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상주의자의 감각 -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소한 기적들에 대하여
김이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6월
평점 :

나는 글로서 사람을 다독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말보다는 글로 전하는 온도가 더 오래 유지됨을 느껴서인지 에세이를 쓰는 사람, 노랫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애정이 간다. 그래서 저자의 문장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우주가 소멸해갈 때_ 우리가 한 시절을 쏟아 만든 무언가가 허물어지고 사라진다 해도, 우리가 쏟은 시간과 경험치, 기억 들은 소멸하지 않는다.
별로 남겨진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자.
그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갉아 먹히다보면 내가 없어 질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 온전히 껍데기는 존재하겠지만 심연의 나는 모조리 휘발되고 진짜 나는 없는, 의무감으로 생을 이어가는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을 하게된다. 이게 다 잡념같다 생각 하겠지만 고민이 많고, 잘 하려고 애쓰다보면 존재의 이유가 없어지곤 하더라. 무엇때문에 열심히 살았는지, 어떠한 목표가 있어서 아등바등했던건지, 이 순간이 끝나면 나는 또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어떠한 이도 명확한 답을 내어주진 않는다.
📖그 시절의 나를 아는 사람_ 지금도 불완전한 나라서 불안한데 더 불완전했던 나를 잘 아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반갑게 대해주는 사람.
처음 만났을 때의 나를 또렷하게 기억 해 주는 사람. 시간이 흘렀고 모든게 변했음에도 여전한 그 장면을 꺼내어 주는 사람. 과거의 호칭을 듣고있노라면 여전히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 막내노릇을 해야 할 것 같으며 괜한 투정을 부려도 모든게 허용이 될 법한 기운을 얻는다. 든든한 믿을 구석이 있던 그 시절로 말이다. 저자를 아직도 '이나 대리'로 부르는 사람이 있는 것 처럼, 나를 여전히 'OO 매니저님', 'OO실장님'으로 불러주던 그 때. 이름은 하나여도 별명이 서너개인 동요 '내 동생' 처럼, 나를 불러주는 이름 아닌 호칭들에게서 잊고 지냈던 나의 시절들을 만날 수 있어 고마울뿐이다.
나도 잊고 있던 나의 시절을 기억 해 주는 사람, 나는 그 사람에게 여전히 그런 존재라는게 뭉클해진다.

📖지금 내 자리가 무겁게 느껴질 때_ '나 이 자리 너무 부담스러운데?' 싶을 땐 자꾸만 작아지는 나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그 자리에 앉힌 큰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려라. 내가 작아 보이는 건 내 생각일 따름이고, 나보다 오래 일한 큰 사람들이 그 자리에 나를 앉힌 타당한 근거와 이유는 분명히 있다.
어릴때엔 어떻게 해서든 위로 올라가려고 아등바등거리고 닿지 않는 높이의 것을 움켜쥐고자 손에 쥐가 날 정도로 뻗게된다. 헌데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연차가 쌓이고, 그 분야의 고인물이 되다보면 뚜렷하게 두각을 드러내기보단 안주하려하고 튀기보단 숨기 바쁘다. 길고 얇게 가자는 얕은 숨으로 연명하는 삶을 고수하게된다. 이제는 아는 것이다. 직급이 높아지면 책임을 져야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윗 사람들보다 아랫사람들이 많아지면 방패가 되어야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 내 몫의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목숨줄까지 쥐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무래도 무겁고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나이만 먹는 어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어른은 그게 어렵고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내 몫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까지 책임지기엔 스스로의 그릇이 작다 여기게되고, 한 순간의 결정이나 한 마디의 말로 타인의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상황이 무서운 것이다. 그렇다.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은 늘 무섭고 회피를 반복하게된다. 나를 둘러 싼 주변인들의 생의 순간까지 역량을 끼치는 존재가 되니 매일매일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늘 느낀다. 내 그늘이 되어주는 사수나 부서장이나 든든한 어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의 바람으로 나는 오늘도 내 깜냥보다 높은 듯한 위치에서 까치발로 서서 종종거리는 삶을 살게된다.
📖상사님들에게_ "수고했어요. 잘했어요."라는 말이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이런 말이 필요한 날, 이런 말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날, 그 밑에는 얼마나 많은 일들과 마음이 깔려 있을까.
어릴 때엔 밥만 먹고 똥만 싸도 잘했다고 칭찬받고 기특하다 여겨주는 시절이 있지만, 나이가 들고 이것저것 아는게 많아 질 수록 그러한 말을 듣는 횟수가 줄어든다. 뭔가 칭찬의 역치가 된 것 마냥 내가 어릴 때 받아온 칭찬과 격려의 말을 고스란히 타인에게 갚아주어야 하는건가 싶은 상황이 계속된다. 그 횟수가 0이 되면 그나마 중간의 삶인거 같고, 받아 온 것보다 뱉어내는 고운 말이 더 많아져 마이너스 수치가 되면 그래도 괜찮은 삶과 그럴듯한 어른으로 가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도 사람이다.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더 잘 하고싶고, 고맙다 소릴 들으면 배로 갚아주고픈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하게된다. 별거 아닌 말 같아도 이 한마디가 고함량 비타민이라도 된 것 처럼 나를 다시 쌩쌩하게 만드는거 보니 여전히 나는 칭찬이 고프고, 인정이 그리운 사람임을 느낀다. 나도 이런데 내 앞에 있는 댁들은 오죽할까. 입 밖으로 내뱉는 아부와 아첨처럼 보여도 우리 이거 흔하게 써먹자. 내가 듣고 싶은 만큼 말해보면 돌고돌아 나도 그런 소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나 그런 말 디게디게 듣고 싶은 엄청 허술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그게 나인걸 어쩌겠어.

📖노예병 말기_ 다정과 사랑은 디테일에서 온다. 그런데 그 디테일을 챙기기 위해서는 체력도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파하려면 내 몸이 건강해야 하고, 아주 좋은 컨디션일수록 양질의 사랑을 전달해줄 수가 있다. 체력에서 태도가 나온다는 걸 나이먹을수록 느낀다.
하긴, 다정도 체력이더라. 베풀고자 하는 마음도 내 그릇이 넘치거나 쏟아지지 않았을 때에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걸 수시로 느낀다. 내가 행복해야만 그 기운을 온전히 타인에게 밀어 넣어 줄 수 있음을 실감하게된다. 내가 즐거워야 시선과 말투, 말의 온도가 부드러울 수 있다는걸 아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나란 놈의 배터리를 늘 완충모드로 유지한 채로 살려고 애쓰게된다. 내 에너지를 급속 충전기 삼아 타인에게 나누게 될 지라도 일단 내가 완충 상태여야 뭐든 가능하다는 것. 이 또한 노예병 처럼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려는 심산으로 보일지라도 다정의 순간이 나는 너무 좋더라는거지.
그렇네, 다정도 병이네. 쉽게 고칠 수 없는 중병.
📖덕질의 쓸모_ 걱정과 달리 그들은 남들보다 더 행복하고 따뜻한 온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무언가에 깊이 빠지고 한참을 좋아하고 후회없이 즐기고 가득 행복해 하는 것.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러한 과정 하나만으로도 사는게 재밌어지고 내일이 기대되는 삶으로 바뀌더라. 음악을 좋아하는 삶도 나고, 책을 사랑하는 삶도 나이며, 커피를 즐기는 시간도 나의 일부이고, 사색과 산책을 즐기는 것 또한 다양한 각도의 나라는 것을 안다. 회사-집-회사-집만 오가는 것 같아도 틈틈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은 긁어 모으는 것. 더 잘 살려고 가장 나약한 부분의 숨구멍을 뚫어 놓는 방식. 누군가는 그게 쓸모 없는 일 처럼 보일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생존방식이라는 걸 느낀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르고 깊이있게 누릴 수 있는 행복 회로. 내 돈 벌어 내가 쓰고, 내가 즐긴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이야. 덕질에 이만큼 쓰고, 저만큼 돈 벌면 삶의 본전치기 정도는 될테니까 무엇이 되었든 어떠한 방식이 되었든 덕질 하는 삶에 나를 푹 절여놓고 사는 순간도 있길 바란다. 해보니까 겁나 행복하더라는 후기를 전해본다.

📖우리의 엔딩은_ 인생은 눈감을 때까지 끊이지 않는 이야기이다.
누구도 함부로 결말을 말할 수 없다. 그 주인인 당신조차도.
어떻게 엔딩이 날지 몰라 재미있고, 떄로는 두렵고, 그럼에도 다시 설렐 수 있는 게 삶이다.
계속 연재되는 작품이며, 때로는 휴재도 하지만 절판 될 일 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나 또한 내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으며 독자가 한명이라도, 아니 조회수가 0이 된다 할 지라도 꿋꿋하고 담담하게 계속 써야하는 이유가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시키진 않았으나 자발적으로 해야만 할 것 같은 생의 기록물이기도하며 이게 있어야만 이놈 잘 살았구나 싶은 증거자료가 되지 싶다.
내가 미처 챙겨 듣지 못한 라디오같은 느낌을 받는다. 매주 매주 게스트가 나오는 데일리 코너 말고, 주말 밤에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 같은 순간을 마련해 주는 게 이 책이었다. 나완 다른 세계에서 살 법한 방송인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일과를 공유했을법한 출퇴근도 해본 직장인의 동질감?
인간관계에 고민도 많았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동료이자 선임이었지만 지금은 퇴사한 상태라 동네 언니로 남은 그런 사람과 늦은 밤 위스키와 커피를 같이 파는 곳에서 테이블에 얹어진 작은 스텐드 불빛을 멍하니 보며 그간 있었던 설움을 쏟아내는 동생이 되어버린 느낌(너무 구체적인가?)
암튼, 저자는 나에게 그런 언니미 낭낭한 사람이며 몇번이고 똑같은 내용을 듣더라도 지루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딱 그정도의 과하지 않은 다독임으로 알아서 바닥을 짚고 일어 날 수 있도록 진득한 시선으로 봐주는 듯한 사람. 그래서 '나, 언니가 손 잡아주지 않아서 알아서 일어났다? 나 기특하지? 멋지지?' 라고 으시 댈 수 있도록 응원과 위로를 요리조리 찔러주는 이야기로 나는 그리 유별나지 않은 놈임을 확정지어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고맙다. 손에 쥘 수 있는 에세이 하나로 내가 일어 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니 바닥에 주저앉아버려 축축해진 엉덩이 탈탈 털고 일어나도록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