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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세대
백온유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평점 :

마냥 뜬구름 잡을듯한 허상의 이야기도 아니니 각각의 단편은 깊은 몰입감과 진한 자기 이입으로 이야기속 등장 인물들에게 베여들도록 만들어두었다. 치열하게 쓰고 다듬었다는 중단편들. 인물간의 구성은 현실에 있을법한 소재들이라 익숙함에서 오는 긴장감을 주었고, 인간의 모순의 과정을 지켜보게 만들다보니 나 또한 이러한 인간이 될 수도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느낌도 들었다.
헌신과 인내는 결국 보상될 것이라 믿는 관계 속에서 기만과 배신을 마주한 사람들을 비춰낸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 비롯하여, 친구,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작은 균열과 그 틈이 점점 벌어지는 순간을 마주하는 인물. 절대 허구가 될 수 없는 에피소드들 속에서 나의 헌신과 응원은 누군가에게 제대로 닿을수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을 낭창하게 담아두었다. 상대에겐 사사로운 결정이었거나 한 마디의 흘려 뱉는 답변이겠지만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그것이 그 사람과 멀어지는 시발점이자 결국엔 끊어내게 만드는 관계의 절단으로 봐야하는 순간이다. 스스로를 챙기려면 끊어내는게 맞지만 때때로 그럴 수 없는 형태의 인간을 마주 할 때 어찌 대처하면 좋을지 독자에게 해결 방안 모색의 시간을 마련 해 준 책이라 정의를 내려본다.

가장 기초적인 관계이며 자아 형성 이후 가장 처음 맞닥들이는 조합이 가족이다. 부모와 조부모의 애착관계 형성에 따라 좀 더 확장된 사회적 관계의 원만한 교류의 기회를 기대하게 되는데 연수(의탁과 위탁 사이), 현진(반의반의 반), 하나(내가 있어야 할 곳)에게서는 제대로 된 반듯한 형성의 꼴을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뒤틀린 마음이라 했다. 📖미세한 각도로 뒤틀린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따금 부모 간에 작은 언쟁이 있으면 다시 안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미지근한 슬픔을 느꼈다. 때가 되면 주저없이 손을 놓을 수 있도록 연수는 스스로 마음을 다졌고 점차 부모에게 받는 사랑에도 무감해졌다. 이것은 결핍에서 갈구하는 애절함이 현실을 마주하고 단념과 단절을 택한 방향으로서 감정에 호소하는 방향을 끊어내고 일단 살아내야한다는 현실에 인생을 밀어 넣었다고 할 수 있다. 감정은 나중 이야기이고 일단 성인이 되기 전까지 법적인 보호자들이라는 이들에게 기생하여 살아야함을 직시한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어린놈이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내야만 하는 여건이었음에 '애가 뭔 죄라고'라는 씁쓸한 혼잣말을 하게 만든다.

📖왜 나의 필요를 채워주려 할머니는 희생하지 않았을까. 궁극적으로 현진이 궁금해진 부분은 그것이었다. 할머니는 마땅히 그런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러기 위해 지금껏 부지한 목숨이라고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그런 존재. 라는 것으로 처음엔 이 상황을 겪으며 일반화된 가정과 비교하며 부정하게된다. 드라마에서든 고전 소설에서도 내리사랑이라 했고, 눈에 넣어도 안아픈 내새끼라는 듯 보듬고 귀하게 여기는게 어른과 아이의 관계였다고 좋은 면만 화두가 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아이들은 '왜 나를 낳아놓고 나를 탓하나'를 생각하며 존재의 가치마저 자학하는 경우를 마주하게된다. 버려진 동물과 식물은 잘도 데리고 왔으면서 자기 핏줄은 가장 후순위로 둔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가정솔루션 티비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심리상담에 대한 치료 센터 예약이 어려운 현실을 볼 때 행복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이유는 알게 모르게 당신들은 그러하지 못했으니 글 속에서라도 행복하고 싶었던 바람들이 녹여든 결과물이기도 했다. 문장에 녹아든 따뜻한 가정을 갈망했기에 어른들 세상에 정착하지못하고 부유하게 되는 아이들이 짠하게만 느껴진다.

혼자만 느낄 방구석 설움으로만 끝났으면 싶지만 세상을 이들을 가만히 냅두지 않았다. 세상은 더 냉정했고, 모두를 굽어 살핀다는 듯한 아량은 없다. 내가 이렇게 해주면 상대도 그에 상응하는 마음을 내어 줄 거라는 상부상조의 법칙은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영지(나의 살던 고향은), 광일(광일), 수영(회생)은 호의가 묵살 된 것 같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그들이라고 살아오면서 한번이라도 피해를 준 적이 없을까? 타인에게 해가 되도록 날을 세우거나 마음을 도려낸 적은 없었을까? 오롯이 자신만 보듬다보니 모르고 산 건 아니었을까! 믿음을 바라기만하고 제대로 된 믿음을 주긴 했나를 돌아 볼 때 각각의 인물들은 떳떳했는지 묻고싶다. 결국 도긴개긴으로 다 부서진 신뢰라는 폭탄 돌리기 수준이다. 📖이따금 신이 택시 기사의 모습을 빌려 사람들을 인도한다는 거예요. 인간은 자신이 신의 안내를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그 순간을 통과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건 기적적인 일이죠. 자신의 직업을 성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일을 존중하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 라 할 수 있지만 정도를 넘어선다면 자아도취에 빠진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간의 삶을 회상하는 혼잣말이나 손님과 광일 사이의 이야기 속 와이프에 대한 반응에 미간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일찍 오라는 말에, 저녁 해 둘테니 같이 먹자는 말에, 운전하는 사람에게 톡을 보낸다는 것에 그토록 과한 적개심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가장 가깝게 여기는 존재를 하대하는 과정 속에서 매번 우위에 있으려는 그의 욕망이 징그러워진다.
그 중 가장 멀리하고싶으며 억지로 연을 이어가려하는 상대가 진절머리나는 경우는 아마 수영이지 싶다. 신뢰의 정도, 믿음의 깊이, 거짓인걸 알지만 무조건 포용을 바라는 아량의 간섭. 한 사람의 거짓에서 시작되었다. 살아야 하니까 어떻게든 얻어내야 하니까 시작된 거짓은 진실을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했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짓의 시작점은 남보다 못한 관계의 단절이 되어버린다. 그 부서진 조각마저 하나하나 이어붙이며 괜찮다고 이렇게 모아두면 새것은 아니더라도 그럴듯한 비슷함을 보일거라는 착각에서 수영은 연지를 못 놓는다. 자신은 확실히 달라졌고, 직장도 다니며 반성하고 있음을 어필한다. 여전한 관계를 갈구하지만 연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피로할 뿐이다. 오로지 수영만 어쩔 수 없었다는 듯 그 때를 이해해달라는 낯짝을 볼 때 연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꽉 찬 이기심 속에서 너는 그 이기심이 더 나쁘다고 속이라도 시원하게 말해줬으면 싶기도했다. 혀를 차게 만드는, 남보다 못하다는 말이 머리속을 스쳤다.

이단 사이비의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어버리는 허상의 믿음. 내가 보는 것 보다 내가 바라는 것이 진실한 믿음이며 그 믿음이 세상을 바꿀거라는 과한 망상. 이렇게까지 빠져들며 나를 잠식시킨다면 헌신의 대가로 모든게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함이 피어있는 소재.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어그러진 믿음의 표본이다.
그리고, 설마설마 하며 보게되었던 일련의 사건(내 또래가 연관되었으니 모를 수 없다). 이모네 부부와 조카 하나의 과거와 현재. 어린 하나가 겪었던, 누구하나 입밖으로 꺼내어선 안되는 사건. 학교에서 왕따만 당하던 아이가 불순한 사건의 가담자가 되어 학교를 떠나야 하는 상황. 조부모의 주소로 이전해 자신만 전학을 갈지, 사연이 있어 한국을 떠난 이모네 부부가 있는 캐나다로 유학길에 오를 것인지에 대한 선택으로 어린 하나는 존재의 허탈함을 보인다. 의중은 묻지 않았으니까. 적응과 안정을 보일 즈음 하나는 다시 엄마의 손에 붙들려 한국으로 가버린다. 한참 시간이 지나 이모부도 세상을 떴고, 노년의 이모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정착하려 할 때 이모가 있어야 할 곳이 이곳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과 진짜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마주하게된다. 📖괜히 형제들 마음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것은 위선일까 허세일까 만용일까. 자신의 딸을 타국으로 보낼때완 다른 태도. 늙은 언니가 한국으로 돌아온다하니 그간 신세졌던 상황은 잊어버린듯 불편한 기색을 비추지만 정작 언니와의 통화해서는 무조건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다 준비해두었다는 말로 환대하는 목소리. 어느하나 일치되지 못하는 표정과 말들로 무엇을 빼앗길까 불안했던건지 생각해본다. 바라는 이는 없지만, 상대는 되려 빼앗길까 종종거리는 상반된 입장과 그 중심에 있는 하나.
헌신과 인내가 완벽한 보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때때로 바라지 않던 기만과 배신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그 관계를 끊어내는 게 맞을까, 만에 하나라는 마음으로 언젠가 자신의 의중을 깨우치고 상대가 뒤늦게라도 호의를 베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쥐고 사는게 맞을까. 믿음과 불신은 매번 그렇게 나란히 온다. 그래서 희망을 회수하러 왔다가 어딘가 모르게 찜찜하고 까끌거리는 현실만 덤으로 더 얻어가는 꼴들을 보았다. 각각의 단편들은 한 사람이 이 모든걸 겪어낼 순 없겠지만 주변에서 하나씩 나눠갖는 관계 속 떨떠름한 순간이기도 하다. 딱 내가 준 만큼만 받는 것 마저도 어려운 관계의 삶 속에서 우리는 헤프게 마음을 퍼주는 자선사업가의 삶을 살아야 마음이라도 편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계산기 튕겨가며 엑셀로 시트 만들어가며 내가 준 만큼 어느놈이 안주고 더줬나를 수치화 하며 눈알 붉히는 계산형 인간으로 살아야 할 까를 생각하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둘 다 완벽히 성에 차는 삶은 아니라서 한 놈에겐 손해보는 장사를 하더라도, 또 다른 놈에게는 악착같이 얻어내고 뜯어내는 반쪽짜리 인격으로 살 것 같아 반듯한 어른의 삶은 글러먹었으니 나의 주변인들에게 미리 사과의 말을 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