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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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데?"
"응?"
"잃는 건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돼?"
"나, 나도... ... 나도 지금 같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집에 일찍 와야 하니까 친구들도 잘 못 만날 거고. 회식이나 야근도 편하게 못할 거고. 일하고 와서도 또 집안일 도우려면 피곤할 거고. 그리고 그, 너랑 우리 애랑, 가장으로서... ... 그래, 부양! 부양하려면 책임감도 엄청 클 거고."


돈을 많이 버는 일도, 세상에 큰 목소리를 내는 일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뭔가를 만들어 내는 일도 아니었지만 김지영 씨에게는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주어진 일을 해내고 진급한ㄴ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고, 내 수입으로 내 생활을 책임진다는 것이 보람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끝났다. 김지영 씨가 능력이 없거나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여유가 있으면 취미 생활을 하고, 여유가 없으면 내 애든 남의 애든 가르치라는 건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관심사와 재능까지 제한받는 기분이었다. 설렘은 잦아들고 무기력이 찾아왔다.


"당신 수준에 그게 뭐가 재밌니? 유치하기만 하지."
"재밌어.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밖에 없거든."

자꾸만 김지영 씨가 진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들, 그리고 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쓰는 내내 김지영 씨가 너무 답답하고 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랐고, 그렇게 살았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늘 신중하고 정직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김지영 씨에게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집도 내가 하자고 했고, 아파트도 내가 샀어.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잘 큰 거고. 당신 인생 이 정도면 성공한 건 맞는데, 그거 다 당신 공 아니니까 나랑 애들한테 잘하셔. 술 냄새 나니까 오늘은 거실에서 자고."
"그럼, 그럼! 절반은 당신 공이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오미숙 여사님!"
"절반 좋아하네. 못해도 7대 3이거든? 내가 7, 당신이 3."


김지영은 어처구니없고 부당한 상황에서 거의 대부분 입을 닫아 버린다. 그때마다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김지영은 집, 학교, 거리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여성혐오'라고 명명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여성혐오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행위가, 나아가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얼마나 숱한 위험에 처할수 있는지를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이러했고, 88년생 나도 이러한 수순을 밟는 것 같다.
별반 다르지 않았다. 꿈이 있었으나 꿈을 따라 갈 수도 없었다. 돈에 맞춰 학교를 갔고, 돈이 필요해서 닥치는대로 이력서를 쑤셔 넣었고.
그리고.. 지금 돈에 맞춰진 삶을 살고 있다.
20대를 반납하듯 일하고, 번 돈으로 결혼을 했다. 결혼 3년차. 아직도 시부모님들은 아이가 왜 생기지 않느냐고 한다.
그렇다고 당신 아들의 문제가 아닌 당신 며느리의 하자+결함 여부로 입을 모아간다.
당신들이 보태주지도, 당신들이 키워주지도 않을 손주를 위해서. 이왕이면 대를 이을 아들이길 바라는 맘으로 말을 이어간다.
부서에서 유일한 여직원이지만, 나는 남자직원에 비해 1년 늦게 승진을 했고, 능력이 좋다고 이야길 하지만 정작 주요 업무를 주진 않는다.
내가 그 업무까지 맡으면 피곤해질 것이라 한다. 피곤한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인데.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언니의 삶도 투영되었다. 이른바 경단녀.
대학 졸업 전부터 일을 하고, 결혼 코앞까지 일을하다 결혼 후 타지에서 아이를 키우느라 그렇게 사랑하던 교사라는 직업을 놓고 살고있다.
나도 자녀를 갖게 되면 82년생 김지영씨와 84년생 언니와 같은 패턴의 삶이 이어지겠지.

내 돈 벌어 내가 즐기고 내가 누리는 삶이 없어질테고, '나'라는 주체가 사라지겠지.
현실적이고 공감이가고 부정할수 없어 분노하듯 읽었고.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꼭 읽어야 될 만한 책.
현실에서 끝이나고, 해결책이 없어 허망한 결말. 나에겐 이 책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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