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하다 앤솔러지 1
김유담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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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알게 된 이유, 그리고 구입을 하게 된 이유는 조카의 연락 때문이다. 서점에서 이 책을 찾고 있는데 보이질 않는다며 앤솔러지의 작품 중 '유령 개 산책하기'를 읽어보고 싶은데 찾을 수 없다는 톡. 초등6학년이 고른 소설에는 어떠한 이야기를 품고 있길래 직접 서점에 가게 만들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벌써 이렇게 이모랑 같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비슷한 분야의 소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10대의 아이와 30대의 이모가 같은 소재의 소설을 읽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를 기대하며 총 5편의 단편에 마음을 기울여보았다.


📖없는 셈 치고_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쉬이 사랑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사랑을 갈구하는 만큼 나는 고모를 사랑했다.

관계 속 약자는 뭐든 더 쏟아내어야 본전치기라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고모와 고모부의 친딸이 아니니까, 이 집의 진짜 가족이 아니니까 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키워준 것. 돈이든 시간이든 들여가며 자신을 키워냈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보단 나중엔 그 값어치를 다 해야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었을 것이다. 고모의 딸이 학창시절 방황부터 시작하여 망나니처럼 살아도, 성인이 된 후에도 알 수 없는 다단계인지 종교인지 빠져들어 몇년간 연락도 없다가 뜬금없이 돈을 해달라는 연락만 달랑 오더라도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는 5분 대기조의 상황같은 자신과는 확인히 다른 역할극이었다. 어쩌면 고모는 병수발 드는 조카는 당연하고, 망나니 짓 하더라도 가뭄에 콩나듯 연락하는 딸 또한 한없이 기다리는 존재인 것 마저도 다 당연한 것이었다. 각자가 당연한 사연이 있지만 동등한 배역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작점이 다르니 결국 무얼 향하든 다르게 여기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없는 그러한 당연함들이다.

📖유월이니까_ 다. 살려고. 기를 쓰고. 걷고. 뛰는 거예요. 죽으려고. 아니고. 살려고. 죽겠으니까. 살려고.

우린 각자가 품고있는 유월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4월이, 누군가에겐 12월의 마지막날이, 누군가에겐 이젠 까마득하고 흐릿해진 어떤 날들이. 세상엔 아무렇지 않게 사는 사람들만 있는게 아니다. 각자의 어떤 날들이 있으며 그 시간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살고 있는 중이다. 못잊어서가 아니라, 정말 말처럼 살려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의 마음으로 찾아다니고, 걷고, 뛰고, 버티는 중임을 이젠 어렴풋이 알겠다.


📖유령 개 산책하기_ 나도 알아. 그렇지만 하지가 내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 내가 대답했다. 준은 내가 하지를 사랑하게 되어서 그런 거라고 말해 주었다. 왜 사랑하면 억지를 부리고 싶어질까. 그렇지만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사랑은 무엇보다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

하지가 나타난건 하지가 나를 그리워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지를 그리워했고, 그 시간을 은연중에 바라고 있음에 주변에 잔상으로 남아있겠지. 아닌 것 같아도 존재의 상실은 항상 남겨진 자의 몫이니까. 하지가 선명해졌다 흐릿해지는 과정은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보내주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있는 인지과정이라 여겼다. 곁에는 없지만 그럼에도 흔적은 어젼히 남아있을테니 사무치게 보고싶고, 서러움이 북받쳐 위로가 고플 때엔 이렇게 해보라는 듯 상실은 했지만 너에게 소멸되진 않았음을 안심시켜주는 글 처럼 느껴졌다.


총 다섯 편의 앤솔러지 중 마음이 가는 것은 이 세 편이었다. 각각의 단편 사이에 있던 성해나 저자의 작품이나 임현 저자의 작품은 눈으로는 읽혀지긴 하나 머리로는 제대로 도출되는 게 없더라구. 그래서 왜 앞머리에 김유담 저자의 글을 놓아둔건지도 대충 감이 오기도했다.

나의 픽은 '없는 셈 치고'이며, 조카의 픽은 '유령 개 산책하기'로 결론지어본다.

'걷다'의 의미를 놓고 보면 앞으로 나아가며 더 나은 무언가로의 행보라 여겼다. '없는 셈 치고'를 통해 하지만 이 걸음이 함께 나아갈 수도 있고 홀로 걷게되는 상황이 있음을 느꼈다. '후보'에서는 뒤로 걸으라는 의사의 조언이 뭐랄까 이제는 뒤를 돌아보며 그간의 세월을 한번 돌이켜보고 추억 할 만한 시기가 되지 않았냐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과거를 안주삼아 씹을 거리 많은 당신의 세월을 뜯어보는 시간. 그러면서 그간의 순간은 마냥 허상이 아니었다는 뉘앙스를 내비친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걸어온 걸음이 제법 괜찮았던 날들임을 생각하게 했다. 세 번째의 작품은 함께 자분자분 걷던 존재의 상실을 떠올려본다. '유월이니까'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당신 이상을 애틋하게 여기던 존재를 상실한 상태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삶을 살아가는게 맞냐는 질문을 산책로에서 둘로 나뉜 구역의 사람들과 비교하며 당신들에게 답을 구하고있다. 걷는 트랙과 뛰는 트랙. 그리고 그들을 쫒아 비슷한 보폭으로 걷듣 뛰든 해야 사고가 나지 않음을 사람이 아닌 눈 앞에 보이는 안내판들을 통해 자각하게만든다. 무덤을 서성이는 그들. 무덤의 사진을 찍는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진 않으나 유월이라는 특정 일자를 언급하는 것이 둘 사이를 이어주던 무언가가 소실됨을 가늠케 했다.미친놈 소릴 들으면서까지 너를 버리고 왔다는 그와 연이 된 아내를 가냘픈 실로 붙잡고 있는 어떤 남자를 통해 붙들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각해보면 계속 머무르며 바닥을 파고 혼자 심해에 이르고 있는게 아닐까 우려했던 존재들이 어떻게든 살려고 살 방도를 찾는게 무덤이었고 능이라는 장소는 아니었는지 지레 짐작을 해본다. 구구절절 말을 하진 못했지만 각자의 살 방식, 기를 쓰고 늪처럼 빠져들고있던 심연의 어둠에서 나올 안간힘을 쓰는 또 다른 갈래의 트랙이었는데 몰라주고 있었다는 생각에 뒤늦은 미안함이 몰려온다. '유령 개 산책하기'에서는 언니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와 다시 나에게로 유기한 개의 상실과 이후의 흔적을 이야기한다. 있었을 때엔 당연했고, 없어지니 그 자리가 너무 커진 남겨진 이가 살아내는 방식. 자신의 바운더리에서 개는 그리 큰 존재가 아니었다고 여겼으나 있었다가 없어진 상황에서는 그 자국이 너무 크게 와닿는다.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산책, 덕분에 할 수 있었던 타인과의 대화, 덕분에 이루어내던 일상들까지. 아마 유령 개의 허상은 자신이 다시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가 짜낸 허상의 페이스메이커가 아닐까. 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나마 해봄직한 것들이 늘어나니까. 그래서 조금씩 자신이 혼자 해 나갈 수 있을거라 여길 즈음 하지의 존재도 흐릿해지는거지. 그렇게 미처 마무리 짓지 못했던 작별을 하는 과정이었다. 앞의 단편처럼 어떻게는 기를 쓰고 살려고 걷는 그런 뉘앙스로 말이다.

걷는 다는 것의 의미. 다리를 움직여 바닥에서 발을 번갈아 떼어 옮기는 것.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 이게 누군가에겐 무의식중에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매 순간마다 자각하며 걸어야한다는 자극을 받아들어야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게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우리는 어떠한 감각이든 어느 한 지점을 일깨워서 해야하는 삶의 방향성이기도했다. 무언가를 해 나가는 과정이 걸어간다고 비유 할 수도 있겠으며 단순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도 이르기도 함에 모든 생의 연장은 걷고 있는 과정임을 한번 더 인지하게된다.

'마냥 주저 앉을 수도 없다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안주하기보단 뻗어나가며 웅크리기보단 큰 동작을으로 걷고 뜀으로서 고여있지않으려 하는 것들. 무의식이 더 크게 지배하던 20대를 지나 30대에서는 때때로 자각하고 스스로를 상기시키는 구간이 생겼다. 40대와 50대엔 안드레아처럼 시절을 뒤돌아보며 때때로 역행하는 구간도 추가가 되겠지.

이 책은 독자에게 당신이 걷고있는 그 구간이 어디쯤일지 명확하게 묻진 않았다. 다만 같은 트랙이지만 다른 속도로 걷거나 뛰는 이들과 부딪혀 자신이 옳은 걸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굳이 몸으로 알아먹던 그 둘의 처지가 되진 않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친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 그럴 수 있으니까, 평생 그러한 과정 없이 올곧은 걸음만 걷기엔 변곡점도 만나고 장애물도 만나며 수렁도 존재하는게 삶의 트랙인걸 모두가 인지하고있는 상태이다.

그러니 말이다, 이 걸음이 평생 유지 될 수 있는 무한의 동력이 아님을 알아먹고 반듯한 발자국을 남겨보고싶어진다.

내가 걸어낸 흔적과 걸어가야하는 모든 것들에는 내가 뭍어나 있을 것이니 내가 나를 제일 애틋해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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