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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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의 과목이 더 익숙한 7차교육과정의 세대. 교과서를 보면서 그 시절을 가늠하기보단 외우는 것에 급급했고 배울 당시에는 더더욱 감정없이 보며 '그랬다더라' 라는 식의 시니컬한 반응으로 바라봤던 시절의 사건들. 역사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순간에 이입해야만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임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되었다. 그들은 교과서에 나올만한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려 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를 바로잡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좀 더 확고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주저하기보다 나아가려 했던 존재들이었다. 어찌 그리도 다들 빨리 사그러들어 소멸했나 싶어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도 그러했고, 저자의 동생, 그리고 주변 학우와 동료들까지. 그들이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달리 자신이 더 목소리를 높이고, 선동하려 했던 이유를 찾아보면 특출난 활동가여서, 더 많이 배운 성인으로서, 생계를 꾸려야하는 가장이 아니어서도 있겠지만 '나라도-'라는 마음으로 이유를 가지고 시대의 폭력과 옳지 못한 사상에 반기를 들어 어떻게든 자신의 세대에서 부조리함을 끊어내려고 각자의 청춘을 받쳤다고 볼 수 있다.

박래군이 그러했고, 그의 동생 박래전도 그러했으며, 의문사와 자살을 빙자한 그 시절 운동권 학우들이 그러했다. 지금에서야 우리는 편하게 책이나 각종 영상을 통해 학생들의 투쟁과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강압적인 시절을 보는 것으로서 지금과는 사뭇다른 세태를 학습만 하게된다.

박래군이 운동가가 될 수 밖에 없던 청년 시절,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 벌어진다. 분신 투쟁한 형제를 둔 유가족이 된다. 억울한 죽음이었다. 개인으로서 조용히 살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시절임에도 동생 래전은 시만 쓸 수 없어 학생운동 조직에 가입해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청년 래군의 시간은 그렇게 약자의 편에서 고문피해자, 시설 수용자, 불심검문, 장애인 인권유린,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 폭력과 차별이 선연했던 곳에 한발 앞에서 약자들을 지키려 했다. 그래야 될 것 같았다. 래군이 래전을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과 함께 어떻게든 그들을 대변하게된다.

4장에서는 말한다. '질 줄 알면서도 싸운다'며 설령 지더라도 인간의 존엄성마저 포기하지 않고자 애를 쓴다. 질거 같으면 시도조차 안하는 나같은 놈이랑 정말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느꼈다. 더욱이나 저자를 통해 '연대'의 힘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이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컸다. 결국 집단책임의 의미이며 부당한 선례를 떠올리게 했으나 저자의 연대는 같이 살자는 의미가 더 컸다. 비정규직문제, 하청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손배가압류 문제 등을 풀기 위해 지금도 연대하고있다. 매 순간마다 현장에 있는 저자를 보면서 생각한다. 그러한 일을 하는게 내 가족, 내 배우자라면 어떨까 라는 가정. 물론 내가 박래군과 같은 인사가 될 수 있을거라는 가정은 애초에 접어두었다. 옳은 일을 하는게 맞지만 매 순간 불안과 같이 살아야된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자랑스러움보다 더 큰 걱정이 지배하리라 그의 행보에 걱정어린 시선을 늘어놓게된다.


모든 사건을 멀찍이 제 3자로 바라 볼 때와 그렇지 못할 때. 마음가짐이야 달라지겠으나 결국 나 조차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차별과 혐오, 증오 범죄로 이어진다는 시선. 직접 차별, 간접 차별, 괴롭힘, 성희롱 등과 같은 것. 결국 우리가 다 한번쯤은 겪어봤고 알지만 쉬쉬했던 일들을 저자는 수면의로 끌어올렸으며 사회 대개혁의 1순위 과제가 될 것이라 했다.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사항, 학력까지. 차별 금지 사유가 삭제 된다 한들 사람들의 시선에는 그대로 남아있음을 느낀다. 차별이 커지면 혐오가 되며 사회적 편견 또함 혐오의 근간이 되고만다. 다들 그리 느낄텐데 지금의 세상은 혐오 표현과 차별이 만연한 사회다. 알지만 쉬쉬한다. 바뀌지 않을거라는 확고한 확신이 있기 때문. 나 역시도 바꿀 생각조차 않는 이 사상을 저자는 오랜 시간동안 변화하길 바라고 있다.

후반부에 저자는 대놓고 이 실상을 알린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인권활동가. 그래서 가족이 이러한 활동을 말리려하는데 당연한 세상이라는 것 마저도. 기업들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감시자의 역할이니 기부금은 거의 기대 할 수 없으며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아주는 기금으로 활동 하는 것으로 이어가지만 가치를 위한 후원으로 달라질 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들의 행보에 힘을 싣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성인이 된 후 밥벌이를 하는 순간부터 아픈 아이들을 후원하는 것에는 선뜻 마음이 움직이는데 이러한 인권운동의 후원은 주저하게된다. 재단에 대한 활동 내역 인지 부족도 있을테고, 믿음의 결여도 있을 것이다. 일단 나는 그러한 입장에서 다양한 재단 중 인권운동 재단에만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음을 실토해본다.

저자는 시민사회 후원은 좋은 세상을 위한 투자라고 했다. 결국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밑거름이라 하니 부정적인 과거의 이력들을 지워낸 후 다시금 알아보고 학습하는 과정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권은 거창한 명목보다는 당연히 가져야할 기본적인 권리에 입각한 목소리였다. 욕심을 내기보단 당연한 것을 찾고자 했으나 사회상이 막아서고 권력으로 들이미는 세상을 살다보니 현대사의 인권들은 많은 이들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듯 그렇게 어렵게 이어져왔음을 학생의 눈이 아니라 어른의 눈으로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인생 2막은 자랑할 것은 없다고.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했냐는 경이롭게 보기도 하지만 그 일은 혼자서 해 낸게 아님을 매번 언급하며 뜻을 이해해준 사람들을 눈앞에 그려낸다. 자신의 육신과 시간을 할애하는 자원봉사는 물론이고, 여건상 그러지 못한다면 후원금을 통해 현장 한켠을 지켜준 시민들과 동료들이 있음 전하고있다. 각각의 일들을 겪어내었고 현장에 있던 저자는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외면하지않고 그들의 곁을 지키려 했고, 그걸 기억하며 현장에 없던 독자들에게 그 온기를 전할 뿐임을 겸손하게 말한다.

10대의 학생시절엔 연도와 열사들의 이름을 외는 단순 기억으로 남았다면 30대의 어른이 된 독자로 보니 결국 사회는 영화 속 히어로들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들이 꾸려낸 세상임을 확신하게한다. 윤리적 삶에 대한 정의를 고쳐보고싶어지며 내가 모르고 살던 사회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고 싶어졌다. 교과서가 가진 딱딱함보다 현장감이 있고, 그 시절을 살아낸 어른의 생생한 실제의 시간들을 듣고싶다면 이 겨울 방학을 핑계삼아 아이와 어른 같이 읽어도 될 만한 도서라는 생각에 나의 어린 친구들에게도 한권씩 나눠보고 싶어진다.

📖하니포터11기로서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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