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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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와 배신, 침묵과 공모 같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며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속이려 한다고 전했다. 더 나은 삶이 아닌 덜 거짓된 삶을 향한 것에 중점을 두었고 가족, 사랑, 노동, 돈, 계급 등 이러한 삶의 조건이 인물에 씌워졌을 때 책속에만 있는 것이 아닌 사실감 넘치는 주변인이 되어 이야기의 집중도를 높이며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 인냥 내 세상에 자연스레 스미게된다.



📖이름 없는 마음_ 굽은 어깨로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며 '지겨워'와 '미안해' 사이를 오갔을 현권의 마음. 그 마음만은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누나의 시선에서 남동생은 제 한입 건사하지 못하는 모지리로 보여진다. 준희에게 현권은 그런 존재다. 저놈이 어디가서 사람구실이나 할까 싶어하며 전여친에게도 호구잡히는거 같아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인 듯한 챙김과 보살핌같아 저놈을 어찌해야하나 라는 생각만 가득하다. 스스로 살아가는 걸 터득하게 하고는 싶으나 시선 밖으로 나가면 되려 준희가 불안해져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에 대한 해결을 준희의 멋대로 꾸려둔다. 이게 누나의 소임인냥 생각했고 이렇게 해야만 어디가서 밉보이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모든걸 자초한다.

하지만 준희의 마음과는 다르게 현권은 부담과 거추장스러움을 비친다. 이건 누굴 위한 친절이고 누굴 위한 배려의 결과일까. 요청 한 적 없는 선의와 짐짓 예상하고 미리 선수치듯 자초하는 마음은 수요없는 공급이며 결과보단 과정에만 뿌듯해하는 나눔을 통해 정착되지 못한 마음만 둥둥 떠다닐 뿐이다.

📖너 하는 그 일_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내리막을 달려 곤두박질치는 일뿐이었다.

제법 긴 기간 하고있는 공부. 시험이 끝난 뒤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며 생활하는 태은. 같이 살진 않는 엄마의 안부와 함께 이어지는 엄마와의 일터 동행. 태은에게 엄마는 이해하려해도 이해안되는 사람이다. 엄마는 함께사는 남자들에게 제대로 된 대접한번 못 받는 사람이었다. 태은의 친부에게도, 친부가 죽고 만난 아저씨에게도 하대받지만 엄마는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그들을 옹호하는것이 마뜩잖을 뿐이다.

물류센터에서 도망 치듯 엄마도 엄마의 삶에서 도망이라는걸 시도했다면 태은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을까. 측은과 못마땅, 울화까지. 엄마가 남자들에게 도망치지 못하는 것, 태은역시 될거라는 기대감으로 가채점과 커트라인 속에 메여있는 과정은 결국 둘다 멈추지 못해서 곤두박질이라도 치고있으니 어쩔 수 없는 그 엄마의 그 딸이라는 결론밖에 없었다.



📖부부생활_ 근데 일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야? 각자의 사정에서 할 일을 하는 거지, 내가 대통령도 아니고 사명감은 무슨.

학원을 운영하는 구영수. 병원생활을 하던 어머니는 아들인 영수보다 요양보호사였던 진희와 더 오랜 시간 함께한다. 짝이 없던 영수는 어머니가 자신과 진희를 맺어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호감을 넘어 혼인신고까지 하며 함께 남은 생을 이어가기로한다. 사명감이 아니라 제 몫의 일을 했을 뿐인 진희. 영수가 반하게된 타이밍. 어떻게 빠지게 되는지는 각자의 시나리오에 어떻게 끼워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보여주고있었다.



📖부부생활_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사실. 서로의 인생을 완벽히 저당 잡았다는 사실. 네가 나를 망하게 할 수 있다면, 나도 너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불안한 사실이 주는 안정감. 그 결속을 이뤄낸 성취감으로 구영수는 살아 갈 수 있었다.

학원 운영이 잘 되던시기도 있었고, 요양보호자의 직업을 갖고있는 진희와 맞벌이를 하며 살아가며 집안을 어떻게 돌볼지에대한 여느 부부와 같은 생각와 의견 충돌. 같이 경제활동을 하지만 누구의 소득이 많으냐에 따라 살림살이의 비중을 재게 되는 순간까지.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소득의 격차는 영수에서 진희쪽으로 넘어가게되는 과정. 어느 집이든 다 있을법한 고민에서 한단계 진화된 그들의 결론. 부부 일심동체가 이 대목에서 나올줄은 몰랐지.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_ 그래서 나는 믿기 좋은 만큼의 진실만 말해야 피곤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배웠기 때문이다.

기억은 내가 갖고 싶은 대로 남겨지고 편집되어진다. 이 왜곡의 과정은 결국 내가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운다. 엄마와 함께 낯선 동네 낯선 집으로 이사를하고 그곳을 꾸리며 살아가면 그래도 행복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하나씩 꾸려간다는 기쁨은 행복을 재정비 한다는 기쁜 착각을 하게하지만 그곳은 결국 함께가 아니라 엄마 좋으라고 꾸려진 세상이었다는 것에 씁쓸함만 남기게한다.

보고 들은 것을 모두 말한다면 그 밤을 몇번이며 복기하고 진술해야한다는 걸 터득한다. 이딴 사건에 덜 휘둘리고 덜 엮이고자 한다면 보고도 못본척 들어도 못들은척 그렇게 자체적인 필터링을 통해 묶어두고 덮어두는게 내 숨구멍을 지키는 일임을 보여주는 아주 깔깔한 세상의 이치였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모두 정답이 아니라는 것. 이건 백마디 말을 한들 와닿지 않는다. 주변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거울치료가 이뤄져야 좀 더 명확하게 와닿고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누군가에게 고려되지 않던 예시 중 하나일 수가 있다는 점은 어떠한 관계이든 예외는 없음을 보여준다. 삶의 방식이 완벽히 다른 누나와 남동생 사이. 잘 알고 지낸다 여기던 대표와 직원, 서로의 삶을 이해못하는 엄마와 딸, 더 좋은 여건에서 살길 바라는 부모와 자식, 평생 다르게 살다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부부 사이. 이들은 가장 가깝고도 가장 잘 알고 있는 서로임을 자부하지만 속내를 알기는 어렵다는 것.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드럽게 안 맞는다는 사실 또한 꽤나 씁쓸하고 텁텁한 결론을 주기도 한다.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다 모르는 것들이라는 건 심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너무 가까워서 미쳐 보지 못했던 시야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수월하기도 하다. 살짝 멀어져야 보이는 관계도 있다는 것. 너는 내가 아니니 나도 너로 살 수 없다는 걸 잊을 때마다 상기시켜야한다.

그래서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만이라도 알고만 싶어진다. 보여지는 것 만이라도 또렷하게 알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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