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고작 계절 (<여름은 고작 계절> 윈터에디션)
김서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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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추천에 혹해서 읽었지만 고작이라 하기엔 너무 큰 존재로 남게될 여름에 대한 이야기.

고작이라는 말로 치부하는게 맞을까? 너무 뚜렷하게 남게될 그 시절의 단상에 대한 것인데 말이다. 책 속의 이야기가 너무 진득하게 마음에 머문다. 끈덕한 기분, 찐득한 마음, 개운하지 못한 속내. 그 계절의 모습이 닮아있는 제니의 여름이다.

이야기가 시작 되기 전 회고록이자 반성문임을 먼저 밝혀둔다.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친구 한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호숫가에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있는 한나를 죽도록 팼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해도 내가 저지른 짓을 취소하거나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변명이 아님을. 또한 바뀌지 않는 사건이며 사실이고, 그걸 계속 헤아리기위해 이 말들을 한다고 언급한다.

이야기는 제니의 시절을 이야기하고있고, 거기에 겹쳐진 한나의 세상도 보여주고있다. 같은 이민과 유학 그 어정쩡한 시작점은 비슷할지라도 상반된 배경을 기반으로 같을 수 없음만 도드라지게 보여진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제니의 아버지. 그리고 그를 믿고(아니, 그것 말고는 강하게 부정하고 맞설 선택지가 없던 IMF시절) 한국을 벗어난 이민자의 삶. 눈치봐야하고, 대우 받지 못하는 곳에서만 일하게되며 쉽사리 정착하지 못하는 그시절 이민의 실상을 보여주고있다. 힘들고 냄새나는 일들은 모두 그들의 삶의 동아줄 같은 것이었고, 아이는 아이대로 피부색이 다르고 눈동자의 색이 다른 수많은 시선들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며 동등한 대우는 받지 못하더라도 더이상의 하대는 받지 않으려 버텨내는 시절을 보여준다.

같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도 제니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한나가 받게되는 시선은 조금 다름을 알 수 있다. 신경외과 의사 아버지와 서울대 출신의 학예사 어머니를 둔 이민자 한나지만 타국으로 넘어 오기 전이나 후나 어른들의 세상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느정도 대우받는 직군의 계층이 주거 국가만 달라졌다 할까.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는 한나는 영어를 못해도 따돌림을 받더라도 한나가 느끼기엔 간절함이 없어보였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애쓰고 있다는 노력도 비치지 않으니 한심한 상태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제니는 그간 받아온 시선을 알면서도 영어가 서툰 동향의 한나를 똑같은 시선으로 마주한다. 하대하는 것이 으레 당연한 대물림인냥 똑같은 대우를 한다. 한국어를 할 줄 알지만 더이상 한국어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제니와 한국어를 하는 소리에 숨통이 트인듯 다가오는 한나.

엮이고 싶지 않으나 엮일 수 밖에 없는 출신국 관계과 타국에서의 한인타운 국민들이 얽혀있는 연대와 양육 품앗이. 각자 원하는 바가 있었기에 도왔고, 그 이해관계로 살아버티려고 서로에게 들러붙고 있었다.

그렇게 학교에서의 유일한 한국인이자 소통자 역할이며 유일한 친구인 한나의 친구 제니로서 계절을 겪어낸다.

겉도는 동양 아이로서, 기를쓰고 언어를 익혀 그 무리의 말이라도 건넬 수 있는 반 아이로서, 동양인이 아니라 여자 축구부원으로서의 활약하는 팀원으로서, 백인 아이들이 친구랖시고 무리에 끼워주는 일원으로서, 다양한 이민자의 계층 아이들과 두루 섞이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는 아이라 성정체성까지 온 이성의 고민까지 들어주는 아이로 자신의 세상을 꾸린다.

그러한 기간 동안 한나는 제니를 친구이자 언니이자 부모의 지점까지 채워가며 의지하게된다. 그 사건 또한 제니와 더 가까워지고싶고 함께하고 싶어 어렵사리 얻어낸 기회였다. 싫다싫다 해도 매번 챙기고 시선에 걸어두던 한나였지만 그 여름의 한나는 다음 계절의 여름까지 닿지 못했다.

언제는 한나를 챙기는 제니라 했으면서 이제는 한나를 하대하는 제니로 바뀌게되고, 어렵사리 쌓아온 제니의 모래성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렇게 쓸려간 세상에서 제니는 없던 사람처럼 그 흔적을 지워 다신 갈 일 없을 것 같던 익숙한 듯 하지만 더욱 낯설어진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나가 의지했던 제니의 여름, 몇겹의 여름이 쌓이고 이제는 제니가 다라에게 의지하고 버텨내는 여름이 시작되고있었다.

좋아하면 함께하고싶고 닮아지고 싶으며 동등한 시선을 맞추고 싶어 했던 그 시절의 우리와 닮아있는 한나의 애쓰는 마음이고, 제니는 더 애써주지 못했고 살가움과 다정함을 보여주지 못한 서늘한 여름이기도했다.

제니에게 다시금 여름이 찾아오고 있음을 비치는 이야기가 끝에 달려있지만 유난히 먹먹했던 그 시절의 여름은 지워지지도 미화되지도 않을게 당연해보였다. 제니의 마음을 덮어주고 어루만져줄만한 완벽한 엔딩과 꽉 채워진 계절은 아님을 우린 다 알고 있기에 고작이라는 말로 입밖으로나마 가볍게 지나가는 시절인냥 치부하고싶어진다.


책 속의 제니는 돌아왔고, 내 10대의 그녀석 현재는 돌아오지 않았다. 잊고 있었다. 그 아이를. 제법 잘 사는 집의 외동아들이었고, 공부도 곧잘하는 또래보다 다정했고 말랑했던 아이. 그래서 까칠하고 깍쟁이였던 나와 잘 놀아주던 짝꿍. 초등학교 졸업 후 유학을 간다고 했었다. 혼자 가는 것이었고, 걱정을 많이했으며 편지한다는 말로 다음을 기약했었다. 그때도 이야기 많이 들어달라 했으면서 나는 언제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데 영영 말하러 돌아오지 않고있다. 그 아이의 계절도 한나처럼 멈춰있을텐데, 소식만으로도 무서움과 두려움이 밀려와 찾아가 보지도 못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후회되는 나의 나쁜 짓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제니도 나처럼 몇겹의 계절을 두텁게 쌓다 보면 희미하고 흐릿하게 기억을 하게 되겠지. 그래도 영영 잊지는 못할 거다. 나 마저 잊어버리면 부스러기 마저 날려 그 아이의 존재가 완벽히 잊혀질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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