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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ㅣ 위픽
임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품절
이걸 어떻게 읽어야되는거지? 제로제로제로제로? 영영영영? 영 네개? 그냥 책 표지에 있는 다음에 또 만나자고 전해주세요로 부르는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의도한 또다른 이름 일수도 있잖아?
책 제목 만큼이나 소재도 신박하다. 길고양이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활동하는 특수요원 고양이 '오후'가 존재감 없는 이에게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에서 제안을 한다. 너만큼이나 존재감 없는 인간은 없었기에 어떻게 하면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을지를 배우고 싶어한다. 고양이로서는 그게 최선의 안전함이니 말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 무존재의 무의미의 인간이 되어버린것인지를 생각한다. 있었으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는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삶이 무엇으로 인해 시작된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다시 생이 시작되어도 똑같이 살 것인지에 자문도하지 않는다. 멀찍이 지켜보는 독자의 바람으로 존재감 없는 인간이 스스로 깨고 나오길 빌게된다. 그가 먼저 말해준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가 꼭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면, 이전의 삶은 아는 두려움이었다.
둘 다 고르지 않고 사라지는 방법은 없을까?
누군가는 다시 태어날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손에 쥐려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는것도 죽어서 내세로 가는 것도 그저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그는 이전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기에 그러나 싶은 걱정이 앞선다. 환생 이후의 시간들에 대한 기대감이라던가 확신에 찬 생의 욕망이 없는 사람이다. 이전의 삶이 완벽한 실패로 확정짓고 있기에 자신이 유일하게 잘 할 수 있었다고 여기던 것 마저 주저하는 생각이 안쓰러워진다.
연재했던 '0000' 만화는 곧 자신이었고, 미래의 자신이기도 했다. 통장 잔고 0, 인간관계 0, 행동반경 0킬로미터, 메신저 알림 0의 일상. 여기에 갖혀서 바삭하고 건조한 0이 된거 같아 존재감 마저 0이 됨에 헤어나오질 못했다. 조회수 0, 별점 0, 댓글 0, 추천 수 0 으로 수치회되는 것들에서 0이라는 결과값을 맛본 상태이니 의욕 0, 의지 0, 기대치 0, 희망 0도 같이 따라오는 상황이다. 0이라는 수치가 영영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이니 진이 빠져보이게 어쩌면 당연한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의욕이라는 것도 지금과 달라질거라는 기미가 조금이라도 있어야 생기는 것이니 이 값에 대한 상태에 대해 이 사람 자체를 질타하지 않길 바란다. 제일 위험한게 어설픈 위로와 어설픈 응원이더라구.
저랑 비슷해서 잘 봤어요. 라고 말하는 독자가 이 사람의 껍질을 깨는 힘이었다. 헌데 그런 사람을 만난 장소가 이곳이라니, 이 사람도 나 만큼이나 팍팍했었구나를 생각하게된다. 독자라고 말해준 사람도 고양이의 힘을 빌어 다시 살 기회를 마련하길 바라면서 나도 다시 살고자하는데, 당신도 살아봐도 되지 않겠냐는 무언의 눈빛을 전달한다.
현생판 고양이의 보은이라 봐야할까. 그저 깊은 꿈을 꿨고, 그 곳에서 고양이는 나를 다시 살도록 구실을 마련해 주었고, 다시 살아봐야되지 않겠냐는 말을 그들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오후'가 환생을 기대하는 만큼 당신도 환생, 아니 이어지는 현생의 삶을 기대해보자고.
지금까지 읽었던 위픽 중에 가장 가벼웠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집사라면 더욱 예뻐할 책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