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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평점 :

짙고 탁한 표지. 그리고 검은 띠지와 유난히 눈에 띄는 흰색 글씨로 언니의 소진사를 앞에 두고있는 책. 담배를 피우며 독자와 눈싸움하듯 진하게 바라보고있는 시선. 헌데 이 띠지와 책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양장본의 진짜 표지. 장례식장 상복과 두줄의 상주완장. 어느 것 하나 쉽게 풀어지지 않을 서사의 중심에 있는 저자 사진들. 엄마, 딸, 미치년, 역사. 이 모든 단어들의 총체적인 결합이 책 제목이니 어느 단락 하나 쉬운 삶의 구석은 없으리라 짐작가게 만든다. 그래서 궁금했다.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겪었을 세상을. 책 전체의 표지는 어둡지만, 양장의 은장본은 또 한없이 화려하다. 화려한 것만 눈여겨 보기엔 이 사람의 세상은 어둠도 깊었으리라 간주하며 시작한다.

📖여러 어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한 기억은 많지만, 막상 어른들에게 적절한 보호화 도움을 받으며 자란 것 같지가 않다. 반복되는 갈증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어리다고 모르는 감정이 아니다. 이건 말을 하기 전 유아기에도 느끼는 소외감이다. 쟤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될까 하는 마음 속 덩어리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으며 과거의 순간과 현재의 상황까지 이어저 멍울이 커지고 자극을 받아 더욱 크고 딱딱하게 자신을 누르게된다. 더 열심히살고, 애쓴들 눈 밖에 난 사람은 그 애틋함을 받아먹고 자라질 못한다. 행동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상황과 위치가 문제였다.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권한. 태어남과 동시에 선긋기가 이뤄진 다른 부류의 취급. 그래서 조갈난 사람처럼 갈구하고 바라게된다. 시선 한 번, 손길 한 번이 대수냐 싶지만 그마저도 해주지 않아 마음이 매번 땅 밑으로 꺼지는 걸 경험한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가족이 필요하다'며 울었다. 언니가 필요로 했던 가족은 아마 건강한 가족이었겠지만, 우리가 가진 가족은 너무 하역했고 결핍투성이였다. 언니는 그들에게 힘을 보태느라 자기 힘을 다 소진해버렸다. 나는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은 뭐라고 부를까. 소진사? 가끔 그렇게 가진 힘을 다 소진하고 죽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다. 평생 남을 위해 살던 사람들.
건강한 가족. 사랑을 준 만큼 돌려 받을 수 있는 관계로서의 기대감. 그래서 그 과정이 행복함으로 여겨지는 순환. 부모를 정할 수 없다면 관계성을 어떻게는 바로잡고 싶었기에 애를 써왔을 일련의 시간들. 시쳇말로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하지 않던가.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소진한 딸과 손녀를 본다면 어떠한 충격이라도 받아서 그간 해왔던 일들에 반성과 성찰이 이어져야 할텐데, 결국은 자기가 편한 방향으로 걱정을 고쳐먹고 있었다. 이제 니네 할머니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하냐는 식의 말로 저자를 두고 다음은 네 차례임을 시사하는 눈빛과 말들. 그래서 저자는 언니의 죽음이 더욱 애틋하다. 결국 알아야 할 사람들은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 갑갑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가는 시간과 고통스러운 마음이 얼굴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게다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데 다시 겪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알기 때문에 무서웠고, 그래서 더 빡세게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내가 제일 먼저 죽고 싶었다.
남편과 생과 사에 대한 이야길 한 적이 있다. 누가 먼저 태어난 것과는 상관없이 죽음은 순서가 없더라는 말을 하며, 이 세상에 결국 의지하며 살아갈 곳이라 함은 당신과 나 뿐인데, 자식도 없는 우리가 어떻게 버티고 남은 여생을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었다. 시작은 잠들기 전 우스갯소리로 하던 것이 점점 진지하고 깊게 들어가게 만드는 훗날의 이야기들. 직접적인 죽음 못지 않게 남겨진 사람이 감당해야할 빈자리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으로 간주되었다. 서로만 바라보며 의지하고 비빌언덕이라 맘껏 부비적거리며 살았는데 그게 없다면 생살을 뜯어낸 자리 만큼이라 쓰리고 화끈거리며 눈물만 줄줄 흘러대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래서 나도 저자처럼 똑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죽을게. 나는 당신 없는 세상 감당 할 자신이 없어. 뭐, 이게 맘대로 안된다면 당신 죽을 때 나도 순장 시켜달라하지 모. 라며 애써 밝게 마무리를 했었다. 그냥 내가 내 몫의 모든걸 다 끝내 놓고 후련하게 선빵 칠게. 뒷일 감당은 당최 자신이 없다구.

📖우리는 사랑하고 우리 사랑은 끝이 없는데.
이 세상의 시간과 수명이 끝이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 신호를 나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뭐 하나 쉬운게 없다. 헌데 더 얄미운건 일련의 사건들이 적당히라는 걸 모른다. 이정도 했으면 그만해도 될텐데라는 생각을 갖게하지만, 삶은 매번 야속하게 뒷통수를 치기 일수이고, 약올리듯 더한걸 안겨준다. 겪어오다보면 맷집이라는게 생기기 마련일텐데 매번 새롭고 매번 버겁다. 그게 저자의 삶에도 해당되고 있었다. 자식은 부모를 고를 수 없는데 부모는 자식을 골라서 애틋해한다. 멀쩡하면 핸디캡이 더 크게 부여가된다. 자식놈들 중 안아픈 손가락 어디있겠냐는 옛말과는 달리 유달리 아픈 손가락이 더욱 애틋하고 손이가며 마음을 쏟게된다. 멀쩡해서 손해보고, 먼저 낳아져서 불리한 세상. 그게 랑의 언니가 겪어야했던 장녀병일지도 모르고, 이후 랑이 겪어야하는 조부모의 돌봄과 배웅의 역할 돌려막기 일 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에 으레 그러하듯 생기니까 낳았을텐데 그러면 낳았으면 좀 애틋하게 여겨주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놈의 대가 끊길까봐 더 낳은 자식. 조부모 또한 아들만 싸고 품다가 결국 모든걸 잃고 생의 끝은 딸에게, 손녀에게 맡겨지게되는 생의 끝을 보여준다. 다 주면 다 뺏들어먹고 버려지는 단물빠진 껌 같은 삶으로 할머니는 생의 마침표. 노년의 끝. 그거라면 그러려니 할 지도 모른다. 헌데 저자의 생에 죽음은 그러한 노년의 마침표가 먼저가 아니었다. 주변인들이 한국 기대 수명이라 여겨지는 삶을 반도 채우지 못하고 소멸해버린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팠다. 자신을 기특히 여기고 가엾게 보살폈어야하는데 그건 매번 후순위로 두다보니 이지경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삶을 봐오다보니 자신의 일부가 사라지는 듯 하여 어떻게 해서든 병원비를 마련해 보태기도하고, 자신의 컨디션을 갉아먹어가며 금전이든 심적이든 마음을 덧붙여 살게 만든다. 그러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아등바등 한들 끝은 정해져있었다. 애써봤자 소용 없다는 뉘앙스의 끝. 이 다양한 죽음이 이랑을 기준점 삼아 닿아있는 관계에 계속 퍼지는 것 같아 '괜찮을까? 괜찮은가? 쓰읍- 괜찮아야 할텐데...'를 연신 중얼거리게 만든다. 나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은데 살아준다. 죽음에 대해 생각은 하지만 무 썰듯 썩둑 잘라내지 않아 감사하다. 그랬다면 이 책도, 이 마음의 공유도 없었겠지.
나와 비슷한 연배의 부모님, 나와 비슷한 형제관계. 그래서 더 깊게 이입하게되고, 특히나 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구절에서는 손가락 끝이 찌릿하며 따끔거리는 느낌마저 들게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첫차가 프라이드라는 것 까지 닮아있는데 어떻게 이 글과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언니와 동생의 다른 성향. 나의 자매님도 그러하다. 한없이 괄괄하고 가시를 드러내고 휘지 못하고 부러져버리는 이구역 개딸로 통하는 나와 달리 한없이 유순하고 화가 없으며 어떻게든 유연하게 풀어내고자하는 심성이 곱고 눈물이 많으며 참는게 많은 언니. 그래서 어릴적 내복바람으로 쫒겨나는 일이 있을 때에 씩씩거리며 눈물 삼키는건 동생인 내 몫이었고, 맨날 지고 뺏기고 울음보 터지는건 언니의 역할이었다. 아마 그녀도 알게모르게 장녀병이 깊게 박혀있으리라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다른 성향의 자매가 부모를 보살피는 과정. 충돌이 있을 순 있지만 어디다 내어놓기 부끄러운 사정까지 유일한 공유자가 되니 나이가 들 수록 더욱 의지하고 기댈 수 밖에 없었을 텐데 언니의 소진사는 동생의 세상의 큰 흔들림이었을 것이다.(여기서 입장을 바꿔 내가 랑의 상태였다면 언니의 자리를 메꿀까. 더더욱 철저하게 외면 해 버릴까. 그건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례다)
저자가 자신이 소유하고 쌓아두고 있던 것들을 정리하는 단락이 있다. 모든걸 품어두고 싶었던 시절, 이걸 꼭 쟁여놔야 마음이 든든하고, 내 것으로 삼고 싶었던 이력의 결과물들. 하지만 결국 다 놓고 가버리는게 생(生)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쓰레기봉투에 한껏 욱여넣고, 내다 버리는 순간을 마주 할 때 비슷한 울렁임을 느꼈던게 떠올랐다. 시모의 장례를 치른 후 그녀가 남긴 모든 흔적을 찾아내고 버리고 태워가는 일련의 시간들. 주인을 잃은 것들은 더이상 손이 타지 않을 것임을 아는지 먼지도 빨리 쌓이는 듯 하고, 색도 빨리 바랜다. 모든건 찾아주고 알아주어야 빛이 난 다는 건 사람이든 사물이든 동일한 현상이라는 걸 느끼면서 이 걸 치우는 남겨진 자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덜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비쳤다. 자신은 수도 없이 해본 일들이니까 자신을 아는 그들에게 이딴 설움의 순간은 덜 만들어주고자 하는 오지랖의 발동이라 더욱 짠한 마음이 깊게 박혔다. 독자로서 잔소리를 하자면 '그런걸 왜 니가 걱정해!' 라는 말로 등짝 시원하게 후려치며 흔적지우기를 말리고싶어진다. '그런거 안 치우게 할라면 나보다 더 오래 살든가!' 로 되려 성질을 내어보고싶어지는 죽음 차단용 잔소리 스매싱인거지.
살면서 이런 일들 안 겪어 본 사람 어디 있겠냐며 각자의 고생과 설움 배틀을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사나흘 내리 말 할 수 있는게 지금을 살아가는 내 나이 또래이자 저자 또래의 어른이지만 어른이길 꺼려하는 사람들의 세상일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죽어도 나는 물을 찾아 마시고, 꾸역꾸역 밥을 목구멍에 밀어넣고, 장례식장 한 켠에서 잠을 자게 될 것이며 또 안간힘을 다해 그리워하며 통곡을 할 것이다. 현실을 직시 한 후 떠난이의 몫을 마음 한 켠에 밀어 넣고 그 마음과 함께 살아 내게 됨을 겪을 것이다. 어쩌겠어, 삶은 유한하고 각자가 쥔 생의 질량까지 제각각인 것을.
내가 아는 그녀들이 쫀쫀한 목폴라를 입고 있는 기분보다 따뜻하고 폭닥한 머플러를 감고 있는 기분으로 살길, 정신이 붕붕 떠올라서 바닥이 닿지 않는 저릿한 기분보다 세상을 가뿟하게 나는 듯한 구름위의 나른함으로 살기를, 불안과 걱정으로 땅이 울렁이는 기분보다는 이렇게 사는게 재미진 삶 아니겠냐며 덩실덩실 발을 구르며 잔망스러운 걸음으로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살기를 그렇게 몸의 기억을 비틀어 또 다른 미친년의 역사를 이어 가 주길 바라게된다. 혼자서 못하겠다면 세상의 딸들 중 일부인 나부터 동참하겠다 손 번쩍 들어본다.
📖출판사 이야기장수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