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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함윤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평점 :

소설은 아이와 어른, 그 모호한 지점에 걸쳐있는 무르고 여린 청년이 보는 노동자들의 세상을 보여주고있다. 다들 스무살 넘어서는 높은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게된다. 그 빡빡한 시간에 쫓기다 한방에 몰아 벌고 학교 다니기 위해 공장으로 취업하는 앳된 어른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가정과 학교가 쳐둔 든든한 가림막에서 자라던 아이가 이제는 제 스스로 땅을 고르고 딛고 일어서야하는 과정이며 부모뻘 되는 어른과 함께 일하면서 이게 진짜 사회의 현실이구나를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정전 속에는 두가지의 큰 감정을 놓아두고 노동과 사랑에 대한 비중을 하나씩 나눠 갖고 있으며 마지막에는 그 둘의 주제를 한데 모아 정전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만들었던 이유를 풀어낸다.
사랑은 매번 쌍방이 될 수 없음을 막과 은단, 막과 라히루의 상황을 예시처럼 놓아둔다. 수지와 영준으로 시선을 옮겨가더라도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종일 그 공간을 공유하더라도 이후의 삶마저 나란히 같이 둘 수 없음을 보여주고있다.
갓 성인이 된 주인공. 현실. 취업과 학업 이전에 먼저 준비 해 두어야하는 금전적 여유. 사회가 생각하는 스무살, 스물 한살의 대학생활과 맞바꾼 공장노동자로서의 위치 이동. 학교와는 또 다른 세상. 같은 건물을 쓰지만 출입하는 문이 다르고, 대우받지 못하는 낯선 관계와 계급. 정직원 계약직. 내국인과 외국인근로자. 일반 근로자와 노조 가입자. 산재를 두고 나뉘는 수습과 처우. 계약해지와 복직. 그만두더라도 갈 곳이 있는 대학생과 나라를 떠나야하는 외국인 근로자. 하나의 장면만 두고도 양갈래로 나뉘는 사람들. 그 속에 끼인 주인공. 같이 피켓을 들고 땡볕에 서 있어야 할지, 이미 돌아갈 자리가 있는 복학생으로 이 관계를 잘라낼지. 그 중간에 있는 막을 통해 과하게 이입할 여지를 두고있다. 당신이면 어떨런지, 막이 주저하는 마음을 질타 하는게 맞는지. 어쩌면 이게 당연한 머뭇거림은 아닐지를 제법 긴 분량으로 독자의 의중도 묻고있다.
정전을 책 제목으로 만들도록, 정전이 일어나길 바라는 심경을 끄집어내기 위해 이 판이 꾸려졌다. 정전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막은 주체가 되지 못한다. 졸업식에서 언급했던 은단이 있었고, 은단의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현상이었다. 은단이 막에게만 토로했던 이유를, 은단이 왜 그러한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은단은 막과 함께 할때엔 소극적이며 주눅들어있다. 자신의 능력을 유일하게 공개한 건 은단 본인인데 왜 되려 죄지은 사람 마냥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풀어낼 둘의 서사가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막은 여자, 은단은 남자. 으레 아는 청춘물 로맨스의 성별 특징들 마저 꼬아두었으니 고등학교 졸업 이전, 더 어린시절의 둘에게 무언가가 있었던 것인데. 놀이터에서 떨어져 피나고 응급실에 실려가기 전부터의 성장 서사들은 다음 소설로 옮겨가 이어질지도 궁금해진다. 이건 독자의 세계관에서 맘대로 이야기가 펼쳐지도록 놔 둘 것인지. 책 제목처럼 정전을 위한 정전의 장치로서만 은단을 등장시켰는지 저자에게 묻고싶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장 전체가 정전이 되면, 하루만이라도 그 안이 멈춘다면, 그로인해 모든 일들이 꼬여버리면 속이라도 시원하리라 여기는 막의 시선. 잠깐의 정전으로 피해가 생긴다면 다치고 보호받지 못한채 자국으로 쫓겨나던 라히루를 대신하여 통쾌한 복수를 꿈꾸는 '잠깐 일하러 왔던 대학생'. 당장의 생계가 걸려있지 않는 어정쩡한 위치이자 엄마아빠 뻘과 함께 일하던 꼬맹이가 바라는 얄풋한 변화. 만약 막이 좀 더 확고한 노동시장의 변화와 개선을 바란거였다면 천막에서 주저했고, 수지와 밥을 먹으며 마주한 순간들을 곱씹고 깨우친 후 다방면으로 알아본 후 기성세대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 사건을 알리고 공론화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상황으로 흘러간다면 이건 진짜 책에만 있는 이야기로 뭔가 붕 떠버렸을지도 모른다. 근로, 투쟁, 개선, 노조, 단합이라는 말은 잘 모르겠고, 마음이 가던 동료이자 친구였고 이제는 맘 편히 볼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얄궂은 상황에 뿔이난 마음을 드러내는 복수라 표현하는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수지가 주변을 살피고 도모하는 마음도, 영준이 걱정하는 이유도, 서영이 막을 보내려했던 감정에서도 전류가 흐른다. 이건 은단이 막아 설 수 없는 또다른 전파의 이동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하고자 마음을 먹은 막의 결심도 라히루를 위한 심경의 전류였을테니 말이다. 의도하고 흘려내는 전류는 끊어 낼 지언정 관계를 엮어두고 살아가는 세상에는 완전한 정전은 없음을 보인다.
학비와 생활비 벌려고 잠깐 눌러 앉았다가 사라지겠노라 마음은 먹었지만 돈보다 더 큰 마음의 섬광을 얻어낸 막. 노동환경에서 큰 획을 그을만한 대성할 인물이 되리라곤 장담 못 하겠다. 다만 동료의 불이익에 함께 분노 할 줄 알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불이익을 감내하면서도 애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 감사한 마음을 절대 흔하고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아는 어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