하게 현실을 이야기 했다면 이 책은 치열한 이십대를 지나고 서른의 길목에서 부당한 사회를 조금은 바꾸기 위해 소리치는 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세상을 바꿀수 있을거라는 믿음.
그러나 소동이라고밖에 불릴수 없는 그들의 모험은 끝이 났다.
그 끝에 자리잡고 있는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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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주 속의 먼지일지언정 그 먼지도 어딘가에 착륙하는 순간 빛을 발하는 무지개가 될 수도 있다고 가끔씩 생각해본다. 그렇게 하면, 굳이 내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힘주어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된다. 그 생각을 얻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조금 시시한 반전이 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건 언제나 사실이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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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가 윤재와 곤이의 성장소설이었다면 서른의 반격은 서른살 어른이 지혜와 규옥의 성장소설이다. 작은 소동을 통해 바뀐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고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이 세상을 마주하는 방법을 깨닫는 통로였다.
작은 소동으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사이다 반전이 있기를 기대했다면 그들의 반격은 약간은 서글픈 마무리일것이다.
그러나 백만이 촛불을 들고도 세상이 확 바뀌지는 않았고 적폐들이 그대로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듯 하지만 그 백만 촛불들이 각성하고 더 성장하여 결국 사회가 바뀔 것을 믿는 것처럼 서른의 그들이 일으킨 소동은 그들 스스로를 성장시켰고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가짜들을 몰아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연휴 끝에 읽은 서른의 반격.
아직도 반격중인 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늦지 않았다. 나의 행동이 그들을 생각하게 만들테니까. 참으로 위로가 되는 좋은 책 한 권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