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충 사육 준수 사항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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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와 크리처물의 대가 답게 여름을 아주 정확히 겨냥한 소재. 그 덕에 내 여름 휴가도 이 빵충에게 맡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리즈를 재미나게 본 독자로서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했다는 점. 더 새로운 소재가 나올까 싶지만 신기하게도 재미난 이야기는 여전히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기대 할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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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저자의 이야기는 오피스 괴담 이라는 안전가옥의 또 다른 시리즈로 맛본 상태. 단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찍먹은 해 본 독자이니 이번 이야기도 씹어삼킬 맛이 나지 않을까 싶어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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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를 트럼펫에 쏟아부었지만 그게 밥줄이 되진 못한 청년 정한. 무언가 원대한 꿈을 가진게 아니라 할 줄 아는게 없어서 청년 농부로 국가 지원받아 새 삶을 살고싶어한 뭣모르는 샌님. 딸기 재배 실패? 그건 뭐 또 다른 사육으로 공백을 메꾸면 되지 싶어 고른 빵충 사육. 소금빵의 형상을 한 식용 애벌레 사육. 책의 제목이기도 한 빵충 사육 준수 사항. 저자는 제목으로 미리 일러두었다. 사육 준수 사항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어길 시 무엇이 어떻게 될 지는 장담하지 못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허나 주인공은 곧이곧대로 살진 않지. 어딘가 모를 꼼수를, 남들보다 더 쉬운 길을 가고자 하지 않아야 될 곳을 밟게된다. 그 선을 넘을 때 오는 짜릿함? 은 죽고 사느냐의 고단함까지 가져온다는걸 매번 겪어봐야 안다는 걸 마주하게된다. 역시나 이 세상은 사람이 제일 어리석고, 돈이든 욕심이든 눈먼 놈이 제일 무섭고 빨리 죽는다는걸 또 한번 실감하며 정한을 따라다니게 만든다.


📖P191_ 위험은 언제나 매뉴얼로 만들어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안전한 범주에 모든 것을 가두고는 스스로 안도한다. 우리가 길들이지 못할 것은 없다는 환상, 우리가 만든 것은 반드시 우리편일 것이라는 기만, 그리고 그 모든 착각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무너지는 순간을 나는 보고 말았다.

다 안다고 생각 했지만 완벽한 건 없었다. 정한이 오래 사귀었던 유진에게 미래를 확신 할 수 없었던 것 처럼, 청소년기를 트럼펫에게 모두 맡겼고 트럼펫도 정한의 일생을 맡아줄거라 했지만 그가 손을 떼는 순간부터 모든건 개별적인 카테고리의 항목이었던 것. 타바콬의 일원이라 생각했지만 그놈의 대마가 아니었다면 같이 손 잡고 갈 이유가 없었던 그들과 정한. 청년 농부로서 새로 온 이방인이지만 같은 땅을 밟고 살기에 한 마을의 이웃이 될 거라 기대하는 착각이 더욱 이방인스러웠던 시작. 빵충으로 인해 이른바 와인패밀리로도 함께 운명 공동체를 이루지만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숨길 건 숨기게되는 동상이몽의 조합. 언제나 완벽한 믿음은 없다. 이 과정은 상황을 달리하여 찾아오지만 결론만은 동일했다. 각자도생.


📖P208_ 위험성이 이미 확인되었는데도 돈 벌어서 빚 갚고 싶으면, 제대로 살고 싶으면, 그냥 모른 척하고 일하라는 그 말이 마치 자기들의 잘못은 하나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모든 부담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들렸다.

거저 주는 사람의 선의는 매번 의심하게된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을테니까. 그래서 나 또한 저런 청년 농부 창업지원이 이상했다. 진짜 농업이라곤 1도 모르는 이들을 모아두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고 지원해준다? 세상을 못미덥게 살아와서 그런지 몰라도 이 시작부터가 의심이었고 불안으로 바라보게했다. 없던 것을 새로 내어 놓으며 그 불안함까지 잠식 시켜 성공을 보장한다는 것. 정부가 아무리 미래 식량으로 사육 사업을 보장한다 했으나 그게 왜 하필 이 조합인가 하며 계속 물음표를 갖게 했다. 설마는 역시를 낳았다. 탐욕은 볼온한 현실을 훨씬 당겨두었고 그 틈새 마다 각각의 인물들이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던 이유를 변명처럼 담아놓았다. 혹, 저자는 이런 생각을 제일 상위에 올려두고 적은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벌레같은 인간이 벌레이지만 아닌척 하는 음식을 만들어 팔아제끼는 세상. 그러니까 벌레가 판을 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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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데, 또 그렇다고 낯설지는 않았다. 소설같은 인생, 영화같은 세상이 아니라 정말 사람 사는 세상에 크리처물 한방울 떨어뜨려놓은 느낌이었다. 모두가 합의한 사항을 개인의 이득을 위해 거리낌없이 불이행 하는 면, 자신을 기준으로하여 사람을 줄세우기하여 어떤 이는 낮춰보거나 함부로 해도 된다고 인식하며 하대하는 점은 지금 문 밖에서 모든걸 먹어치우는 빵충이나 자신을 제외하곤 모든걸 나몰라라 하며 규율을 어기는 인간들이나 외형만 다를 뿐 그게 그거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48시간 이전을 알리는 문장부터 살짝 김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한 청년의 인생 굴곡사? 청년 농부의 눈물나는 농업일지? 대마도 키워보고 딸기도 키워보고 빵충도 키워봤지만 다 헛수고다? 생육하는 것들의 잘못은 다 내탓이요, 사람이 저리 삐뚤어지는 건 누굴 탓하리오? 모든 것들의 사육에는 준수사항을 지킬 것. 인간도 예외없음을 명시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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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이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9
장강명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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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저자의 이야기이기도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했다. 소설은 이지수를 중심으로 흘러가지만 촘촘한 시간을 풀어내는 것은 안시찬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사흘간의 이야기를 다루고있다. 사흘간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이 20여년간 살아온 부부라는 관계성과 각각의 개인적인 성향, 주변 가족을 대하는 태도, 삶을 대하는 방식은 그 일이 벌어진다 한들 갑작스럽게 변하진 않았다. 지수와 시찬의 시간이 어그러진다 한들 사회속에서 수행해오던 각자의 역할과 약속들은 여전히 이행되어야했다. 익숙했던 세상이 무너졌으나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해야하는 것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세상은 이렇게 변해버렸는데 그게 뭔 대수냐 싶은 타인들의 시간. 소설은 사흘이지만 저자가 남겨둔 글에는 이후의 시간을 독자가 가늠하도록 만들었다. 희망적이든 비관적이든 이어질 내용은 그렇게 독자에게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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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의 카드 문구가 사람을 잡아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무너지는 동안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서성이는 한 남자의 3일.

그리고, 책 표지는 동이 트기 전 같은 짙은 푸름과 진한 고요를 보인다. 아무도 없는 곳에 놓여진 섬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남자의 뒷모습.


이 책을 도착한 그날 밤 반절을 읽었고, 다음날 사무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시찬과 지수의 시간을 먹어 삼켰다. 외면 할 수 없는 글이었다. 나도 그리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삶이니까. 삶이란 매번 뒷통수를 후려치고 도망쳐 버리는 것이 태반이니까. 그래서 읽던 책들을 모조리 외면하고 읽어내었다. 편집장의 소개글을 보며 이러다 눈물 광광 쏟아내며 책장 넘기고 있는거 아닌가 걱정했지만 눈물이 안 났다. 시찬이 우는 만큼 나 또한 시찬에게 이입되어 감정을 꾹꾹 눌러도 넘칠거라 생각했는데 미간에 힘만 들어가고, 어금니만 더 세게 깨물게했다. 울어봤자 소용없어의 마음도, 운다고 달라질게 없다는 마음도 아니다. 시찬에게 헛된 기대보다 확실한 팩트 전달과 이후의 방향성을 먼저 제시해주고싶었다. 감성에 젖어드는건 시찬의 몫이고, 나는 그가 덜 헤매도록 확실한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고픈 마음이 컸다. 지수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아내기도 벅찰테니 다른데에 신경쓰고 마음쓰는 일을 덜어주고픈 것이 내 감정을 꽉 움켜쥐게 했다. 굳이 나의 눈물까지 보태지 않겠노라 싶은 생각으로 사흘을 같이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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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글의 안시찬은 장강명이기도 했고, 또 장강명이 아니기도 했다. 아내가 아픈것은 맞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각각의 요소들이 재편되었고 일부의 이야기는 좀 더 극대화되어 예민한 구석을 만들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비슷한 감정과 비슷한 슬픔이 서려있는 것은 동일해보였다. 그렇게 시찬은 지수의 곁에서 '서성이다' 와 머물기를 반복 할 것이다.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을 때 믿을 구석을 찾기보단 내가 의지되어야하는 버팀목의 주체가 되어야함을 자각한다.(서로의 보호자인 부부 둘, 양가 부모님과 형제들은 한 다리 건너의 가족, 업무와 이해관계로 얽힌 이들은 더 먼 방관자의 존재이니 바짓가랑이 잡으며 징징거릴 여력이 없다) 더욱 예민해지고 무감한 상태로 타인들을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몇몇 보인다. 그건 시찬의 성향이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지키고자 하는 의지이기도하다. 그러다 수술실을 들어가기 전 인사를 할 때 터져버리는 눈물샘과 꺼이꺼이 울게되는 서러움. 하루 전만 해도 깔깔거리고 쫑알거리던 사람이 남편의 이름을 헷갈리고 날짜의 개념도 모호해지며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걸 볼 때 오는 두려움. 시찬이 유난스럽거나 변덕스러운 감정을 갖고 있는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보호자로서의 단단함과 물러터져버리는 슬픔이 공존함을 단 시간 내에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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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결혼 할 때에 아내를 마뜩잖아하던 어머니에게까지 전화하며 위로를 기대했고, 어디있는지 모를 신에게 기대는 마음은 간곡함만 가득할 뿐이다. 누군가에겐 찰나의 시간이겠지만 시찬에게는 억겁의 슬픔이 밀려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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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살다가 이따금 그간의 세월을 톺아보며 지수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당장의 처리해야하는 행정 업무까지도 모조리 그녀에게 맡기고 자신은 편하게 살아왔던 무관함에 자책하며 아내 없이 살 수 없는 껍데기 인간임을 받아들인다. 자책이라도 해야 지금의 불안함을 덮을 수 있을 듯한 상태. 자신을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생각하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환자의 가장 최측근이자 제1보호자로서의 다면화된 감정의 상태임을 느끼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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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병원에 누워만 있는데, 자신은 잠을 자야했고, 예정된 스케줄에 맞춰 일상을 살아야했으며, 뜨거운 커피로 정신차리려는 행태. 아픈데도 몸이 이상한데도 토한 이불을 치우려 했던 그녀는 왜 도와달라 하지 않았는지를 매 순간마다 떠올리며 시찬은 자신을 찔러댄다. 이건 상대를 못 믿어서가 아님을 안다. 괜한 걱정을 끼칠까봐 미안한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 괜한 수고로움을 하지 않고 평안하길 바라는 관계에서 이뤄진 것들이겠다. 그래서 지수의 행동이 이해되고, 시찬의 자책도 공감을 한다. 두 경우를 모두 겪어낸 나도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군가의 유일한 보호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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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틀, 사흘. 그 뒤의 이야기는 없다. 그간 지수는 병명이 정해졌고, 수술을 했다. 이후의 경과와 호전의 정도는 기록되어있지 않다. 당장 코 앞으로 닥쳐온 집 매매와 대출건에 대한 진행 과정도 기록되어있지 않다. 전전긍긍했다. 시찬과 같은 상황을 겪어본 이가 있는지 SNS에 문의를 했지만 담당자에게 어떠한 준비가 필요한지는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그 사흘이 한 주가 끝나는 주말과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 끼여있는 평범한 시간의 일부였다. 누군가에겐 일상을 정리하고 회복 후 다시 시작될 한 주를 기대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내일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에 사로잡힌 시간임을 비교하게 만들었다. 시찬을 계속 현실로 끌고 와 병동에 머무르게했고, 텅빈 집 그녀의 이불과 헤진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장면에서 일시정지하게했다. 나는 시찬도, 지수의 동생도 아닌데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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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오토픽션이 무서운거구나, 이러니 SF소설보다 더 아득하게 만들구나를 느낀다.

나는 남편에게 시찬이 느낄 감정을 워낙 많이 안겨준 사람이라 미리 백기들고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모든 감정을 감내하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살면서 119에 신고할 일도, 구급차를 탈 일도, 새벽 응급실로 급히 차를 몰게 될 일도, 장모에게 보호자로서 병실에 있도록 부탁하며 자신은 다시 일터로 가야하는 일이 몇이나 있겠는가. 30년 넘게 드라마에서 있을거라 여기던 일을 10여년의 시간동안 나의 남편으로 살면서 다각도로 경험하게 했던 이력은 시찬에게 들켜버린 나의 10년과도 닮아있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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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한번 맛본 경험치라 다음번엔 의연하게 대처할 거라는 기대를 해선 안된다. 삶은 매번 뒷통수를 맞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또 새로운 억겁의 슬픔으로 미리보기한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삶의 굴곡이기도했다. 삶은 드라마라 했으니까 드라마틱한 극복을 기대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맑은 결말은 없어 더 서글퍼진다.

안 믿던 신을 믿고, 기대 않던 행운을 바라는 것, 그간 그리 살지 않았으니 적어도 한번은 와주어야하는거 아닌가 하는 성질도 내어보며 완벽한 이전의 삶으로 되감기는 안 될 지언정 '괜찮아지고있어'라는 말과 희미한 미소라도 보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이라 책 표지를 보며 일렁이는 마음을 눌러본다. 지수 곁을 '서성이다' 결국에는 '마주보다' 웃어주고 울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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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습기 다이어트 ㅣ 위픽
김청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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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한 소재, 가벼운 길이감, 단숨에 읽어 낸다 하더라도 생각마저 짤막하게 쳐내지 못하게 만드는 문장의 잔상. 그게 제습기 다이어트가 만들어낸 버석함이라 할 수 있겠다. 감상의 습기를 다 빨아먹어버린다 하더라도 건조하고 바스라지게 만들어둔 이 씁쓸한 감정. 손에 뭍어난 이 아쉬운 가루들을 탈탈 털어버리고 싶어도 주름 틈 사이로 끼어버린 감정. 실제로 저자와 어머니가 나눈 문장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였다.

엄마가 주인공 방에 제습기를 틀며 "우리 딸 미라 되면 어떻게 해!"라는 이 농담. 소설은 웃자고 흘린 이야기 한마디가 죽자고 달려드는 세상을 향한 뾰족한 마음이라 말 하고 싶어진다.

연예인보다 마른 그의 몸을 보고 주변에서 너도 나도 예쁘다며 칭찬하지만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미라의 선아를 걱정하진 않는다. 시기와 선망과 함께 푹푹 찔러대는 독설들. 이전의 선아에겐 건강을 우려한 걱정인척 비하를 했고, 현재의 선아에겐 미라 상태의 모습을 사육장 안의 동물들 처럼 눈요깃거리로 하대를 한다. 그들은 어떠한 모습이길 바라길래 비아냥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걸까. 예쁜 몸을 향한 사회의 그릇된 인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에선 타인의 기준을 벗어나 스스로 존중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리 하는 사람은 몇 없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사람이라 한숨쉬며 문장을 따라가게했다. 선아에게 이입이되어 그녀를 바라보는 수십개의 눈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까지 물고 뜯어댈지 모르는 눈동자들이 식인물고기가 가득한 바닷가에 빠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뚱뚱해본 사람이든 삐쩍 말라본 사람이든 이 세상 살아가면서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요구한적 없는 타인의 시선. 예나 지금이나 변할 일은 없어보이는 과한 오지랖이며 수요없는 공급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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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서, 친척에게서, 대학 동기들에게, 나중엔 놀이터의 이름모를 인간에게까지 얻게되는 수치와 모욕의 더블펀치.

지난번엔 곧 터지는게 아닐까 싶어하며 살집있는 외형에 입을 대던 친척은 이제는 미라 상태의 외형을 보더니 수상한 약을 먹은게 아닌지 도통 좋은 쪽으로 봐 줄 생각은 없어보이는 시선과 입에 달려있는 시비.

마른 몸을 갈망하는 시대는 어쩌다 이런 상상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나 싶은데, 이건 사람들이 얽혀 사는 세상에선 절대 없어지지 않을 듯한 아름다움을 향한 등급 나누기로 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단박에 마른 몸,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심장이 뛰는지도 온 몸에 물기가 스미는지도 관심 없는 사람들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는 틔워낼 숨구멍이 필요했고 그걸 눈앞에 보이던 라일락 향기와 씨앗, 묘목으로 자신을 투영한다.

자신은 미라가 아니라 잠자고 있는 씨앗이자 묘목. 오래된 씨앗은 물기가 없어 바싹 말라 살아있는지 당담 할 수 없지만 그 씨앗은 결국 싹을 틔웠으니 자신도 언젠가는 수분을 당겨와 조금씩 틔워낼 무언가의 과정 중 하나 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된다. 봄비를 맞고 싱그럽게 잎사귀를 반짝이는 것들 처럼 만물의 모든 이로운 것들만 흡수하며 향기와 온기를 지닐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선아의 진짜 봄은 지금부터라는 식으로 급히 문장을 마무리하며 꽉 닫힌 결말로 후다닥 끝맺었다.


타인이 자신을 향해 불만족한 시선을 내리 깔더라도 자신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겠다 한들 타인이 한번 꽂아놓은 잣대는 도무지 뽑힐 생각이 없고 도리어 쑤셔되는 통에 우리는 마음이 휩쓸리고 아무도 못 보도록 구석으로 웅크리며 숨게된다. 그게 어쩌면 바싹 말라버린 씨앗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돌멩이인지 씨앗인지는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을테고 시선을 맞추고 예쁜 말과 다정한 손길이 간다면 마음의 문을 열듯 숨구멍을 벌려 물을 먹고 세상으로 기지개를 켜는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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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씨앗이라 보았고, 타인은 나를 돌멩이로 보겠지.

나는 살이 찌든 바싹 마르든 선아였고, 타인은 나를 돼지 아니면 미라로 보는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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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라일락 나무를 끌어안고 비를 흠뻑 맞는 선아처럼 살라고 그리하면 살게 될 거라 말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걸 숨쉬는 동안 매우 뼈져리게 느끼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 위로가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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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오니시모, 나폴리 ㅣ 위픽
정대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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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해보지 않던 짓, 어찌 될지 모르는 미친 짓을 저지르는 기분이었다.'는 작품 속 문장이자 후반부에 나오는 작가 인터뷰에서 볼 수 있는 한 마디.

한순간의 선택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 결정적인 순간들로 인해 삶의 방향성과 세상을 마주하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이야기 속 선화와 한의 시간을 빌어 알 수 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낯선 곳에서 이야기가 통하고 마음이 간다고 한들 그 전개와 엔딩이 꼭 사랑이 아니어도 괜찮고, 이후의 재회 또한 사랑하지 않았던 순간을 후회하는 방향으로 쓰여지지 않아도 소설 한 권이 만들어 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잠깐씩 주저하던 그들의 대화와 생각들. 주저했기에, 고민하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말하는 얄풋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기에 중년의 선화와 한은 산뜻한 인사를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각자의 시절에 잠깐 스쳐갔던 인연이며, 그때의 서로를 응원했고 시간을 공유했던 것 만으로 만나지 못했고 기억속에만 실존하던 인물들의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내고 있겠지, 꿈은 이뤘겠지 라는 식의 짐작. 결국엔 만났고 그 때를 회상 할 수 있고 현재의 서로를 더욱 응원 할 수 있는 멋진 어른으로서의 순간. 꽤 괜찮은 어른의 삶이며 제법 그럴듯한 어른의 인연이지 않을까.


📖웃는 한의 얼굴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우리는 왜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지만 겨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구는 것인지.

한의 시간들을 보면 20대 후반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후 나폴리로 떠나게 된 고달팠을 순간이 쌓여있다. 피자이올로(피자 장인)이 되려는 이유도 뭘 대단하게 살고자하는 욕망이 서려있는게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만 살아볼 이유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이었다. 낯섬이 주는 불안함도 있겠지만 나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평온함. 타인의 시선이 자신을 더욱 쪼그라들게 했던 시절을 짐작해보며 자신을 옭아메는건 스스로의 욕심보다 타인이 자신을 훑고 지나가는 시선이 아니었을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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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안식을 찾은 후 6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둘이 아닌 넷의 조합. 한은 그 꿈을 이뤘고, 선화 또한 자신의 평온을 닦아가고 있었다. 각자의 배우자에게 그 시절을 숨기기보다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이유. 악수와 담백한 작별 인사 덕에 6년의 시간이 지나도 다시 이을 수 있는 인연의 과정이라 여겨졌다. 선화가 완벽하게 느껴진다던 행복한 감정, 한이 만드는 마르게리타 피자를 베어 물 때 닿았던 그 마음. 남자 대 여자로 사랑하는게 아니라 삶의 동료로서 같이 고난하고 마음썼던 낯선 곳의 응원 덕분이었다 여겨본다. 시간이 지나고 각자의 기억속에 흐릿하고 때론 미화되더라도 그건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자랑스러운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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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
박상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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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인터뷰 속 어떤것으로도 대체 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긴 서사라 일러주더니 진짜 대체할만한 거리가 없었다. 너무도 특별해서 흔하게 볼 수 없는 긴 호흡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여기 모든 인물들은 하나같이 망한 사랑 이야기로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누구 하나 부러움이 없도록 다들 완벽하게 망했고, 완벽하게 서로를 무너뜨린 사랑의 실패작 집단이다.

사치코의 사망. 하나의 유일한 혈육인 엄마는 의문사 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가 숨겨두었던 젊었던 여인의 이야기.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와 일본에서 숨죽이고 살수 밖에 없던 이유. 사치코의 딸 하나는 엄마의 가엾은 죽음과 자신이 알지 못했던 그녀의 세상을 되찾아 주고 싶어 한국으로 넘어온다. 유언이라 해봤자 엄마의 한 마디 였던 윤동주 찾기. 그자를 찾다보니 얼굴도 모르던 하나의 부친에 대한 존재까지 찾게된다. 한국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말렸던 이유, 엄마가 그토록 숨죽여 살던 이유, 아빠의 존재, 할아버지의 성씨를 따라갈 수 밖에 없던 하나의 출생의 이유. 송행자로 살 수도 마츠노 사치코로도 떳떳할 수 없던 그간의 삶을 유언 속 이름 윤동주와 엮여있었다. 사진으로 뒤늦게 알게된 미스 세일이자 세일가의 대접받지 못하는 가족이 되는 과정을 하나와 준호의 취재를 통해 그 대단한 집안싸움을 들여다본다.


출판사 홍보물엔 이 사랑이 곡진하다고 알렸다. 지극했다. 그녀의 생이 안타까웠고, 그걸 이용당하는 모습이 아쉬웠으나 결국 그녀자 자처한 일이었고, 수긍하던 방향들이었다. 불구덩이로 들어가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그 대단한 세일가의 싸움터였지만 같이 들어갔고, 뭐라도 손에 쥐고 빠져나올 구실을 마련해주는 것 또한 윤동주가 함께했다. 사람의 마음을 이용을 하는 윤동주는 죄책감이라는 프레임을 떠안으며 더욱 사치코를 곁에 두었다. 사치코 또한 원하지 않는 장소에 가더라도, 원하지 않는 연을 맺는다 하더라도 감내했다. 그덕에 가난을 덮을 수 있었다. 어쩌면 도망치지 않은 가장 큰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호색에 미쳐있는 인간에게 가는 것도 눈 감을 수 있는 건 다시 자신을 끄집어 내어 줄 수 있을거라는 단단한 믿음으로 보였다. 이건 박상영표 또 다른 사랑이고 믿음의 이유였다. 가난에서 끄집어 내었고, 외면하지 않았던 것이 믿고싶은 이유였을것이라 보였다. 자이니치 여성이라는 한계점과 가정사는 절실해야만 하는 삶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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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마츠노 하나가 자신과 닮아있음에 더욱 애틋해 했다. 대접받지 못하는 삶. 고생을 하지만 그 수고로움을 고마워 하지 않는 주변인물들. 마음써주는 사람이 없다는 서러움. 수완이 좋은 사람에겐 노력이 가상한지 수족처럼 따르는 인물이 존재한다. 그게 사치코였고, 석형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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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든 일일드라마든 외로운 재벌가의 세력싸움은 어디든 존재했다. 사업 확장에만 눈이 뒤집힌 부친. 망나니짓하며 일 벌리기만 좋아하는 머리 텅빈 놈과 명석하더라도 어딘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배다른 형제 조합. 역사책 속 왕이 부활이라도 한듯 본처 후처 두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는 부친에게서 딸자식을 향한 애정은 기대해선 안되며, 잘난 놈으로 살아도 그의 성에 찰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러니 더욱 눈에 힘을 줘가며 청사진을 그리고 비어진 퍼즐을 끼워 맞추는 데에만 열을 올리게되는 사람. 아무리 짓밟아봐라, 더 두꺼운 줄기를 뻗어서 나뭇가지보다 더 단단하고 빡빡하게 뻗어 가리라는 욕망이 윤동주를 키웠고, 사치코는 그 조력자로서 윤동주가 하지 못하는 한끗을 더했다. 어디서 본듯한 스토리. 그건 한국 현대사에서 심심찮게 나오던 재벌가가 숨기고 싶어하던 집구석 대하소설이 이 소설과 맞물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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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죽음을 알고 싶었는데 한 기업의 역사를 헤짚는 꼴이 되었고, 한 사람의 욕망과 검은 돈의 흐름까지 알게된다. 숨어 있는게 익숙한 인물에서 알려지지 않은 대기업의 사생아로서의 재산 승계로의 전개. 파면 팔수록 더 더러운 돈이었고, 긁어 내면 낼 수록 부스럼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오고 있었다. 자랑스러울 것 하나 없는 돈의 출처였으니 여러모로 하나가 모르도록 하고싶었던 그나마 제일 멀쩡해 보이는 모정일지도 모르겠다.

의문스러운 엄마의 죽음에 대한 배후 찾기에서 시작되었다가 하나가 모르던 엄마의 시절을 찾았고, 제일 더럽고 역겨운 대기업의 집안싸움과 돈이면 다 되는 그 시절의 기업간 정치싸움 르포 버전으로 이야기는 엮여나간다. 결국엔 선한 것이 이긴다는 듯, 모든이들은 죽음으로 악행이 끝난다.

동주가 바라던 목표, 하나가 얻게된 것들, 인생을 걸어봐도 좋을 권력. 그게 환상임을 알게되는 허한 마음. 멀리서 볼 때엔 반짝이고 화려하던 그 왕관이 자신의 머리 위로 옮겨 졌을 때엔 지푸라기로 밖에 보이지 않던 버석한 빛깔에 대한 회한까지. 가지지 못할 때엔 화려해보이고, 정작 손에 쥐었을 때엔 허무하기 그지없는 그것. 삶의 전부를 받쳐가며 손에 쥐려했던 이의 끝. 결국 이게 가장 최선의 방향이라고 봐야겠다 싶지만 나쁜 사람들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들에겐 상을 내리는 전래동화의 국룰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게 김이 빠지는 느낌이지만 이 엔딩이라 다행이니 이런 딴지도 걸 수 있으리라 본다. 하나한테는 아무런 죄가 없잖아, 그러니 얘 만은 건드리지 말아야지 싶은 주인공 지키기로 가쁜 숨 몰아쉬 듯 헉헉대며 달려가는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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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많은 이야기를 내어둔 저자의 이력에 비해 제대로 읽은건 이게 처음인 독자. 그렇게 유명하고 방송까지 하던 '대도시의 사랑법'마저도 안 본 쌩눈의 독자가 처음 마주한게 이 작품,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였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에게는 구원이었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는 것. 그 둘이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가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아왔다. 윤동주는 철저히 계획적인 사람이지만 철저히 감성적인 사람이기도 헀다. 기회를 주지만 그 기회가 옳지 못하는 방향이니 미안해하기도하고, 어떻게든 자신을 위해 사는 인생에 대한 보상을 하려 약속하는 사람. 목표가 있다면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든 손에 쥐려는 사람. 제일 싫어하던 부친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 전형적인 그시대 기업가의 마인드. 그럼에도 일말의 사람다움은 자기 사람에게만 보이는 철저하게 편가르기에 능한 사람.

많은 갈래의 사랑이 있지만 갈등이 많고 고난이 많아야 더욱 맛이 사는 법. 그리고 남녀의 조합으로 단정짓지 않는 박상영 만의 문장으로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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