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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유언
구민정.오효정 지음 / 스위밍꿀 / 2025년 2월
평점 :

명랑하게 유언을 남길거라는 아주 기깔난 포부로 책 제목을 지은 것 같지만 사실은 툭 치면 눈물 뿌엥 터지는 물만두같은 그녀들의 웃고는 있는데 눈물나는 이야기였다. 나의 또래의 이야기였고, 그래서 더 울컥울컥 멍울이 터지는 울음이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잘 살고 싶었던 애쓰던 그대들이었기에 마음이 쓰였다. 결국 우린 또 생을 마감한 자와 남겨진 자로서의 각자의 다른 노선의 삶을 살아야한다. 그걸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한 생각들을 하며 두 사람의 나란한 걸음이 아닌 혼자만의 의미있는 걸음에 힘을 보태게된다.
1장은 서로를 알리는 자기소개서와 같은 이야기들이었다면 2장에서는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세상과 그걸 비웃기라도 하는 오PD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내어놓는다. 3장은 멈추고 싶은 시간. 이제 끝이 보이는 오PD의 생의 시간들과 4장에선 남겨진 구PD와 그들의 반려견 태양, 그리고 오PD의 남겨진 가족. 멈춰있던 시간이 자연스레 흘러가고 나만 이런 일이 일어난게 아님을, 다들 그렇게 이별하고 살아내고 있음을 구PD 주변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든 살아지더라는 생의 순리를 얻게된다.
방송국 놈들의 세계는 진짜 밤낮이 뭐야 개인의 시간마저도 없는 사람들이다. 열정을 갈아내고 자신을 쏟아내어야만 1인분의 몫을 할 수 있는 세계에서 십이 년간 방송 콘텐츠를 만들어온 KBS PD 구민정과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온 십이 년차 프리랜서 PD 오효정. 그들이 공동으로 연출하는 작품을 통해 소울메이트가 된다. 서간문 같지만 각자가 피디로서 살아 갈 수 밖에 없던 그간의 시간들과 이 작품을 통해 마음을 공유하고 생의 마지막을 맡겨보면서 한 사람의 생이 저물고, 그걸 오롯이 바라보는 자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들은 중년도 노년도 아니다. 한창 피워낼 화력 좋은 30대 초반의 화사한 인생이 다른 의미로 순식간에 져버리는것에 대한 과정을 가족도 학창시절 짝꿍도 아닌 다 커서 만난 동종업계 동료 연출자의 시선으로 문장을 구성해낸다. 꿈과 열정을 무기삼아 전력질주하던 두 주자가 속도를 멈추고 자분자분 걸으며 숨고르기보다 더한 낮은 자세로 세상을 마주한다. 타인의 강요도 아니고, 장본인의 요청도 아닌 으레 당연하게 내가 해주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생의 마지막 여행과 세상과의 안녕, 그리고 죽은 이후 빈소에서 가족 아닌 타인이 장례의 세세한 부분까지 다 담당하게된다. 혈연,학연,지연, 이딴거 필요없는 인연이 주는 부럽고도 눈물나는 관계의 진득함이 있다.

📖서문_ 살아 숨쉬는 게 너무도 당연해서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다면, 이 글은 당신의 남은 시간을 떠올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꿈을 좇아 일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꿈과 현실 사이에서 허덕이는 당신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당신에게 이 글이 어떤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효정은 암 판정을 받던 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인 채로, '누가 날 좀 안아줬으면'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썼다. 당신이 누구든, 어떤 상태에 있든 이 글이 그렇게 당신을 안아줄 수 있다면 좋겠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내 주변, 그보다 순서의 새치기로 인해 내가 될 수 도 있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되는 나이에 이르렀다. 30대 후반에서부터 시작된 생각은 30대 끄트머리에 다다르니 이 불안감이 극에 달한 듯 하다. 이놈의 잡념은 희안한대로 가지를 치고 나가서 불안을 키운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가 생소하게 여길 수 없는 독자로서 에세이를 마주하게 만들었다.
효정은 말한다. '누가 날 좀 안아줬으면' 이라는 마음. 이 책을 완독 한 그날 밤 그 마음이 어떤건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먼저 잠에 드는 와이프의 수면 양말을 신겨주고 이불을 반듯하게 덮어 준 후 곁에 누워 고생했다고 안아주는 사람의 품에서 후두둑 눈물이 쏟아지더라. 끅끅 거리거나 꺼이꺼이 울어제끼는 그런 서러운 울음 말고, 그냥 후두둑 어찌 할 방도 없이 떨어지던 그런 눈물이었다. 며칠 세게 아프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건지 왜 그러냐 채근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안겨 눈물을 왕창 흘려보냈었다.
효정은 이런 마음이 필요했나보다. 어떠한 말보다 그냥 안아주고 바라봐주는 사람의 온기. 그게 필요했나보다. 때로는 묻지 않아도 다 알겠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를 또 한번 절실하게 느끼게 했다.

📖느려진 발걸음으로_ 무언가 꿈꾸고 생산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일이 있다는 믿음으로, 효정은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고 싶어했다.
민정과 효정을 알지 않을까. 쉬는 것 마저도 일의 연속성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생산성을 빼앗기고 의미를 소실하게되면 나라는 존재의 자체마저도 희미해진다는 것. 그래서 세상이 쉬어가도 된다는 듯 이유를 만들어줘도 내가 용납하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 효정을 더 다급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쓸모 없는 사람 처럼 여겨질까봐,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라는 사람이 영영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는 허상의 존재가 되어 버릴까봐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갈 가닥을 잡고싶었으리라 보여졌다.
나의 부모들에게 안부차 전화하면 매번 하는 이야기가 있다. 좀 쉬시라고. 쉬어도 된다고. 하지만 일평생 그리 하지 못한 사람은 쉬는 방식을 모른다. 또한 쉬는 것 보다 무언가를 하는 것에 있어 시간도 잘 가고, 존재의 이유를 찾는 느낌을 받는다. 느려도, 그 결과가 원대하지 않더라도 무언갈 해 내었다는 흔적을 남기고픈 사람들의 마음. 그걸 나무라거나 없신여기지 않아야 함을 또 한번 배운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고, 가족의 반대도 이겨낸 귀한 목표였다. 그걸 이루고나면 탄탄대로 일 것 같았고, 모두가 자신을 반길거라 생각했지만 매번 버거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나를 한없이 쥐어짜는 과정이었고, 그 방식에 조금식 익숙 해 질 즈음 제동장치가 걸린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 책은 명랑한 유언이 아니라 명랑한 성공기로 바뀌어 출간되었겠지. 극복의 연속성을 띤 연출 기깔나게 잘 하는 콤비로 말이다.
시작과 끝이 있듯 탄생과 죽음이 있는건 당연한 순리이지만 이 타이밍에 나와선 안 될 섣부르다 싶은 생의 단절과도 같았다. 그래서 전력질주 하던 그들의 쉼이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지 어떠한 작용이 되어 줄 지는 각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시작을 내가 명명하지 못했던 것 처럼 끝나는 시점도 모른다. 그냥 나는 그 생의 트랙에 올려진 상황일 뿐이다. 매번 느끼는 이 감정들이 어느 시점에선 마지막의 감정과 마지막 한 마디가 될 수 도 있음을 느끼게된다면 이 책 속 두 사람처럼 의연하고도 명랑하고, 또 가끔은 덜 명랑하면 어떤가 싶을 정도로 마음이 왈랑거리게되곤 한다.
나는 평생 명랑한 작별도 명랑한 유언도 못 해먹을 미련많은 인간이다. 그래서 이 마음이 괜히 미워진다.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내 삶을 대하고 유쾌하게 살아봐야 할까. 슬럼프인지 단순히 몸이 괴로워서 마음이 삐딱해진 상태인지는 도통 가닥을 못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나를 정신차리게 만들었고, 그래도 너는 내일까지는 살 수 있지 않냐며 살아 낼 수 있을 때 잘해! 라는 듯 감정의 나태지옥에서 끄집어내어 쫌! 잘 살아보라 정신차리게 만들어주는 에세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