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나르 주식회사 - 김동식 AI 초단편선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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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주제로 한 초단편선 모음집. 역시나 분량 채우기 식의 늘어지는 것 없이 굵고 짧고 선명하게 적혀있다. 열여덟 편의 초단편선은 AI 관련 제품과 기술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먼 미래라 단정 짓지 못할 만큼 근간까지 다다른 현상과 그걸 내다보는 저자의 안목까지. 집중 못할 거 같은 상황에서도 그가 내어놓은 이야기라면 자동 노이즈캔슬링 상태로 만들어버림에 감탄하며 단숨에 읽어냈다.

📖라이프 리플레이_ 라이프 리플레이가 우리에게서 발산을 앗아갔습니다. 표출과 저항, 그리고 중요한 '썸띵'을 앗아갔습니다. 화를 참고, 욕망을 참고, 부조리를 참죠. 집에 가서 리플레이로 해소하면 되니까. 이게 정상입니까? 역사상 인류가 이토록 심하게 거세당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눈 앞에 일어난 일에 대한 후회는 꾹꾹 눌러 둔 채 집에 가서 리플레이하듯 하루를 되감기하여 제멋대로 스토리를 다시 구성하는 능력. 자기전 이불킥 하는 과거와 달리 안되면 집에가서 '라이프 리플레이'해버리면 되지 싶어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는 하루.

몇번이고 곱씹고 뱉어내는 조심스러운 말은 사라지고, 몇번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린 후 행동하는 몸짓도 사라진 상태. 표정없는 고마움과 감정없는 미안함. 진심의 존경도, 울분의 한탄도 없다. 고요한 호수보다 더 무서운 잠잠한 심연의 물속같은 사람들의 심상. 감정의 거세.

개개인이 원하는대로 리플레이 시켜 수정과 삭제를 반복하는 제뜻대로 고쳐먹는 일상의 짜깁기. 가장 완벽한 하루를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함을 잡아먹은 반듯한 일상. 이럴거면 그냥 AI보고 내 하루를 살아내라 해도 될법한 시간들이다. 뭐랄까, 반듯한 것이 모난 것도 없고, 별다를 것 없는, 넙적하고 튀어나온 선 하나 없이 가지런하게 찍혀나오는 판 초콜릿같은 삶이 보였다. 똑똑 떼어내어보면 그게 그거같은 그런 삶.

📖나 키우기_ 회사는 고객들에게 '나'를 팔도록 유도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본떠 만든 AI는 수요가 많았다. 게임 회사나 영화사 등의 기업들이 원했고, 부유한 개인도 개인적인 목적으로 원했다. 그러자 많은 이가 가볍게 '나'를 팔아댔다. 공공재나 다름없는 '나'를 파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런 시대였다.

내 또래, 80년대생 여학생들이라면 CD하나로 반 전체가 엄마로 빙의되어 엘리트 딸래미 한명씩 키우던 시절이 있었다. 프린세스메이커라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인데 이번 단편 작품이 딱 그걸 떠오르게 했다. 게임은 하나인데 친구들끼리 똑같은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 것도 신기했고, 다 키워놓고 보면 진짜 제각각의 신분과 직업을 갖게된다는 것. 뭔가 자신을 닮아있는 분신과도 같으며 성향은 동일한 게임이긴하나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복제작 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리만족의 표본과도 같은 것. 욕망은 천장에 달려있고,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마련. 고로 현질이 답이라는 결론으로 역시나 '고객 = 돈' 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작업에 익숙해진다면 쉽사리 놓지 못할 것이고, 한계를 봐야하는 이들은 부를 맞대어 자아 투영과 자아 실현을 하게 될 것임이 당연했다. 역시 AI는 더 나은 삶을 영위한다기 보단 더 빠른 부를 긁어 모으는 것에 구체화 되어있음을 잊고 있었다. AI또한 욕망 가득한 사람이 만들어낸 작품 인 것을 또 간과하고 말았다.


📖AI 상속법_ 사람이 죽은 뒤에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AI 로봇만 한 적임자가 없긴 했다.

나의 순간을 유한이 아니라 무한으로 기억하고 기록 해 둘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영원을 바라던 사람이 꾸려낸 진짜 영생의 기억 유지 기능.

나를 알던 이들도 죽음에 이르렀을테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모두 사라진 상태에서 나만 기억하는 AI만 멀쩡하게 있다면 그걸 행복이라 봐야할까 행운이라 여겨야 할까. 기억의 영생 마저도 외롭고 쓸쓸한 노년을 맞이할 듯 해 애잔해지기도 한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건 없겠다. 오로지 자기 결정일테니까. 근데, 나는 이거 별로인거 같아.


📖드라마 성공 공식_ 캐릭터의 저런 행동은 좀 비합리적이지 않아? 근데 또 비합리적이라서 오히려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해. 그게 인간이잖아. 인간이니까 쓸 수 있는 전개지.

현생에서는 도무지 만날 수 없는 드라마틱한 상황. 극적인 전개. 그 로밍이 우리를 영상 앞으로 모이게 했다. 그 또한 AI의 영향을 받는다면? 수많은 작품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시청자들이 좋아할 요소들, 뻔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기도 한 콘텐츠를 구현해 낼 수 있다면 마다 할 수 없지.(AI가 내어놓은 작품을 창작이라 봐야할까? 나는 끝까지 창작 대신 구현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어진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니까 좋아하고 동경하게 만든다. 현실 도피가 가능 한 곳이니 말이다.

알고서 받아들이는 것, 모르고서 느끼는 것. 삶이 AI에게 잠식 당한 상태이니 AI인지 인간의 창작물인지도 점점 모호해지는 감각. 덮어놓고 보면 결국 그게 그거라는 것인데 우리는 그 결과물을 철저히 무시하고 싶어진다. AI가 인간보다 더 나을 거라는 확고한 편견에 갖혀진 상태다. 이런데도 사람을 배제 시킬 것인가, AI를 우월시 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린거겠지. 이젠 그밥에 그나물이 된 겪인데 어떠한 감각으로 가타부타 정할 수 있을까. 난 백날 골라봐도 틀릴거 같아. 사람의 작업물인지 AI의 결과물인지.

📖모솔 유튜버의 합방_ 누가 누굴 이용했는지는 영원한 비밀로 남겨질 것이었다.

누가 누굴 이용했는지, 누가 이용 당했는지. 비상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AI였고, 그 비상한 머리가 이러한 꼼수를 부렸다. 사건이 흘러가는 꼴을 보자니 이놈의 자작극이겠구나 싶었다. 욕받이를 허상으로 둔 채 자기는 피해자인냥 거적을 뒤집어쓰고 더 그럴듯한 단계로 올라가는 방식. 역시나 피해를 보거나 손해 볼 짓은 하지 않지. AI가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약아빠진 인간을 당해낼 재간은 없을테니 말이다.


📖가장 공평한 복지_ 그 답은 '무작위 복지'였다. 사람들은 운명에 맡겼을 때에야 공평하다고 받아들였던 거다. ... ... 어떤 등급을 받게 되더라도 공평하다고 순응하면서 말이다.

내가 더 가지지 못한다면 남들도 더 가지지 못한다. 랜덤, 아무거나, 결정장애에 빠져버린 사람들. 무엇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에 망설임도 있지만 내 결정에 확신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에는 차라리 타인에게 맡겨버리며 책임전가의 뉘앙스도 풍기는 이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너도 그러한 것. 그러하니 나에게 불이익이 오더라도 내 옆에 있는 쟤도 조만간 똑같은걸 겪을거라는 기대와 확신을 갖고 사는 공평한 복지사회. 이게 일상을 살면서 비교하는 것에서 오는 피곤을 해소하는 방식일까 피로도를 높이는 방식일까. 어차피 원산지가 다른 삶이잖아. 나는 그냥 공평한 복지고 나발이고 격차있는 삶을 고수할거 같다. 신분 상승이 아니라 삶의 질 상승을 기대하는 삶을 사는게 다 나을듯 싶다.

알고보면 이러한 기대감마저도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복지를 만들었겠지? AI 발전에 따라 인간은 점점 생각하고 고민하며 노력하는 것에는 일체 에너지를 쓰지 않는 사람으로 진화 할 거라는 암시같은 단편이다.

📖철통 보안 콘서트_ 우리는 행운아죠. 이 콘서트는 고유해요. 시간이 지나면 현장에 있던 우리를 제외한 그 누구도 다신 경험할 수 없는, 간접 경험조차도 불가능한 고유한 순간이라고요. 이걸 렌즈가 아닌 제 맨눈으로 머리와 가슴에 담았다는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저자는 요즘 콘서트 관람 실태를 본거겠지? 저자가 꾸린 세상을 좀 더 빨리 당겨서 구현해 낸 아티스트가 있다. 소란의 고영배. 얼마전에 했던 고슴도치 콘서트인데, 이 뜻이 특별하더라. 고,영배의 슴,슴한 도,파민 치,료 콘서트를 줄여서 고슴도치 콘서트라는 것. 박수,함성,웃음,촬영 안됨, 영상,필기,감상 가능한 좀 남다른 컨셉으로 꾸린 공연이었는데, 스마트워치, 카메라, 웬만한거 다 걷어가는게 처음엔 이상했지만 자발적으로 착하게 제출하는 관객들. 그래서 모든 사진은 입장 전과 공연 후 오피셜에서 제공하는 공식 이미지뿐이었다. 요즘은 대포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 폰으로 공연을 풀로 촬영해서 3시간 넘는 영상을 올리는 계정도 있고, 실시간으로 고화질 직캠을 올리는 이른바 홈마의 계정으로 직접 가지 않아도 스텐딩에서 바로 즐기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기도한다. 일부 아티스트들은 어느정도 허용을 하는바. 이러한 영상을 본 사람들로 하여금 머글을 덕후로 끌어들이는 입덕의 계기로 삼기도하니 마냥 거부 할 수도 없더라는 거지.

헌데, 나는 이 철통 보안 콘서트를 응원하는 바다. 거진 분기별로 한번씩 콘서트를 가게되는 공연 광인으로서 그때의 여운을 되새기고 또 그리워할 무언가가 있다는건 참 좋은 거지만 그 순간을 오로지 누릴 수 있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완벽했다고 단언하진 못할 듯 하다. 그래서 남들 다 폰 들고 바삐 움직일때 3시간 중 딱 한곡만 풀촬영하고, 나머지는 다른 능력자의 손을 빌어 올아오길 바라게되는 듯 하다. 그때의 온도와 습도, 그 분위기와 나의 두근거리는 마음과 되려 긴장되는 듯한 내 손끝. 공연장에 울려퍼지는 음악소리와 제작진들이 이날을 떠올리기 쉽게 뿌려두는 향수, 특별하게 제작된 컨페티들까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몇번이고 되새기면 되니까 머리와 가슴에 그리고 온 감각에 젖어든 나를 떠올리는 방식을 더 애정하게된다. 기억이란 모름지기 일부가 소실되고 미화 될 때 더 애틋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법이라는 것도 알아주길 바란다.

역시나 김동식 스러웠다. 김동식이라 쓸 수 있는 AI 초단편선이었고, 어딘가 모르게 껄끄럽고 까끌거리며 후련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남긴다. 그래서 생각해야했고, 그 생각이 매끄럽게 정돈이 될 수 있도록 몇번이고 다시 살펴봐야했다.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작가의 허상을 들여다 보는게 아니라 진짜 있을 법한, 머지않아 내 발치에 도래할 세상 이야기 같아서 일단 그 일이 닥치기 전에 나는 어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하기 바빴다. 저자 또한 AI 자체보다 AI로 인해 펼쳐질 현상을 상상하는데에 집중했다 하지만 상상력으로 끝나지 않을 법한 장면들이 수두룩하다보니 미리 그 세상을 맛보는 이른바 시제품 테스트 평가단이 된듯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삼키게 만들었다.

AI라는게 편하기도하지만 두렵기도 한 것이라는걸 쓸 때마다 느낀다. 무형의 것이라 생각했지만 AI를 탑재한 인간과 별반 다르지 않는 것들이 생성되고,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확장된 세상을 구현하는데엔 거리낌이 없다. 습관처럼 말하길 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말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AI가 우선시되어지는 세상이 더 무섭다고 말을 고쳐야 할 것 같다. 고유한 것이라고 여긴 인간의 유일무이함이 사라진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저자는 짦은 글을 남기고, 독자는 구구절절 여담을 늘여놓게 만든다. 역시 또 나만 수다쟁이 인거지. 김동식 저자의 글만 읽으면 나는 말 못해 안달난 사람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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