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고 적었다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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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클립도 보지 않고 냉큼 주문했고, 내가 생각했던 에세이와는 조금 달라 당황하기도했다. 많은 독자들이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은 이번 산문집. 그간 출간된 작품들보다 더욱 더디게 읽혀졌던 에세이. 익숙한 일상이야기와 함께 문인으로서의 삶을 살며 글을 적어야하는 순간들. 과거 축사나 다른 간행물에 기고했던 문장을 옮겨두었다. 총 3부작으로 나누어 저자가 바라보는 시선들을 모아두었는데 수상소감이나 인연이 닿아있던 곳에 축사를 옮겨둔 것 보다 '1부 사람의 얼굴'로 모아둔 글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공감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나는 작가로서의 삶도, 축사를 하는 일도 없어 2부와 3부로 얻는 공감은 확실히 적었다.

하나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딸이자 노부모의 보호자, 자신의 일을 하고있는 사회인,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챙겨야하는 세대주로서 다방면으로 살펴야하고 계속 주시해야하는 역할이 많은 사람의 순간들이 기록되어있다. 결국 저자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이야기꾼으로 불려지기 전에 나를 키워준 가정을 살피고 내가 꾸려둔 가정을 돌봐야하는 1인 다역의 사람이 느끼는 고단함이 더욱 진하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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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창작자로서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의 활용과 인간으로서 모든걸 수용 할 것인가에 대한 단상은 나의 편협한 시각을 넘어선 문인으로서의 소견을 얻을 수 있어 유익하게 여겨졌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을 겪어낸 세대이자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긴 애도의 과정을 거쳐 여전히 각자의 마음속에 그들을 묻어둔 사람으로서의 심상까지. 같은 현상을 마주함에 있어 내가 느끼고 받아 삼켰던 것과 살피고 이해하려 애쓰는 저자의 생각을 얻어가는 과정.

저자의 소설만큼 저자의 에세이는 단순히 글을 읽어삼키는 것을 넘어 곱씹어보고 이따금씩 꺼내어 나도 그리 써먹어보고 싶어지게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다만, 후반부의 축사보다 저자의 사사로웠던 일상이 더 특별하게 읽혔던 것 뿐임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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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보는 인간다움의 형태가 바뀌는 겁니다. 죄책감. 그것도 사랑의 방식입니다. 죄책감은 때때로 '살아있는 자'가 '사라져가는 자'를 품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에요. 인간의 존엄은 말할 수 있을 때, 움직일 수 있을 때, 일 할 수 있을 때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나를 아껴서 슬퍼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시간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김새가 제각각이듯 사랑의 형태 또한 다를 것이다. 기억하고 슬퍼하고 애틋해하는 마음. 존재는 없어지더라도 그 마음은 여전히 머물고 있음을 나도 알고 너도 안다면 그 대상이 무정형(無定形)의 것이라 한들 여전한 마음인 것이다. 내 손을 잡아주던 사람, 내가 손을 잡아주어야 했던 사람,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이라 한들 변형되어질뿐 변질되지 않는 다는 것 확실하다 단언하고 싶어진다.


고단하지않은 삶이 어디 있겠냐만 유독 아버지에 대해서는 측은함과 애잔함이 깊게 드리워진다. 딸자식보다 배움의 깊이도 얇고 하고자 했던 꿈의 높이도 낮은 사람. 그럼에도 모든걸 굽히고 한참을 숙인 채 저자세로 세상에게 맞춰주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처럼 저자에겐 전집들 사이 비어버린 책들처럼 허전한 구석을 만들어 놓았다. 당연하진 않겠다만 그렇다고 빈자리를 미리 예상하며 사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저자는 전집 속 비어버린 그 좁은 틈새 처럼 삶의 순간마다 구석구석 작은 공간에서 아버지를 그리워 할 것이고 또 그 만큼 애틋함을 밀어넣을 듯 하다. 애 썼다고 잘 가시라고 잘 쉬라고 하지만 또 한 켠으로는 잠깐 들렸다 가라며 그리움으로 당신을 당겨와 내 옆자리에 두고 싶은 그러한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움의 구멍, 상실의 틈, 애틋함의 빈자리. 평안을 바라는 그리움. 모순된 마음인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감정으로 여기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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