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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자들 ㅣ 위픽
백온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평점 :

공포 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보다 공포 소설에서 느껴지는 비애에 마음을 더 쏟아보는 것. 죽음이라는 것이 내 마음에 닿을 때 아리다는 마음이 더 크게 번지는 것에 눈을 돌린 작가의 생각들로 시작된 책이다.
최측근의 장례를 치러본 자라면 저자가 분석한 공포 소설의 플롯이 공포을 배제한 서글픈 마음이 크다는걸 알 것이다. 슬픔에 잠긴 유가족은 제발 내 가족이 살아나길 기도 할 것이며, 늦은밤 무언가가 현관문을 두드릴 때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확신. 그래서 문을 여는 것에 주저하는 손끝이 죽은 이를 더 서글프게 만드는건 아닐지에 대한 감정은 공포라는 것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마음들일 것이다.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르겠지, 그런데 나는 겪어봤고 그게 다들 한번쯤은 하게되는 슬픈 망상이라는 것을 염두에두고 저자의 이야기에 집중해봤다.
윤아, 지현 그리고 태화. 주된 인물들은 고작 셋인데 그들이 살아온 어린 시절과 나 큰 어른이지만 어디에도 끈끈하게 얽히지 못한 사이들.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글인데도 문장이 끝날 때 마다 스틸컷처럼 회상과 현재를 돌아오는 이야기마다 또렷하게 장면이 머릿속에 박히게 만든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태화의 죽음. 지현과 윤아는 장례를 치뤄주기 위해 구청에 확인를 한 후 시신 인도를 위해 알아본다. 보육원에서 같이 자라왔고 성인이 된 후 가족 이상으로 연락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온 사람들. 하지만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서류 어느 곳에도 셋은 엮이지 않은 관계라는 것. 어떻게든 태화를 편히 보내주기 위해 가족이 아니더라도 장례를 치뤄준 사례를 찾아보며 무연고자 장례가 아닌 그를 기억하고 보내줄 수 있는 단독 장례를 준비하게된다. 시신을 책임 지겠다는 것 만큼이나 세상은 그에 대한 대가인 금전적 지불을 당연시 생각하고 있으며 구청 직원 또한 못해도 천만원의 장례 비용을 서류상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아니면서도 해주려는 그 마음들에 의아함을 가진다.
윤아가 태화를 기억 할 수 밖에 없는 또렷한 처음. 태화는 처연한 미니시리즈 주인공과 같은 클리셰로 엄마에게 버려졌고, 윤아 또한 제 살길 찾아가는 엄마로 인해 시간차는 있지만 태화처럼 가족과의 연이 끊기고 혼자가 된다. 그렇게 보육원에서의 돌봄이 끝나고 성인이 된 여린 어른들. 그곳에서 함께 했던 셋은 서로를 챙겼고 가족이든 친구든 어떠한 관계라 단정짓기 모호할 관계로 서로를 쥐고 있었다.
그랬는데 태화는 갔다. 분명 밤마다 찾아와 라면도 끓여달라 했었고 거미도 잡아준다 했었고, 어두운 밤과 같은 설움의 날을 공유했는데 이미 죽은지 제법 되었다는 소식. 시신이 발견된 당일에도 윤아를 찾아왔다. 눈앞의 태화와 실재하는 태하는 모두 윤아가 아는 태화가 맞았다. 다만 하고픈 말을 다 마치지 못한 태화과 있었고, 입을 굳게 다문 채 모든 감정을 혼자 견디리라 다짐한 태화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다.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나다보면 그 안에서 연대하는 설움이 서로를 좀먹게 될까봐 그냥 잘 지내겠거니 싶어하는 마음에서 마침표를 찍어두는 방식.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추억팔이라며 옛 이야길 하다보면 각자의 어린시절 버려진 이야기, 눈치보며 살아왔던 보육원에서의 삶을 늘어놓는 이른바 불행배틀이 끊임없이 어이질까봐 슬쩍 발을 빼어보며 야금야금 멀어지는 방식을 택하는 것. 그래서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로 애써 위안을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헌데 생각해보면 이미 겪을대로 다 겪어온 굴곡진 삶이라 생각보다 담담하고 의연하게 그 상태 그대로 태화는 윤아 앞에 나타난걸로 보였다. 버려지던 과정을, 버려진 이후의 삶을, 여전히 혼자만 바라게되는 관계의 회복과 씁쓸한 현실을. 태화의 일생을 다 아는 누가봐도 남인 윤아라면 그저 들어주거나 말하길 기다려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겠지. 연고자가 아니니까 서럽게 울어주진 않을테고 담담하게 들어주긴 할 테니까.

📖다른 사람들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끈끈하고 소중하기를. 가끔씩은 서로의 삶에 행패 부리기를. 미안함이라고는 모르고 뻔뻔하게 착취하기를. 그러고도 당연하다는 듯 서로의 곁을 지켜내기를.
버리는 걸 알았다. 그리고 기억 조작 마저 하려했던 낳기만 한 엄마였다. 다들 아니라 해도 찾고싶었고, 찾았지만 역시나 온전한 가족이 되진 못했다. 태화는 또 한번 버려졌다. 어린 태화처럼 어른 태화도 또 겪어낸 것이었다. 왜 찾았을까, 왜 일방적인 그리움을 쌓아뒀을까. 그러고보면 세상이 정한 굴레에 맞춰 엮여있는 사람만이 내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닿게 된다. 차라리 남이 더 애틋했던 세상도 있고, 타인에게 얻어낼 수 있는 위로도 있는 관계도 있다는 것. 살면서 같이 밥 먹는게 열 손가락에 세어봐지긴 할까 싶은 피를 나눈 이들 말고, 띄엄띄엄 전화해도 마치 어제 연락 한 사람마냥 거리낌없고 주저함 없이 내 오장육부를 털어둬도 됨직한 관계. 관계 속 연고자의 시작점과 끝점은 아닐 수 있다는 세상을 또 한번 확신하게된다.
태화가 희미 해 질 즈음엔 제대로된 장례를 치르게되는 날이었고, 그렇게 담아둔 마음과 각자에게 맡기고픈 마음을 말해두며 진짜 안녕을하게된다.
가족이나 다름 없는 건 누가봐도 가족이 아니라는 걸 뜻한다. 그만큼 아끼고 챙겨보지만 결국 모든 절차와 서류에서는 밀려나는 존재이며 그 이상은 되지 못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완벽한 내 편과 어떻게 하더라도 내 손에 쥐고싶고 품에 담아두고픈 존재는 아니라는 것에 서글픔이 더해진다.
결국 죽어서도 서류상의 가족이나 친족은 되지 못하겠지만 종이쪼가리에 인쇄되고 인지가 붙지 않는 관계는 더 오래 머물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이들의 애틋하고 애잔한 마음에 진득히 기거하고있길 바라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