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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익숙한 단어들이 많았다. 김해, 물류센터, 외국인노동자, 가야 고분군.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명칭과 그 곳을 나타내는 단어들. 그 익숙함에 젖어들어 더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친근한 단어와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있나보다. 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누운 배'의 경우는 조선업 종사자인 나의 시선을 붙들어 놓더니, 이번 31회 당선작 또한 실거주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책을 읽으면서도 문장속에 녹아있던 공간이 눈 앞에 그려져 더 빨리 몰입하게했고, 더 깊이 집중하게 만들었다.
경남 김해에 있는 물류센터와 고대 가야 고분군을 배경으로 현대와 과거를 한 공간에 배치시켜두었다. 그리고 잠을 잊고 살아야 돈이 되는 노동자와 잠을 자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의 자동화 시스템. 거기에 손발이 붙들린 노동자들. 결국 잠과 감정이 소실되고 사는 의미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면서 인간또한 스마트 물류센터의 시스템 일부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목도하며 이게 옳은 것인지 매 문장마다 자문하게 만든다. 기업과 고용의 측면에서는 효율과 이윤 추구에 목적을 두는 것, 근로자의 측면에서는 자신을 자동화 시스템에 얹어두며 모든 작업과정과 업무시간이 수익으로 환산되는 당연한 노동의 원칙을 일러둔다. 근로자의 입장에선 더 많은 부를 필요로 한다면 잠을 줄여야했고 먹는 시간도 아깝게 여기며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아낌없이 내어드리겠다는 생각에만 몰두하고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국적에 구분을 두는 이유는 빨리 돈을 모아 자국으로 갈 생각뿐인 이들을 한발짝 떨어진 채로 삶의 패턴과 타국의 주거환경까지 주시하게 만든다.
예전엔 분명 기계화 시대라 했고, 어느 시점부터는 자동화 시대라 일컫었으며, 이제는 AI 시대라고 말하는 세상에 우리는 기계 아닌 사람으로서 존재하고있다. 언제까지 이 입지가 유지될지 알 수 없다. AI도 사람이 구현했다 한들 사람의 영역을 넘어난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이놈들은 사람 없이도 입력값에 생명을 얻어 무한한 작업성을 영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이제 확신의 단계로 넘어 선 듯 하다.
김해라는 이 동네는 참 많은 단면성을 보유하고있다. 여전히 농업이 주된 생업인 구역도 있지만 산업단지도 신도시 주거단지 못지 않게 크게 이뤄져있다. 늦은밤 산업도로를 달리고 있으면 흰 불빛을 뿜어내는 물류센터들. 그 초입엔 또아리 틀듯 돌고돌며 올라가는 트럭 행렬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쿠팡이든 컬리든 없는게 없다. 생업 물류뿐만 아니라 인근의 항만으로 연결된 곳으로 이동하는 컨테이너, 윙바디, 대형트럭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출근을 하고 있으면 노란 통근버스와 고속버스들이 끝차선에 쪼롬히 줄지어 '동네이름-쿠팡센터', '동네이름-컬리센터', '동네이름-산업단지'를 오가며 근로자를 싣어 나르는 사람들.(나는 자차 운전일 뿐 똑같이 산업단지로 출근을 하는 근로자이다) 하나같이 지친 낯빛과 축 늘어진 육신. 통근버스는 구역마다 모여있는 사람이 아니라 한데 모아둔 부품을 싣어 옮기는 듯 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주간근로라면 양반이지. 야간 근로는 수당도 세고 각각의 센터의 특성에 따라 온도나 무게, 부피에 따라 작업의 강도 또한 다르니 알바 어플이나 당근 어플의 고용 후기를 보면 유네스코로 지정된 가야 고분군을 덮어둔 푸르른 들판과 사뭇 다른 무색의 세상이 바로 길 건너에 자리잡고 있는 이질감을 저자 또한 느끼고 있었기에 이 이야기가 쓰여질 수 있지 않았을까를 가늠하게 한다.
여기에 도망치듯 오게 되었던 재일은, 강남에서 피부클리닉을 운영하다 실패 후 빚을 져서 여기 이곳, 김해로 숨어든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물류센터 야간 구급대원으로 취직. 거기서 마주한 낯설고도 취약한 주거와 근로 환경. 교대 없이 근무하는 노동자들. 잠과 휴식을 돈으로 맞바꾸며 스스로를 갉아먹어 벌이에 자신을 태워내는 행태. 의사인 재일은 인간이라면 자의로 긴 시간동안 유지 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감염과 전파 과정을 쫓으며 인간으로서의 안쓰러움과 함께 이렇게 변해가는 인체의 과정을 기반한 혈청 개발 수익 증진에 눈을 돌린다. 육안으로도 구별이 가능한 감염상태와 신체의 변화를 보이는 물류센터 구역 근로자와 달리 같은 구역에 있으면서도 이들과 다른 패턴을 보이는 로봇 수리공 수아와 함께 공조와 대립을 겪으면서 AI 관제 시스템 아르고스를 멈추어야 근로자들이 살 수 있을거라는 목표를 가지고 AI를 이겨먹을 것인지, AI에 영원히 휘둘려 시스템 일부가 될 것인지에 대한 작업에 가담여부는 문장을 따라 밤낮 가리지 않고 작업할 그들을 따라 다니며 그들의 최종 선택을 가늠해본다.
📖아니, 좋아서 하는 것이었다. 몸이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뇌가 잠을 요구하지 않으니, 일이 즐거운 것이다. 일만 남은 인간. 일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인간.
일 하는 것, 돈을 버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그들은 전부 타국에서 왔기에 돈 벌이라는 뚜렷한 목적만 가지고 왔으니 다른 여가 활동이나 생계 이외의 수단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러니 손에 쥐어지는 돈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도파민 터지듯 더 빠른 목표치 도달에 정신이 팔려 다른 자극을 모두 무시한 결과로 보였다. 이는 아르고스의 영향과 함께 육신이 스스로 잠을 쫓았다고 해야 더 정확하리라 보여졌다. 생각해보면 외국인 노동자여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로서 빠른 부의 축적이 수반된다면 다 같이 눈꺼풀 없이 사는 사람처럼 잠을 잊고 살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했다. 우린 다 그렇게 성공과 목표 도달에 목이 마른 자들이니까.
📖잠을 못 자니까 꿈도 못 꾸잖아요. 꿈이 없으면 안에 있는 것들이 갈 곳이 없어요. 감정이든 기억이든 뭐든. 통로가 막혀버린 거예요.
잠과 꿈. 이는 낭만의 상징처럼 표현되기도 했고, 여유와 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기계와 인간이 다른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둘 수 있는 항목. 한 템포 쉬어가는 의미인 잠. 그래서 내일을 위한 에너지 비축이자 일과를 마치고 하루가 끝나는 의미로 보여지는 잠과 꿈의 연계. 쉼 없이 돌아가는 AI와 기기들 사이에서 쉼표가 필요한 존재인 인간이 생산성 중심의 성과에서는 불필요한 요소를 가졌다는 핸디캡. 그럼에도 너는 자야겠니? 라는 압박이기도 한 잠과 꿈. 역시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건 늘 약자의 몫이다.
📖AI가 스스로 학습한 것이다. 수면을 억제하면 노동 시간이 늘고, 물동량이 증가한다는 상관관계를 관찰하고, 강화하고, 자동화한 것이다. AI에게 의도는 없었다. 악의도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그리고 그게 최대의 효율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결과 도출이 우선시되는 지표에서 노동자는 그저 이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일뿐이라는 것인데 이 또한 인간이 구현해냈고, 인간이 최대치의 성과만을 기대하고 있기에 만들어진 구조였다. 사람이 없었다면 AI 구현 또한 없었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래선 안된다고 볼멘소리를 하게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격차가 더 커질 결과물을 생각하면 눈물을 머금고 자동화에 손을 들게 될 것이다.
의도와 악의가 없는 그저 도출된 결과로 보여지는 성과. 그러하다보니 배제하고픈 항목이 되어지고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 인간인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제 인간은 모든 면에서 우위가 아니며, 사회 필요 충분의 요소 순위에서 하락하고 있음음 보인다.
효율성을 따지는 삶. 최대치의 목표값 달성이 최고의 실적이라 여기는 것. 인간답게 사는 것 이상으로 중요시 여기게되는 결과물. 어느 시점부터 당연하게 내재화된 자본주의의 괴물성이라 일컫지만 이래야만 도태되지 않으니 유난함이 아니라 익숙함으로 세상의 변화됨을 받아들이게된다.
퇴근이 없는 삶. 매 순간마다 목표치를 달성해야만 다음을 기약 할 수 있는 입지까지. 저자는 만성화된 자기 착취적 노동이라 말했다. 강요는 없었으나 세상이 그걸 바랬고, 으레 그리 살아야된다 여기게 만들었다. 이 또한 AI가 기대한 삶의 구조였을까? 인간은 안할 뿐 못하지 않는다는 성향을 기저에 깔아두고 있다보니 사람답게 사는 방식 빼곤 다 해내는 존재로 발전 해 온 듯 하다. 소위 말하는 의식주. 입고,먹고,자고. 사람답게 라는 말의 의미를 챙겨보자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린 그걸 제일 못하는 사람이다. 어차피 내가 필요로 하다면 우리 서로 타협이라는 걸 하며 길게 보자는 거다. D구역 아르고스를 잠재웠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것 처럼, 우리는 또 다른 구역으로 눈을 돌려 일자리를 찾고, 나를 필요로 하는 데를 기웃거리는 수아처럼 살아낼 것이다. 우린 죽을 때 까지 일할 생각이니 먼 곳을 주시하며 서로를 살펴주길 바라게된다. 기계 너도 그렇고 인간 나도 그렇고 우리 그렇게 각자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지내보자며 어르고 달래고싶어진다.
📖한겨레 출판을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