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얼굴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5년 11월
평점 :
잘 고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되지만, 잘못 고르면 이런것도 책으로 나올 수 있는거구나를 감탄(?)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추리 미스터리 소설은 호불호가 센 영역이라는 것. 계절탓이라 봐야할지 요즘 출판업게 흐름이라 봐야할지 추미스 소설이 마니아의 영역에서 나와 인기가 있다고 전해들었다. 그러고보니, '오렌지와 빵칼',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용궁장의 고백', '영수와 0수'까지. 근래에 읽은 것들도 제법 되는게 나 역시도 추리와 미스터리 이야기에 익숙하게 빠져듬을 느낀다.
저자는 선인의 가면을 쓴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악인을 그려내었다. 프롤로그를 시작하여 총 3부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한국에서의 마지막 사형수가 어떤 인물이었고, 그는 왜 어떠한 일들로 사형장으로 오게되었는지에 대한 시간의 되감기와 함께, 현재의 시간을 사는 이들 속엔 사형수 한바로로 인해 사건에 연류 된 자, 유일한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과거의 일로 인해 경찰이 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살아남은 자이자 이제는 그러한 인물들을 쫓는자로 시선이 옮겨저 어떠한 상태로 사람들을 마주해야하는건지를 생각하게했다.
📖제 생각엔 사람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자기 자신도 포함해서요.
광심이 생각하는 '사람이 사람을 버린다'는 문장은 사람다움을 버리는 것 자체는 곧 옳은 것을 포기하는 범죄자로 단정지어버린다. 어릴적 깊게 각인된 어떠한 기억은 사람을 다양한 갈래로 보기보다 선인과 악인으로만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하게했다. 백날천날 가르친다 한들 온몸으로 겪어낸 것들은 모든게 허풍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음을 보인다. 내가 그 일을 겪은 장본인인데 당신을 당해보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며 사람의 다면적인 부분은 결코 회수와 회개되지 않음을 어필하는 속앳말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사람은 대부분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누구나 진실을 털어놓고 싶어 한다. 거짓말 위에 세워진 삶이란 그 자체가 형벌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만 쉬쉬하게 만들면 온 세상이 모르게 될거라는 눈가리고 아웅의 현실화. 고보경과 천현숙 그들만 알고자 했던 일들. 홍은호가 홍기창의 입을 막으면 세상이 모를거라 여기던 행동. 고영혜가 전형수와의 관계를 이야기 말미까지 사실화 하지 못하던 이유. 옥호가 관내 사람이 아닌 해환에게 사건을 공유하는 상황. 그 둘의 관계는 진실이라 할 지라고 그 둘을 제외한 이가 둘을 마주하는 것에는 거짓이 선연하다. 각각의 집단과 소속이 정해둔 규칙을 어긴 상태였다. 헌데 그들은 각자의 원하는 바로 상황이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 거짓을 숨기고 거짓을 현실로 포장한다. 그러니 세상 모두가 청렴하지도, 결백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오늘 하루 마주할 얼굴들에서도 완벽한 내 편이 없고 확고한 적군도 없는 것 처럼.
📖지켜온 가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죄책감만 덜어주면 사람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고 해선 안 되는 행동을 한다는 말이에요. 일단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 사람이 스스로 멈출 수 있을까요? 이미 저질러버렸어요. 두 번 못할 이유는 뭡니까? 버튼을 누르면 얻게 될 이득은 분명해요.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다 보면 나중엔 버튼을 누르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게 될 겁니다.
홍은호의 집에 있던 유리상자를 생각한다. '누르지 마시오' 없던 호기심도 생기게 하는 빨간버튼과 글귀. 버튼을 누르면 쥐가 있는 공간의 바닥이 열린다. 쥐는 아래로 떨어지고, 빠르게 돌아가는 쇠로 된 날개에 갈려서 죽는다. 홍은호는 말한다. 상자 안에서 죽는 쥐는 솔직한 자신의 얼굴과 대면하는 뜻이기도 하다며 설마라며 눌러보는 사람과, 알면서도 누르는 사람들의 묘한 표정들을 그려보게 한다. 두려움과 희열 그 지점에 맞닿아있는 인간의 입꼬리와 미간의 움직임. 태초의 악인은 없다고 에필로그 속 치료감호소장 곽한진은 말했다. 그리고 해환 또한 뼛속부터 의인도 없다고 광심에게 말한다. 어느 시점인지 알 순 없으나 자기 내면의 악이 자라난 순간부터 주시하고 유혹에 맞서 싸우며 올바른 길을 택하느냐 그러지 못한 방향으로 마음을 기울이느냐의 차이 일 뿐. 티 없는 의인이나 악인이나 그 어떤 것도 무결한 존재는 없다는 걸 보여준다.
다들 그럴꺼잖아. 설마 그러겠냐며 눌러 볼까 하는 뿔 선 마음과, 절대 그래선 안된다며 손사래치는 도의적 마음이 공존한다는 걸 말이다.
맨 마지막 작가의 말에는 이 이야기를 내어둔 목적을 일러두었다. 다만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 '왜'가 더 중요하다고 믿을 뿐이다. 범행의 동기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범인의 얼굴을 갖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를 언급하며 사기꾼이나 위선자의 얼굴을 논하는 관상에 대한 지레 짐작과 첫인상 판별이 얼마나 위함한 짓인지도 내비치고있다. 그 누구도 범인의 얼굴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는 확고한 문장을 박아두며 수 많은 얼굴들을 곳곳에 숨쉬고있었다. 발로 뛰는 광심이나 추리를 공유받은 해환의 입장이 되어 염탐하듯 사건과 인물을 옅보게된다. 사건의 공익을 앞세운 진범과 공범을 가리며 죄악의 얼굴을 찾는게 중요할까? 나 아닌 사람에겐 호인이지만 나와 엮였을 때 악인이 될 수 있는 지극히 개인의 입장에서 범인의 몽타주를 솎아내는게 중요할까?
단순하게 내가 느끼는 사람의 좋고 싫음에 대한 이분법적 갈래로 편가르기를 하는게 맞을지. 티비예능 '꼬꼬무'의 이야기꾼이 어떠한 편에 서지 않고 제3자로서 내려다보는 방식을 이입하여 사람들을 살펴봐야할런지에 대한 선택지도 독자에게 남겨 둔 듯 하다.
다들 하나같이 어쩔 수 없었음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의미에서 옳다고 확신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끄집어 낸다. 그 시선의 높이와 온도, 사회적인 방향성이 어떻게 닿아있느냐에 따라 사형수가되고, 형사가 되며, 범죄 가담자가 될 수 있으니 이 또한 나 아닌 타인의 낯짝을 대하는 선입견 만큼이나 위험한 선 넘기가 될수도 있겠다.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 눈에 띄는 대단한 사람이 되진 않더라도 우리가 아는 그 상식선을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적어도 타인의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알아서 잘 사는 사람이자 그러한 낯빛으로 살고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