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 부부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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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은 없더라도 무해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꾸리는 황보름 저자의 책이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즐겁게 읽었던 독자라면 분명 '윗집 부부'또한 훌렁훌렁 잘 넘어갈 페이지로 이야기를 담아두었다. 대신 추리나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거나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갈등과 서사를 찾아내며 이야기를 가늠하기 좋아하는 독자라면 심심하거나 맹맹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추리, 미스터리 소설에 푸욱 빠져있다가 머리 쥐어짜며 읽지 않아도 되는 담백함을 찾던 나로서는 맛있게 읽어 삼킨 이야기들이었다.

3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이야기 이지만 인물들 내가 사는 세상에서 볼법한 사람들로 꾸려져있어 정말 윗집 부부 같고 아랫집 아저씨 아줌마 같았다. 때로는 나의 아버지가 오경직을 닮아있는 듯 보였고, 봄&가을 부부가 우리부부는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말 생활 밀착형 소설로 내 세상을 옮겨 놓은 듯 해서 더욱 공감하게 만들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 옛말은 지금 세상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한 어르신의 편견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마을 안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한 세상을 꾸리기 위해 온 마을과 이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나만 힘든게 아니었고, 나만 유난스러운게 아니었음을 서로 알아주며 맞춰가는 방식. 그들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고 우리가 알지 못하던 세계가 분명 존재했음을. 그래서 그 세상이 잘 돌아가기 위해 우린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며 살아가는 방식을 매번 깨우쳐야함을 보여주는 글이니 책 바깥의 세상을 사는 독자들이여 우리 그렇게 서로 이해라는걸 해 봅시다를 다정하게 알려줬다.


📖턱걸이와 철봉 매달리기 모두 결국엔 추락이란 결과를 맞는 일이었다. 봄은 구조조정 대상자가 됐을 때 자신은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몇 초 버티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곧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오래전부터 다리와 겨드랑이까지 걸고 버티다 떨어진 것이라고. 그렇게 살고 있던 것이라고.

청소년 시절의 나는 무조건 정규직으로 드라마에서 볼 법한 출근룩에 팔짱끼고 사선으로 서서 찍은 프로필사진이 들어간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닐 수 있는 사람일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러한 사람보다 더 많은 수고로움을 겪어내는 사람들이 꾸린 사회였다. 계약만료와 재계약, 기존 직무 연장과 정규직 전환. 매 분기마다 파리목숨이라 봐야할지 하루살이같은 삶이라 여겨야 하나 싶은 세상도 있었으나 몰랐을 뿐이었다. 봄 또한 그랬고, 가을 또한 그런 삶을 살아내는 일반인이었다. 그들은 이게 턱걸이의 삶이라 말했다. 매번 끝자락에 어딘가에 소속은 될 지라도, 떨어져 나갈 때에는 일등이 되어버리는 순위 역행자. 그러니 자신의 삶의 행운 여부까지 운운하게 만든다. 옛날엔 평생 직장도 있었다지? 그런데 그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 사람도 힘들었을꺼라며, 우리 만큼이나 그들의 삶도 고단했을거라고 생각을 달리하게 만드는 말들. 무조건적인 위로 보단, 봄의 세상만 유독 힘든게 아닐거라며 동경하는 세상도 결국 사람 사는 동네 이야기라며 자기만의 동굴을 파고들지 않길 바라는 가을의 말에 나도 힘을 얻게 했다.

난 사람보단 든 사람이 더 귀하다는 말. 그동안 더 열심히 하지 않고 뭐했냐는 채근보다 이러한 공감이 힘이 되는 순간도 있다.

📖삶은 거창한 대의나 신념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작은 필요에도 삶은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손이 필요할 때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선지는 정말 모를까.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분명 잘 알고 있을 선지가 말했다.

가족이라고, 부모와 자식 관계라고 모든걸 터 놓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정이 딸과 아들에게 소소한 것을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딸도 아닌 어린 잎새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의 카테고리가 따로 있다. 당신의 삶이 그러했다고 당신의 자식 또한 그러길 바라며 아들에게 둘째 출산을 종용하거나 딸에게 결혼은 무조건적인 삶의 관례라고 하지만 그 시대의 의무가 지금의 시대엔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 자식에겐 허용이 안 되지만 한 발짝 떨어져보니 대해가 자신의 아버지와 겪는 갈등 봄&가을 부부가 생각하는 미래가 유난이 아닐수도 있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경직은 벽보고 말하듯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외골수까지는 아니라서 말이다. 여전히 이해 안된다는 생각은 존재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수 밖에 없음을 인지는하고 있으시니 감사하게 느껴졌다.(끼인 세대라 할 수 있는 내 또래는 알꺼다. 내 윗세대를 이해시키는 것과 내 아랫세대들 공감해야 살 수 있는데 매번 반복 주입식 설명을 해도 도돌이표인 경우가 허다하거든)


📖봄은 항구가 퉁명스럽게 해주는 말들이 좋았다.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이전 세대의 아버지들이 딸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꾸중을 듣는 듯한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항구의 말은 봄의 생각과 맞닿는 부분이 많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듣고 나면 마음에 새기고 싶곤 했다. 항구와 얘기할 때면 경험에 밀착된 말이 지닌 힘을 느꼈다. 허황되거나 공허하지 않아서, 현실적이어서 좋았다. 사장님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우리가 어르신들을 공경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들이 살아온 세월의 배움은 우리가 겪어내지 못한 생생한 현장의 습득이기에 더욱 귀하고 값지다. 항구는 손아래 사람이라고 무조건 훈계하는 식의 대화가 아니었다. 한참을 주시하고 있다가 필요 할 때 툭툭. 일단 기다려줬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방향이 있을테니 바라보다가 헤매고 있을 지점에 왔을 때 툭툭, 다음 방향을 갈 수 있도록 그 앞에 표지판을 심어주었다. 무조건 당신의 말에 따라 오라 손목 쥐고 당기는 방식이 아니었다. 가는 길을 알려주었고, 가는 건 또 스스로 해보라고 바라만 봐 주는 것. 그게 경직과 다른 항구만의 방식이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던가. 한 발 두 발 걸음마를 시작 할 때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든 비틀거리다 손바닥을 잘못 짚어 쓸리든 일단 내 딛는 것 부터 해봐야 했고 그 다음 손도 잡아줬고, 저 멀리서 이 쪽으로 오라고 박수 치며 방향을 일러주기까지. 어른들이 가르쳐 주는 것들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봄은 귀한 경험치를 옆집 사장님이자 건물주, 부동산 계약 소장님인 항구에게 귀동냥하게된다.

📖'세상에 굽지 않은 사람이 없어.' 굴곡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 같아 위안이 되었다. 자신을 굽은 나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도움될 것 같았다. 굽은 나무더러 왜 굽었냐고 묻지 않아도 되듯, 자신에게도 왜 어리석은 망므을 지니게 되었냐고 묻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바람이 얼음처럼 찼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리석은 마음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인간적인 마음이라 고쳐 알려주었다. 인간은 누구나 안정을 원하니 그건 당연한 방식이라고. 선지나 가을이 앓는 것은 이른바 마음의 감기였다. 누구나 앓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대호도 직장을 잃고 육아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왔을 수도 있고, 봄이 계약 연장과 식당 운영, 식당 운영하며 임산부로서 모든걸 담당해야하는 부담감에 슬쩍 몸에 들러붙었다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해가 아버지와 진로를 두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점점 몸집을 불렸을 수도 있고, 항구도 다시 혼자가 되고 반복되고 특별할 것 없는 세상에 가라앉듯 모든걸 덮어버렸던 때가 있었을 거다. 왔다가 나도 모르게 가버릴 수도 있고, 좀 더 눌러 앉았다가 갈 수도 있는 것. 그래도 언젠가 또 아무렇지 않다는 듯 괜찮아질거라는 건 분명하니 그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에 몸을 맡겨보는 것. 그리고 이해해주고 이해받는 과정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고마워진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세상이 쉽고 만만하다 여기며 사는 사람들은 없었다. 다들 하나같이 애쓰고 살았다. 시간은 흘렀고, 시대는 변했고, 다 안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배워야했고, 노력은 필수적인 요소였다. 나만 그런거 아니다. 다들 그리 산다. 그런 얘기였다.

어느 하나 애틋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경직과 화정은 나의 부모. 대호와 주은은 나의 형제들 같았고, 선지는 내 친구들 같았다. 대해는 여전히 진로와 미래에 고민하는 사무실 동생들의 얼굴과 겹쳤다. 봄과 가을 부부는 우리부부 이야기와 결이 비슷해보였다. 다들 그리 살고 그리 고민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향한 이해와 연대의 과정이 더 고맙게 느껴졌다. 안해주면 그만인 감정의 교류인데 세상이 변하는 것에 받아들이고 모두 나와 같지 않음을 인지하는 점과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내는 존재임을 다양한 연령과 직군, 성별에 따라 얽힌 관계로 또 한번 실감을 하게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던 이전 시대에 비해 이제는 한 어른을 보살피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했고, 결국 한 세상을 꾸리기 위해 서로가 존재함을 인식하는 삶의 긍적적인 예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머리통 큰 어른부터 한창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이 읽으며 다양한 울림의 교류도 재밌을 삼삼하고 담백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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